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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un 04. 2021

아버지의 눈물

부모의 마음은 무조건 적인 사랑이다.

엄마의 의상실은 한 동안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맞춤으로 옷을 맞추는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불경기라 손님이 없다. 6개월 여 수입이 없던 우리 집은 늘 먹고사는 게 퍽퍽했다. 판잣집으로 이어진 집들은 서로 벽 격 없이 붙어있어 옆집 뒷집 음식 냄새며, 애기 소리까지 마치 옆에서 이야기하듯 잘 들리고 잘 느껴졌다.


의상실 옆집에 사는 아줌마는 아모레 방판으로 '동동 구루무'를 파셨다. 그 시절 아줌마들의 피부를 전담하는 효자 상품이어서 아줌마는 돈을 잘 버셨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닭튀김에 고기 굽는 냄새가 창문 너머로 우리 집 공기를 가득 메웠다.

어린 나는 담 너머로 넘어오는 맛있는 냄새에 매일 같이 달걀 프라이를 먹고 싶다고 졸랐었다고 한다. 그 시절 짚으로 엮어 팔던 달걀과 유리병에 든 서울우유는 부자들의 상징 같은 먹거리였다. 수입이 없던 내 부모는 사주고픈 마음은 있었겠지만 녹록지 않은 사정으로 사줄 수 없어 아마도 어린 내게 언젠가 꼭 사주겠노라 달랬을 것이다.




집 안이 발칵 뒤집혔다. 아이가 없어졌다. 애꿎은 오빠는 동생 못 돌봐 야단 꽤나 맞았고, 나를 돌보라고 들인 식모 아이 또한 혼이 나갔다. 4 식구 모두 온 동네 구석구석을 나를 찾느라 몇 시간 헤매다 지쳤을 때 옆집에서 놀다 온 나를 만났다. 어디 다녀왔냐고 묻는 부모님께 나는 "옆집 아줌마가 달걀 프라이를 해주셔서 먹고 놀다 왔어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날 나는 해가 떨어질 때까지 맞고 또 맞았다. 훗날 부모님의 말씀이 잘못했다고 빌면 매를 멈췄을 것인데 너 댓살 밖에 안된 딸아이가 빌지를 않더란다. 어린 마음에도 '달걀을 먹고 온 게 뭐 그리 혼날 일이라도 매까지 맞아야 되나' 싶어 억울했나 보다.


옆집 아줌마는 비밀이라고는 1도 없을 구조의 판잣집에 사는 옆집 아이가 달걀 프라이 먹고 싶다고 조르는 소리를 담장 너머로 들었던가보다. 별 거 아닌 달걀 하나를 못 사주고 매일 울고 조르는 아이가 짠해서 데려다 맛있게 구워준 마음씨 고운 아줌마는 혼쭐이 나는 아이를 보며 어쩔 줄 몰랐을 거다. 그 후 나는 달걀을 먹지 않는다. 내가 만들지 않고 우연한 상차림에 달걀이 올라와 있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하루 한 알 정도 먹는 것이 좋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을 때 마치 약처럼 가끔 먹기도 하지만 달걀의 맛을 잘 못 느낀다. 어린 나이에 달걀을 먹고 혼났던 트라우마 일까?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께서 그 옛날 달걀 프라이 사건을 일화로 강의하시는 것을 들었다. 자라면서 '달걀 하나'의 기억을 아버지께서 하고 계시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다가 강연 중 일화로 말씀을 하시며 눈시울이 붉어지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덩달아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다.


"없고 힘든 시절 달걀 하나 사달라는 어린 딸에게 달걀을 사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딸아이가 없어져 두세 시간을 헤매다 딸아이를 찾았는데 옆집에서 달걀을 얻어먹고 해맑게 나오는 딸아이를 보며 안도하는 마음과 함께 거렁뱅이 마냥 남의 집에서 달걀을 얻어먹고 나온 것에 화가 나 아이에게 매를 들었습니다. 어린 딸아이가 잘못했다고 하지 않고 해가 지도록 울면서 맞고만 있기에 더 많이 혼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얻어먹은 달걀 때문이 아니라 달걀 하나 사줄 수 없던 형편이 속상하고 귀한 내 자녀가 남에게 빌어먹는 자리에 서도록 만든 내 처지가 서러워 어린 딸에게 화풀이를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딸은 그때 이후로 달걀을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달걀을 보면 딸아이가 생각납니다."    


어린 나이에 있었던 그 사건이 너무 강렬해서 인지 그때의 그 상황, 그 장소, 가족들의 표정 하나까지 스크린 화면 지나가듯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매일같이 새마을 운동 노래가 새벽 6시만 되면 사이렌과 함께 울려 퍼지던 때, 밤 9시만 되면 9시 뉴스 하기 전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어린이입니다." 안내 음성이 들리던 그 시절에 있었던 작은 일화이다.

부모가 되어 내 부모처럼 남매를 키우게 된 지금, 그때 그 마음이 추억처럼 흩날린다.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부모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을 것이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채워주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설움이 거칠게 표현되었던 그날의 아버지 마음을 더듬어 보았다. 세월이 흐른 후 그때 그 잘못된 훈육이 미안해서 에둘러 강의 속 일화로 표현하는 아버지의 무심한 듯한 회고의 말씀이 내 마음을 적신다. 그렇게 나마 전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 더욱 애틋한 오늘이다.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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