소련의 유산을 팔아치울 수 있을까?
# 프롤로그: 20번째 도전, 이번엔 다를까
2026년 5월, 런던 증권거래소에 낯선 이름이 올라온다. 우즈베키스탄 국가투자펀드, UzNIF. 중앙아시아의 내륙 국가가 런던 자본시장에 국영기업 지분을 들고 나타나는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국가가 기업을 시장에 내다 팔겠다는 시도, 우즈베키스탄에서 이게 처음은 아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크고 작은 민영화 시도가 무려 17~18차례나 있었다. 그때마다 선언만 요란했고 실제 변화는 미미했다.
2021~2025년 민영화 전략은 국영기업(SOE) 수를 75%까지 줄이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내걸었지만, 실제 전체 SOE 수는 거의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다르다.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프랭클린 템플턴이라는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직접 뛰어들었고, 블랙록까지 코너스톤 투자자로 거론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런던 자본시장이 심판관으로 나섰다. 성공하면 중앙아시아 경제 개혁의 이정표가 되고, 실패하면 '또 하나의 빈말'로 역사에 기록된다.
# 소련이 남긴 숙제: 국가가 기업을 먹어치우는 나라
우즈베키스탄을 이해하려면 먼저 숫자 하나를 봐야 한다. 2020년 기준 우즈베키스탄 중앙 보유 국영기업의 수익은 GDP의 32%에 달했고, 전체 SOE의 5분의 4는 민간기업이 더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운영되고 있었다.
국영기업은 쇼핑몰, 식품, 섬유, 관광 같은 경쟁 가능한 민간 영역에서도 버젓이 영업 중이었고, SOE들이 여전히 우즈베키스탄 경제의 약 55%를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이 기업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IMF 보고서는 SOE들이 토지·금융·시장 독점 등 다양한 특혜를 누리면서 민간기업과의 공정한 경쟁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2년 기준 우즈베키스탄 정부 지출(SOE 포함)은 GDP의 40%를 넘어 다른 중소득 국가 평균을 훌쩍 뛰어넘었고, 국영은행이 SOE에 쏟아붓는 정책성 대출이 민간 신용시장을 압박하는 구조가 지속됐다.
ADB 추정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 노동인구의 최대 50%가 국영기업에 고용돼 있다. 인구 3,700만 명 국가에서 국가가 사실상 최대 고용주인 셈이다. 민영화를 하면 경쟁력은 생기지만 고용이 줄고, 고용을 지키려면 구조조정을 못 한다. 이게 우즈베키스탄 민영화가 수십 년째 제자리를 맴돈 핵심 딜레마였다.
# 2024~2025년: 판이 바뀌기 시작하다
2016년 집권한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전임자 카리모프의 폐쇄적 경제 노선과 선을 그으며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 흐름이 2024~2025년에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2023년 말까지 전체 SOE의 약 45%가 민영화됐다. 코카콜라 보틀링 공장, 이포테카 은행, 비료 대기업 페르가나아조트, 시멘트 회사, 페르가나 정유공장이 그 사례다. 그러나 2024년 들어 민영화 속도가 눈에 띄게 둔화됐는데, 아사카은행·SQB·알로카은행 등 대형 국영은행들의 구조조정이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 정체를 돌파하기 위해 정부가 꺼내든 카드가 바로 UzNIF다. 2024년 12월 24일,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이 서명을 통해 우즈베키스탄 국가투자펀드(UzNIF)를 공식 출범시켰다. 기존의 '통째로 매각' 방식 대신, 여러 국영기업의 소수 지분을 하나의 펀드에 묶어 자본시장에서 거래되게 하는 새로운 접근법이었다.
2025년 2월, 세계적 자산운용사 프랭클린 템플턴이 경제재정부와 투자운용 계약(IMA)을 체결하며 UzNIF 운용을 맡았다. 그리고 4월 21일엔 대통령령 제145호를 통해 우즈아우토모터스, 우즈메트콤비나트, 우즈텔레콤을 포함한 29개 대형 SOE의 공개 입찰 매각과, 12개 기업의 2026~2028년 IPO·SPO 계획이 공식 확정됐다.
# UzNIF: 루마니아에서 검증된 공식을 가져오다
UzNIF의 설계에는 분명한 참조 모델이 있다. 루마니아의 폰둘 프로프리에타테(Fondul Proprietatea)다.
루마니아 정부는 공산주의 시절 몰수한 재산의 가치를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이 펀드를 만들었고, 2010년 프랭클린 템플턴을 수탁사로 선정한 뒤 2011년 부쿠레슈티, 2015년 런던에 동시 상장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주주들에게 총 69억 달러가 돌아갔다.
UzNIF를 이끄는 마리우스 단(Marius Dan)이 바로 그 루마니아 프로젝트를 직접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그의 경험이 우즈베키스탄에 그대로 이식되는 셈이다.
현재 UzNIF는 에너지·금융·인프라·통신 분야에 걸친 15개 국영기업의 소수 지분(지분율 25~40%)을 보유하고 있으며, 순자산가치(NAV)는 2025년 말 독립 감사 기준으로 약 24억 4천만 달러로 평가됐다.
포트폴리오 구성은 운송 부문이 32.4%로 가장 크고, 에너지 생산 19.1%, 통신 15.2%, 유틸리티 14.9%, 은행 13.4% 순이다. 주요 편입 자산으로는 우즈베키스탄항공, 수력발전 공기업 우즈히드로에네르고, 우즈텔레콤, 철도인프라회사(Temiryulinfratuzilma), SQB 은행의 지분이 포함돼 있다.
2026년 초에는 포트폴리오 리밸런싱도 있었다. 마이크로크레딧은행, 사업개발은행, 우즈베키스탄에어포츠, 우즈포스트가 제외되는 대신, 우즈히드로에네르고·테미리울인프라투질마·우즈인베스트에 추가 지분이 편입됐다. 덕분에 포트폴리오 기업 수는 18개에서 15개로 줄었지만, 순자산가치는 오히려 16억 8천만 달러에서 19억 3천만 달러로 늘었다.
마리우스 단은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될 경우 UzNIF는 그곳에 상장된 단일 국가 펀드 중 최대 규모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2026년 5월: 역사적인 첫 상장
2026년 4월 24일,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공식적으로 UzNIF 지분 30%를 런던과 타슈켄트 증권거래소에서 IPO로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즈베키스탄 국가 기관이 글로벌 자본시장에 처음으로 나서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공모는 두 개의 트랜치로 구성된다. 국내에서는 우즈베키스탄 내 기관·개인 투자자를 위한 일반주 공모, 해외에서는 GDR(글로벌예탁증서) 방식으로 해외 기관투자자를 겨냥한다. 국제 공모는 제프리스(Jefferies)가 주관하는 은행 컨소시엄이 맡고, 국내 트랜치는 우즈베키스탄 현지 투자회사들이 지원한다. 추가 배정 옵션(GDR 물량의 최대 15%)도 설계돼 있다.
블랙록이 코너스톤 투자자로 참여 협의 중이라는 블룸버그 보도도 나왔고, 프랭클린 템플턴의 계열사도 코너스톤 투자자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졌다.
마리우스 단은 "이번 IPO는 우즈베키스탄이 개혁 프로그램에서 거둔 중요한 성과의 증거이며, 우즈베키스탄 역사상 최초의 국제 주식 공모"라고 밝혔다.
런던 시장에서도 주목도가 높다. 2025년 말 이후 런던 거래소는 신규 상장 가뭄에 시달려왔는데, UzNIF가 올해 런던 메인 마켓의 첫 대형 상장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 2026년 전망: 기회와 수치들
숫자만 놓고 보면 우즈베키스탄의 현재는 꽤 매력적이다.
2024년 GDP 성장률은 6.5%,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12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인구의 60%가 30세 미만인 젊은 나라로, 향후 10년간 노동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은행 민영화도 병행된다. SQB(2위 은행) 지분은 2025~2026년 민영화 예정이고, 아사카은행(4위)·알로카은행(8위)·투론은행은 2026~2027년을 목표로 한다. IMF도 재정 안정성과 효율적 자원 배분을 위해 국영은행 개혁과 민영화 가속화를 권고하고 있다.
정부는 추가로 67개 대형 기업을 민영화하고, 부동산 1,000개, 사업용 토지 3,500헥타르를 민간에 매각해 GDP 대비 국가 경제 비중을 15%까지 낮추겠다는 목표도 내세웠다.
프랭클린 템플턴은 지난 3개월간 130건 이상의 투자자 미팅을 진행했으며, "우즈베키스탄의 거시경제 스토리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관심이 매우 높았다"라고 밝혔다.
# 2026년 과제: 세 가지 넘어야 할 산
장밋빛 수치 뒤에는 만만치 않은 구조적 과제들이 있다.
첫째, 소수 지분의 한계. 스터전 캐피털 CEO 키얀 잔디야는 "프랭클린 템플턴이 관리하는 지분이 전부 소수 지분이라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독립 이사를 선임하고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부차적인 수단일 뿐이고, 실질적인 변화는 최대주주인 경제재정부가 얼마나 권한을 위임하느냐에 달려 있다. 서류상의 개혁과 실제 변화 사이의 간극을 얼마나 좁히느냐가 관건이다.
둘째, 고용 구조조정의 사회적 충격. ADB 추정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 노동인구의 최대 50%가 국영기업에 고용돼 있다. 기업 경쟁력을 높이려면 비대해진 인력을 줄여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사회 불안은 민영화에 대한 정치적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은행도 우즈베키스탄의 신규 기업 진입이 유럽·중앙아시아 평균보다 훨씬 낮고, 민간기업들이 성장을 못 하는 구조적 문제가 지속된다고 진단했다. 민영화로 생기는 빈자리를 민간이 채워주지 못하면 실업만 늘어난다.
셋째, 투명성과 거버넌스 신뢰. OECD 보고서는 SOE 감독 이사회와 경영진의 투명하고 능력 기반의 선임 절차가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투자 분석 매체 QuotedData의 매튜 리드는 "UzNIF가 성공적으로 상장에 성공한다면 투자자들에게 우즈베키스탄 개혁 스토리에 노출될 드문 기회를 제공하겠지만, 이 같은 펀드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복잡성, 거버넌스 리스크, 국가 리스크를 투자자들이 감수할 의향이 있는지가 핵심 과제"라고 분석했다.
# 결론: 런던 증시가 심판한다
우즈베키스탄 민영화를 두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17번째, 18번째 민영화 시도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
날카로운 지적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구조가 다르다. 뒤에서 선언만 하던 정부가 아니라, 프랭클린 템플턴이라는 검증된 외부 운용사가 전면에 섰다.
루마니아에서 69억 달러 환원이라는 실적을 갖고 있는 그 회사가, 런던 자본시장이라는 가장 까다로운 무대에서 성과를 검증받아야 한다. 블랙록 같은 글로벌 기관들이 코너스톤으로 참여를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이전 민영화 시도와의 결정적인 차이다.
물론 변수는 여전히 많다. 소수 지분의 한계, 고용 구조조정의 사회적 충격, 거버넌스의 신뢰도 문제—어느 하나 쉽게 해결되는 게 없다. 특히 IMF가 지적한 대로 우즈베키스탄의 높은 비공식 경제 비중과 취약한 법 집행 체계는 민영화 이후 실질적인 시장 경쟁이 자리 잡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남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2026년 5월, 런던과 타슈켄트 두 거래소에 UzNIF가 이름을 올리는 그 순간, 우즈베키스탄은 더 이상 '개혁을 선언만 하는 나라'가 아닌 '자본시장의 심판을 받기로 결정한 나라'가 된다. 그 투명한 공개 평가 앞에서 말이 아닌 숫자로 답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소련이 남긴 30년 묵은 숙제. 드디어 답안지를 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