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이 아프면 안 되는 이유
제주에선 아프면 하늘을 본다. 오늘은 헬기가 뜰 수 있을지, 파도가 잔잔할지, 운이 좋길 바라며.
우도에 사는 강 씨(73)는 작년 겨울 아침, 말이 어눌해지더니 몸 한쪽이 마비됐다. 가족은 급히 119에 신고했지만, 기상 악화로 헬기 출동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민간 어선을 빌려 본섬으로 향했고,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골든타임은 지나 있었다. 진단은 뇌졸중, 결과는 반신불수.
가족은 아직도 말한다. “조금만 더 빨리 병원에 도착했더라면…”
이 이야기는 더 이상 부속섬 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주시 외곽이나 서귀포 지역 주민도 똑같은 불안을 품고 산다. 구급차가 오기까지 20분, 병원에 도착하는 데 40분. 응급환자의 생명은 분 단위로 결정되는데, 제주는 시간보다 거리와 날씨가 생사를 가른다.
의료 사각지대는 점이 아닌 면이다. 겉으론 화려한 관광도시지만, 그 안엔 너무 많은 의료 구멍이 존재한다.
제주는 ‘아픈 사람에게 불리한 도시’다
제주도 인구는 70만 명을 향하고 있지만, 권역응급의료센터는 단 하나뿐이다.
야간에 제대로 진료 가능한 병원은 몇 군데에 불과하고, MRI나 CT는 예약이 밀려 대기기간이 2~3주가 기본이다.
고위험 임산부는 서울로 이송 조치된다. 소아 응급 상황에도 24시간 진료 가능한 병원은 거의 없다.
결국 도민은 병이 생기면 두 가지부터 따진다.
“제주에서 가능한가?”, “비행기 표는 있는가?”
관광지로선 1등, 생활권으로선 꼴등
제주는 연간 1,50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지다. 렌터카 도로, 공항 증설, 관광숙소 인프라는 빠르게 확장됐다.
그러나 정작 그 땅에 사는 도민들의 병원은 여전히 1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응급실은 포화 상태고, 대기 시간은 5시간 이상이 기본이다. 도민 사이에선 “병원 가면 병이 낫기 전에 체력이 먼저 고갈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관광객은 하루 만에 드론으로 귤을 받아보는 시대. 하지만 정작 도민은, 수액 한 봉지 맞으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한다.
이 섬을 둘러싼 건 바다가 아니라, 시스템의 부재다.
우리는 거창한 걸 바라지 않는다. 단지 기본을 원한다
도민들이 바라는 건 화려한 첨단 병원이 아니다.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10분 내 구급차가 도착하는 체계
야간에도 진료 가능한 응급소아과
본섬 내에서 고위험 임신·심혈관·뇌질환 치료가 가능한 의료 시스템
수술 하나 받으려 서울까지 왕복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
제주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로, 목숨을 운에 맡기고 싶지 않다는 것. 그게 도민들의 최소한의 바람이다.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제주를 환상의 섬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이곳이 생존의 사각지대가 된다.
그럼에도 도민들은 참아왔다.
무엇이 바뀌어야 바뀔까.
누가, 언제, 얼마나 더 다쳐야, 시스템이 움직일까.
우도도, 성산도, 한림도, 조천도 — 그곳은 누군가의 고향이고 삶의 터전이다. 더 이상 제주도민이 ‘아프면 죽음을 먼저 떠올리는’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는, ‘살 수 있는 조건’ 아래 살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