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극한 기후와 재난 대응의 현실
1. 제주는 바람의 섬이다.
화창한 날의 제주는 천국 같지만, 그 평화는 늘 태풍과 함께 위태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제주도는 연평균 태풍 영향 일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극단적인 기압차는 바람을 날카롭게 하고, 도심과 농촌을 구분 없이 강타한다. 억새밭을 찍던 카메라는 다음날 부서진 비닐하우스를 찍고, 노을 사진을 올리던 휴대폰은 정전으로 꺼진다.
2. 관광객은 떠나고, 주민은 남는다.
공항에 발 묶인 관광객들은 분통을 터뜨리지만, 그 순간에도 마을의 어떤 노부부는 무너진 돌담을 손으로 다시 쌓고 있다.
태풍이 남긴 흔적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농가에선 감귤밭이 통째로 날아가고, 상가에선 하루 매출이 아니라 한 해의 수입이 사라진다. 비행기가 다시 뜨면 관광은 돌아오지만, 그 자리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3. 자연보다 더 큰 문제는 ‘대응 부족’이다.
제주는 태풍이 잦다는 걸 모두 안다. 그런데도 왜 매번 이렇게 허둥대는 걸까?
재난 문자 하나 없이 정전되는 마을, 고립된 오지마을에 ‘대피소 없음’이라는 황당한 공지가 붙는다. 대피소가 있어도 거리상 접근이 어렵고, 수용 인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행정은 항상 “이후 조치 중”이지만, 주민들은 “언제나 우리 스스로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건 더 이상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에 가깝다.
4. 반복되는 피해는 마음까지 닳게 한다.
“이젠 뭐 놀라지도 않아요.”
이 말은 익숙해서가 아니라 포기에서 비롯된다. 한 해 한 해 복구에 지쳐가는 농민들, 보험금도 제대로 못 받고 자비로 고치는 상인들, 재난지원금을 신청하는 데도 ‘피해 입증 사진’과 ‘공무원 확인’이라는 절차 앞에 숨을 고른다.
이런 반복은 무기력과 불신을 낳고, 결국 ‘내 일은 내가 책임지는 수밖에 없다’는 마음만 남는다. 지자체에 대한 신뢰는 갈수록 낮아진다.
5. 이제는 대응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제주의 기후는 바꿀 수 없지만, 대응 시스템은 바꿀 수 있다.
재난 알림 체계의 정비, 소규모 마을에 특화된 대피소 설계, 피해자 중심의 신속한 보상 시스템 등 ‘제주형 재난 대응 매뉴얼’이 시급하다. 특히 관광업과 농업, 어업이 얽힌 제주만의 구조를 반영한 유기적인 협업 시스템이 필요하다.
“일시적인 도움”이 아니라 “지속적인 구조”가 필요한 때다.
6. 관광은 회복되지만, 삶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비행기가 뜨고, 숙소 예약이 다시 열리면 관광은 금방 회복된다. 사람들은 다시 제주로 몰려오고, 카페와 렌터카도 바쁘게 돌아간다.
하지만 태풍으로 파손된 하수도, 토사로 무너진 산책로, 침수된 소형 가게는 복구비조차 확보되지 않은 채 방치된다.
‘불편함’을 겪은 관광객은 떠나면서 이야기하지만, ‘붕괴’를 겪은 주민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문다.
7. 우리가 지켜야 할 건, 낭만이 아닌 사람이다.
제주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 풍경 뒤엔 그걸 지켜온 사람들이 있다. 농사를 짓고, 식당을 운영하며, 마을을 유지해 온 주민들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아야 제주가 지속 가능하다.
제주는 단지 소비의 공간이 아니라, 삶의 공간이다. 진짜 제주를 사랑한다면, 바람이 불기 전부터 준비하고, 지나간 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제주는 관광지가 아니다. 태풍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터전’이다.”
그리고 그 터전을 지키는 건, 제주의 일이자 우리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