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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Sep 06. 2021

남편도 도전하게 만드는 브런치의 이끌림

남편만 모르던 브런치 작가! '기어코 탄로 났다.'


몇 달 전부터 매일같이 노트북 끌어안고 끄적대는 아내를 보며 궁금증을 참지 못하던 남편은 물었습니다.

"뭐해?"
"일기 써요."
"일기를 뭐 그리 비장하게 써? 그리고 블루노트 있잖아. 거기다 쓰라니까..."
"나는 이게 더 편해."
"매일 그렇게 쓸 말이 많아?"
"많네? 하루하루가 똑같아 보여도 똑같지가 않거든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쳐 지나가는 듯 보였지만, 일기 쓰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20년 넘게 같이 살다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죠. 일기를 쓴다는데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어쩔 때는 새벽녘에도 노트북을 붙들고 있는 아내가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물론, 대체로 남편이 출근하고 없는 시간에 글을 쓰지만 휴일에는 아무래도 눈에 띌 수밖에 없으니까요...


어느 날은 또 묻습니다.

"도대체 뭔데 그래? 뭔데 그렇게 안 가르쳐줘? 걍 그냥 까~"
"아녀자 하는 일이 뭐 그리 궁금하실까요~? (^^;) 이건 나의 '해방 타운' 같은 거니까 그냥 모르는 척해요."
"아니, 그게 뭐라고 숨겨?"
"궁금해요?"
"궁금하지. 애들도 다 아는 것 같은데 나만 모르니까... 당신이 나라도 궁금했을걸?"
"하긴... 그렇긴 하네요~"


그렇게 세 달이 지나가고, 글들이 다음 피드에 자주 등장하게 되어 조회수가 조금씩 상승하다가 어느 날은 며칠 동안 피드에 글이 머물러 있게 되니, 막내 동글이가 매일 출석 체크하듯 아침마다 물어봅니다.

"엄마, 오늘은 '누나 라면 먹는 거' 조회수가 얼마나 나왔어?"

동글이가 온라인 클래스 할 때 주로 옆에 앉아 글을 쓰기에 나의 브런치 생활은 동글이가 제일 먼저 알았어요. 동글이도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어 할 정도니까요...

 딸아이의 라면 사연은 아직도 조회수가 올라가고 있고 동글이 입장에서는 누나가 주인공인 글이 제일 궁금한가 봅니다.

"음... 잠깐만, 볼게... 오늘까지 라면 글은~ 동글이가 읽어볼래?"
"와~ 뭐야? 이거 실화야? 엄마... 110,209명이나 읽었어. 대박 사건!"
"그러게... 라면 싫어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나 봐."
"그거야 엄마가 라면을 맛있게 끓이니까 그렇지."


동글이와 한참을 라면 이야기로 꽃 피울 때 조용히 듣고 있던 '귀'가 있었지 뭐예요? 무심하게 스치듯 남편이 말합니다.


"동글이랑만 속닥속닥 하지 말고 나한테도 알려줘. 인터넷에 글 쓰는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내가 그거 하트 눌러주고, 구독자도 돼 줄게."
"아니야. 괜찮아요... 구독자 안 해주셔도 됩니다."
"거기다 내 얘기 잔뜩 써 놓은 거 아니야? 내가 보면 안 될 거를 쓴 거 아니면 왜 안 가르쳐줘? 궁금하게... 내가 안 찾아서 그렇지 찾으려고 맘먹으면 금세 찾아."
"궁금하라고 안 알려 주는 거예요. 사람이 좀 신비로운 맛이 있어야지. 모든 걸 다 알면 매력이 없잖아요. 매일 같이 사는 아내한테도 뭔가 비밀스러운 면이 좀 있어야 새롭지. 안 그래요? 컴퓨터 박사님이 찾을까 봐 겁나네. 그니까 찾지 마세요~"


나의 브런치 세계에 관심을 자꾸 갖는 것은 진짜 궁금한 겁니다. 조만간 들킬 수 있다는 신호가 점점 다가오는 거죠. 숨길 수 있을까요? 점점 자신이 없어집니다. 두근두근~


사실 남편 험담을 쓴 건 아니지만 자꾸 궁금해하니 안 알려주고 싶은 거 있죠? 알게 된다면 그 나름대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겠지만 모르면 모르는 대로 속닥속닥하는 재미가 또 있더라고요. 그래서 브런치 얘기는 앵글이, 동글이랑 우리만의 싸인으로 아빠 모르게 속닥대며 소곤소곤 이야기합니다. 처음에는 '그냥'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는 '궁금해하는 게 재밌어서'이거나 '아이들과 소곤대는 맛'으로 안 알려주었죠.





어느 날 저녁~

띠리링~
"남편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아이코 이런,

드디어 터질 게 터졌네요. 남편이 구독자님으로 들어오셨어요. 기어이 찾아내고 만 거죠.


거실에서 컴퓨터 작업 중인 남편에게 쫓아가서 물었죠.

"구독했어요? 아~ 왜~~~"
"뭐, 별 것도 없더구먼. 뭘 그리 안 가르쳐주고 그래?"
"그니까, 별 거 없다며 왜 찾아내?"
"네 글이 계속 다음 피드에 올라오잖아. 딱 봐도 너드라."
"그걸 어떻게 알아?"
"네가 쓴 편지를 내가 몇 년을 읽었는데 그걸 몰라. 딱 보니 알겠더구먼."
"그래서, 읽어보니 어땠어요?"
"거, 뭐... 사는 얘기 써 놓았더구먼... 우리 아내 맛깔나게 글 잘 쓰는 거는 내가 제일 잘 알지."


그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브런치 작가" 아니,  
"남편만 모르는 브런치 작가" 생활은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 후,

감사하게도 이벤트가 여럿 있었어요. 다음 피드와 브런치 홈에 글들이 올라와주고, 라디오 사연이 채택되면서 남편의 호기심은 "진심"으로 바뀌었지 뭐예요?


※ 오빠, 동생으로 연애를 하고 부부가 되어, 남편은 주로 이름을 부릅니다. 저는 집에서는 '오빠'와 '여보'사이 어느메 쯤 부르고, 존댓말과 반말 사이 그 어디메 쯤으로 사용하죠.

"브런치... 그거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왜요?"
"나도 글 한번 써보려고..."
"일하면서 글까지 쓰려고요? 하고 있는 일만 해도 바쁜데...?"
"내가 안하서 그렇지 글 쓰는 거 당신만큼 잘할 수 있어."
"알죠... 그럼 나랑 라이벌 되는 거야? 그런데 브런치에 글 쓰려면 작가 승인받아야 해요."
"그거 어떻게 받는 건데?"
"일단 글을 써야죠? 글을 한 세 개 정도 쓴 다음 얘기해줘요. 그럼 내가 어떻게 신청하는지 알려줄게요."
"뭐가 그리 복잡해? 브런치는 아무나 글을 못쓰나 보지?"
"작가 승인을 99번이나 떨어졌다고 글 쓰는 사람도 있는 정도인데? 아내가 쓴다고 브런치 작가 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 거 아니에요?" ^^;


새내기 브린이를 맞이 차례가 되었나 봅니다. 저도 100일 브린이 이긴 하지만 이제 도전하게 되는 남편에게는 거득먹(?) 거려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시기가 지나면 못할 테니까요... 




집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고 100일이 다 되어갑니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긍정적인 효과가 많아졌어요. 글 읽기와 글 쓰기에 관심이 없던 동글이가 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제일 큰 소득이었고, 글을 매일 쓰면서 마음이 정돈된 것 또한 긍정적 효과이죠. 일상의 삶과 사물 하나하나까지도 그냥 스쳐 지나감 없이 진지하게 바라보게 되었고, 글로 탄생하게 되는 과정 속에서 생명력이 생겨났어요. 물건에도 호흡을 불어넣으니 생동감이 생겼고, 이웃에게 받은 부침개 한 점도 감사함이 배가 되어 전해졌죠. 무엇보다 부모님께 전해드린 마음의 선물이 지난주 빅 이벤트였어요.


'아버지'와의 추억과 일상



아버지께서는 스마트기기 사용하는 것을 어려워하십니다. 문자 하나 적으려 해도 한 참의 시간이 걸리죠. 투박한 손놀림으로 친구들에게 단체톡을 보내신다는 것이 제게도 도착했어요. 아버지께서 핸드폰 자판이 익숙지 않아 서툰 솜씨로 맞춤법이 다 틀린 문자를 친구들에게 보내신 거죠. 단톡으로 친구들에게 보내신 문자가 제게도 도착했는데 읽어보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낮에는 무심하게 '고맙다'라고만 하시더니 내내 라디오 내용을 다시 들어보시고, 글을 다시 읽어보시며 친구들과 함께 나누고 자랑하고 싶으셨던 모양입니다.

 

"딸이 여섯 살 때 일어난 계란부침 사건일세. 43년 전의 쓰라린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해서 기록하여 방송 응모한 게 당첨되어 방송을 탔누먼. 자세한 내용은 기회가 되면 하고 내용을 들어보게. 아로니아편과 계란 이야기 일세. 편히 쉬시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실 때는 쩌렁쩌렁 힘이 넘치시던 아버지, 노래도 꽤 잘하셔서 어디 가나 인기가 많으셨습니다. 강의하러 중국으로 미국으로 초청받아 다니시다가 은퇴를 하시니 자연과 벗 삼아 살고 계신 아버지의 뒷모습은, 딸 이어서 일까요? 엄마와 다른 뭉클함이 있습니다. 표현도 투박하셔서 마음을 전하는 게 서투신 아버지께서 '고맙다'라고 전화 주셨을 때도 찡~한 마음이 들었었는데, 밤늦게 잘못 도착한 문자 한 통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네요.




브런치는 스며드는 맛이 있습니다.


내가 쓴 글이 피드에 오르고 메인 화면을 가득 채워도 글에 대한 금전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브런치를 잘 모르는 이웃들은 가끔 제게 '원고료를 얼마 받느냐'라고 묻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마이뉴스에 기고를 하면 적게라도 원고료가 주어지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니까요. 그럼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브런치는 원고료를 돈으로 주지 않아요. '이끌림'으로 글을 쓰고, '스며듦'으로 떠나지 못합니다. 브런치의 원고료는 함께 글을 나누는 글벗을 얻고, 제가 쓴 글을 읽고 하트를 눌러주시는 작가님들과 그분들의 응원에 찬 댓글을 읽으며 계속 글을 쓰며 살아도 좋겠다는 힘을 받는 것! 그것이 원고료예요."


언제가 남편이 브런치의 작가가 된다면 알게 되겠죠? 매일 글을 쓰고, 글과 함께 만나는 글벗의 소중함과 나를 되돌아보고 삶에 감사를 더해가는 브런치의 이끌림에 대해서 말이에요.


애정하는 달고나 커피를 '남편'과 함께 마시니 더 맛있습니다.


화이자 백신 2차 접종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병원을 오가는 걸음을 함께 해 준 달달한 '달고나 커피' 한 잔입니다. 백신 접종을 핑계로 남편은 오늘 휴무가 되었습니다. 산책 삼아 걸어서 병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달달한 달고나 커피를 하나씩 들고 걸으며 글쓰기에 대한 제 이야기를 함께 나눴습니다. '첫눈에 반한 남자'는 브런치에 도전하게 되었고, 이제 우리는 함께 글을 쓰며 글 쓰는 이야기로 공통된 관심사를 갖게 되었네요. 가슴이 '쿵쾅쿵쾅' 새로운 설렘을 가져다줍니다.


남편이 작가 심사를 무난히 통과하게 되면 알려주려고요. 구독자의 수, 라이킷과 댓글의 수에 연연하지 말고 본인이 쓰고자 하는 글을 묵묵히 써 내려가라고, 조회수가 늘어난다고 구독자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니 숫자에서 승부수를 두지 말아야 '브런치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도 동반자를 얻은 설렘이 연애하는 기분과 비슷하다는 신기한 경험을 하며 글을 씁니다. 함께 나누는 이가 '사랑스러운 남편'이어서 더 기쁜 것 같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알려줄 걸 그랬나요? 그래도 호기심 가득한 남편에게 줄다리기를 100일쯤 해 준 것은 잘한 것 같습니다. 덕분에 스스로 욕심을 내었잖아요.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내어주고, 삶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글을 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글을 공유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글을 공유하면서 내 주위를 더 많이 돌아보게 되었고,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글로 보이는 삶과 실제의 삶이 달라지면 나도 모르게 '거짓으로 포장된 삶'이 되어버릴까 봐서요. 늘 토마토처럼 겉과 속이 선명하고 예쁜 빨강이길 바라는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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