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 차게 아울렛에 갔다가 편의점만 들렀다. 우리는 부창부수 부부
"들어가 봐요."
"아니야. 들어가면 사야 할 것 같잖아."
"사려고 나왔는데 사면되죠."
"비쌀걸?"
"비싸면 뭐 어때요? 어차피 사려고 나온 건데... 그리고 생일 선물로 사주려고 나온 거니까 골라봐요. 내가 통 크게 쏠게요. 맘에 드는 거 있음 마음 푹 놓고 골라요."
"아니야. 없음 없는 대로 그냥 있는 거 입고 그러면 되지."
"그럼 나온 보람이 없잖아요."
"그냥, 우리 달달하고 시원한 커피 하나씩 들고 집에 갈까?"
"오늘 바빠요?"
"아니, 바쁠게 뭐 있나?"
"그럼 나랑 데이트 어때요?"
"마누라가 데이트하자고 하면 OK라고 해야지, 딴 이유를 들면 쓰나?"
오늘따라 순순히 맞장구를 칩니다. 혹시 눈치챈 걸까요?
"그래요? 그럼 나도 좀 답답해서 바람 좀 쒜고 싶은데 동글이 점심 준비 좀 해 놓고 휙~ 같이 나갔다 올까요?"
"좋지. 어차피 오늘 급한 일도 없었어. 어디 가려고 하는데?"
"나가면 뭐 갈 데가 없으려고요. 잠깐만 기다려요. 준비 좀 하고요..."
"동글아! 엄마, 아빠랑 같이 나갔다 올게. 혼자 밥 챙겨 먹을 수 있겠어?"
"그럼, 나도 이제 3학년이라고."
"그래? 한 3시간이나 4시간쯤 걸릴 수도 있는데?"
"그 정도는 괜찮아. 어차피 나도 수업받아야 해서 엄마 없어도 돼."
"그럼, 혹시 늦을 수도 있어서 점심 챙겨놨으니까 챙겨놓은 거 꼭 먹어."
"응. 걱정하지 마. 내가 무서우면 전화할게."
"응. 고마워~ 빨리 다녀올게."
"어디로 모실까요? 사모님?"
"파주 아울렛 어때요? 상품권이 좀 있어서 가 보고 싶은데?"
"그럴까?"
"갔다가 맘에 드는 것 있으면 사고, 없으면 임진각 바람 쒜고 오면 되죠."
"그래, 그럼 가자!"
"입어볼래요?"
"아니, 디자인이 좀 심심하지 않아?"
"옆에 다른 것도 있는데요?"
"음,... 이것도... 난 좀 색다른 디자인이 있는 줄 알고 들어왔는데 없네..."
"내가 보기에는 저것도 괜찮은데요?"
"그래? 잠깐,... 289,700원? 무슨 티셔츠를?? 아니야. 어차피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너무 비싸네."
"이건... 여기 이 로고 말이야. 세탁하면 떨어지는 거 아니야?"
"떨어지면 AS 받으면 되죠."
"이런 것도 AS를 해줘?"
"그럼요. 그러니까 브랜드 옷을 사는 거죠. 맘에 들면 입어봐요."
"음... 잠깐만... 아니다. 그냥 가자. 내가 원하는 게 없어."
"지나가는데 바닥에 500만 원이 떨어져 있어. 그런데 주인을 찾아주지 않아도 되는 돈이야. 공돈이 생겼잖아? 그럼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들어?"
"통장에 넣어두겠죠?"
"그렇지. 통장에 잔고가 딱 찍히면 뿌듯하겠지?"
"그죠? 근데 왜요?"
"그러니까 옷을 못 산다고. 티셔츠 한 벌에 30만 원씩 하는 걸 어떻게 사 입어?"
"생일 선물로 사준다잖아요. 1년에 한 번 있는 생일인데 한 번쯤 살 수도 있는 거지. 뭐."
"너도 안 사 입잖아."
"난 뭐... 매일 집에 있으니까... 별로 필요도 없고..."
"그러니까..."
"이러니 우리는 돈을 아무리 벌어도 뼛속까지 서민이라는 거예요."
"서민?"
"그렇죠. 가끔씩 비싼 옷도 사 입고 그렇게 다들 사는데 우리는 전표만 보고 가격에 놀라서 살 생각을 못하잖아요. 그러니 서민 맞지."
"내가 돈을 많이 벌어도 못 살 것 같아."
"돈은 원래 써 본 사람이 쓰고 사는 거라잖아요. 매번 홈쇼핑에서 5벌, 6벌 묶음으로 파는 옷만 사 입고 쿠*하고 비교하니까 아울렛에 와도 옷을 못 사 입죠."
"그러지 말고, 이왕 나왔으니까 임진각에 곤돌라나 타러 가볼까?"
"정말? 나 그거 타보고 싶었는데..."
"그래. 그냥 집에 가기도 좀 그렇잖아. 커피 한 잔 사서 임진각이나 가자. "
"커피 사려면 2층에 올라가야 하는데?"
"2층? 아니야, 저쪽에 편의점 있더라. 거기에서 사자."
"아울렛에서 쇼핑도 안 하고 그냥 가면서 편의점을 털자고요?"
"좋잖아. 이것저것 고를 수도 있고..."
"잠깐 쇼핑백 좀 줘봐요."
"왜?"
"인증샷 좀 찍어두게..."
"인증샷은 왜?"
"재밌어서... ㅎㅎㅎ"
"아울렛에 와서 편의점 쇼핑을 하는 부부는 우리밖에 없을 것 같지 않나요?"
"그래도 쇼핑백에 넣어주니까 폼 나지 않았어?"
"쇼핑백에 편의점 마크가 있는데도요?"
"알게 뭐야. 뭐 하나 들고 있으면 뭐 하나 샀나 보다 하겠지."
"이러니 부창부수 맞는 것 같죠?"
"부창부수라는 말도 알아?"
"왜 이래요? 이래 봬도 나, 글 쫌 쓰는 여자라고요."
즐거운, 그리고 많이 웃는 주말 보내세요.
일상 속에서도 감사함이 가득한 로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