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 손님들의 '고해성사'와 작가의 시선
밤마다 내 차는 달리는 고해성사실이 된다. 룸미러는 고백의 창이 되고, 나는 목사도 신부도 아닌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나를 향해 속내를 털어놓는다.
“형님, 저 진짜 힘들어요…”
첫마디가 그렇게 시작되면, 나는 잠시 마음의 액셀을 놓는다. 차는 앞으로 달리지만, 대화는 멈춰 선다. 술기운에 비틀거린 그의 목소리는 사실, 오래 참아온 삶의 무게였다.
회사 욕, 가정사, 인간관계, 빚 이야기까지… 술 한 잔에 풀려버린 사연들은 비슷하면서도 다 다르다. 하지만 끝은 늘 같다.
“형님, 그래도 나 괜찮은 사람이죠?”
나는 그 말에 대답 대신 미소를 건넨다. 괜찮다는 말이 얼마나 값비싼 위로인지, 이 좁은 차 안에서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처음엔 힘들었다.
“얘기 들어줄 시간 있으면 콜이나 더 잡자”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곧 알았다. 이 차 안이야말로, 그들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듣는다. 운전대는 길을 잡고, 내 귀는 사람의 흔들린 마음을 붙잡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눈물과 웃음은 내 글감이 된다. 나는 돈이 아니라 문장으로 버티는 사람이니까. 미안하지만, 그들의 푸념은 내 원고료가 되고, 그들의 눈물은 내 글의 잉크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이야기는 내 마음도 위로한다.
“아,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구나.”
결국 고해성사는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들이 내게 털어놓는 말 한마디가, 사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나도 힘들어요. 하지만 글 쓰면서 버티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핸들을 잡고 펜을 놓지 않는다.
삶이 어둡게 흘러가도, 차창 밖으로 스치는 새벽바람처럼 작은 위로는 여전히 지나간다.
누군가의 “형님, 저 힘들어요”라는 말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서 수십 번 중얼거리는 고백 아닐까.
그리고 나는 조용히 되뇐다.
“괜찮습니다. 힘든 게 당연한 시대니까요. 하지만 오늘도 여기까지 와주셨잖아요. 그걸로 이미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