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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Sep 10. 2021

바나나 우유만으로도 충분했다.

야심 차게 아울렛에 갔다가 편의점만 들렀다. 우리는 부창부수 부부

9월은 큰아이와 남편의 생일, 그리고 추석이 있습니다. 1년 중 빅 이벤트가 셋이나 몰려있는, 주부의 주머니 사정일랑은 아랑곳하지 않는 뜻깊은(?) 달인 셈입니다.


지난 주말 빨간색 티셔츠를 사고 싶다는 남편의 바램(원래는 '바람'이 맞다.)으로 집 근처(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로데오거리로 함께 걸음을 옮겼습니다. 어차피 생일 선물을 사야 하는데 갖고 싶은 것이 있다고 이야기하니 무엇을 살까 생각할 시간을 번 셈입니다. 생일 선물로 살거니 이왕 사주는 거 '통 크게 쏘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마음에 들어 하는 옷이 없는지 이리저리 서성이기만 합니다. 머뭇거리는 모양새나 눈빛을 보면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매장 앞을 서성거리기만 하고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다가 이내 발걸음을 돌리는 남편을 보며


"들어가 봐요."
"아니야. 들어가면 사야 할 것 같잖아."
"사려고 나왔는데 사면되죠."
"비쌀걸?"
"비싸면 뭐 어때요? 어차피 사려고 나온 건데... 그리고 생일 선물로 사주려고 나온 거니까 골라봐요. 내가 통 크게 쏠게요. 맘에 드는 거 있음 마음 푹 놓고 골라요."
"아니야. 없음 없는 대로 그냥 있는 거 입고 그러면 되지."
"그럼 나온 보람이 없잖아요."
"그냥, 우리 달달하고 시원한 커피 하나씩 들고 집에 갈까?"


결국 우리 부부는 아이스 캐러멜 마키아토를 드라이브 스루로 픽업해서 같이 마시며 돌아왔습니다.





선물을 못 샀으니 숙제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며칠 동안 어쩔까 생각했죠. 이번 주에 출장이 걸려있어 며칠 집을 비우고 돌아온 남편입니다. 지난 5월 생일 선물이라며 친정어머니께 받은 상품권과 1년 동안 차곡차곡 모아놓은 상품권을 털면 마음에 들어 하는 흰색 바지와 빨간색 티셔츠를 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큰 아이를 등교시키고, 작은 아이 줌 수업을 거들어주는데 남편이 출근을 하지 않고 어슬렁거리기에,


"오늘 바빠요?"
"아니, 바쁠게 뭐 있나?"
"그럼 나랑 데이트 어때요?"
"마누라가 데이트하자고 하면 OK라고 해야지, 딴 이유를 들면 쓰나?"

오늘따라 순순히 맞장구를 칩니다. 혹시 눈치챈 걸까요?

"그래요? 그럼 나도 좀 답답해서 바람 좀 쒜고 싶은데 동글이 점심 준비 좀 해 놓고 휙~ 같이 나갔다 올까요?"
"좋지. 어차피 오늘 급한 일도 없었어. 어디 가려고 하는데?"
"나가면 뭐 갈 데가 없으려고요. 잠깐만 기다려요. 준비 좀 하고요..."


성격 급한 남편, 맘 바뀔까 싶어 부지런을 떨어봅니다. 재빠르게 동글이 점심상을 준비해두고 재차 다짐을 받습니다.


"동글아! 엄마, 아빠랑 같이 나갔다 올게. 혼자 밥 챙겨 먹을 수 있겠어?"
"그럼, 나도 이제 3학년이라고."
"그래? 한 3시간이나 4시간쯤 걸릴 수도 있는데?"
"그 정도는 괜찮아. 어차피 나도 수업받아야 해서 엄마 없어도 돼."
"그럼, 혹시 늦을 수도 있어서 점심 챙겨놨으니까 챙겨놓은 거 꼭 먹어."
"응. 걱정하지 마. 내가 무서우면 전화할게."
"응. 고마워~ 빨리 다녀올게."


제가 쫌 유난한 엄마입니다. 10살 동글이만 두고 외출한 적이 없어서 마음은 좀 불편했어요. 그래도 혼자 챙길 수 있다고 하니 오늘은 좀 믿어볼까 싶었죠. 외출 준비요? 제가 꾸미는 것에 좀 게으른 편이라 준비하는데 5분이면 충분합니다.


달리는 차에서 찍은 풍경 / 너무나 맑은 하늘, 그리고 남편을 닮은 나무


"어디로 모실까요? 사모님?"
"파주 아울렛 어때요? 상품권이 좀 있어서 가 보고 싶은데?"
"그럴까?"
"갔다가 맘에 드는 것 있으면 사고, 없으면 임진각 바람 쒜고 오면 되죠."
"그래, 그럼 가자!"


동글이까지 떼어두고 평일 오전에 남편과 둘이 나서는 데이트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동글이가 크긴 크나보다 싶었어요.


마음이 여유로워서 일까요? 매일 보는 하늘도 새롭고, 공기도 새롭네요. 남편의 싱거운 농담도 재밌고, 뭔가 일이 있어 움직이는 외출이 아니라서 그런지 마음도 분주하지 않아서 좋네요.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여유롭고 좋습니다.


첫눈에 반한 남자와 함께여서인지, 줌 수업과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환경 때문에 집에만 머물다 현실에서 벗어나서인지, 둘 다인지 모르지만 넉넉하고 여유로운 시간이 좋습니다. 그리고 도착한 아울렛!




주차장에서부터 열 체크와 스티커를 마스크에 붙이안심콜에 전화를 하고서야 주차를 할 수 있었어요. 아울렛으로 들어가는 입구도 한 곳만 두고 막아두었더라고요. 일하는 사람도, 방문하는 사람도 번거롭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말이에요. 그래도 평일 오전이라 사람이 없어 우리는 줄을 서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주말에는 태양을 막아주는 그늘도 없는 보도블록에서 줄지어 서 있는 방문객들의 민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둘이 나란히 매장을 둘러보았어요. 남편의 마음에는 원하는 브랜드가 있는 모양입니다. 계속 어딘가를 향해 직진! 또 직진... 말없이 매장 찾아 삼만리로 걷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지체 없이 들어가네요? 붉은색 티셔츠가 있는 쪽을 향해 돌진!


"입어볼래요?"
"아니, 디자인이 좀 심심하지 않아?"
"옆에 다른 것도 있는데요?"
"음,... 이것도... 난 좀 색다른 디자인이 있는 줄 알고 들어왔는데 없네..."
"내가 보기에는 저것도 괜찮은데요?"
"그래? 잠깐,... 289,700원? 무슨 티셔츠를?? 아니야. 어차피 마음에 들지도 않았고 너무 비싸네."


그러고는 바지가 있는 쪽으로 갑니다.


"이건... 여기 이 로고 말이야. 세탁하면 떨어지는 거 아니야?"
"떨어지면 AS 받으면 되죠."
"이런 것도 AS를 해줘?"
"그럼요. 그러니까 브랜드 옷을 사는 거죠. 맘에 들면 입어봐요."
"음... 잠깐만... 아니다. 그냥 가자. 내가 원하는 게 없어."


이것저것 괜한 트집을 잡던 남편은 저를 이끌고 매장 밖으로 나옵니다. 그러고는 남편이 묻습니다.


"지나가는데 바닥에 500만 원이 떨어져 있어. 그런데 주인을 찾아주지 않아도 되는 돈이야. 공돈이 생겼잖아? 그럼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들어?"
"통장에 넣어두겠죠?"
"그렇지. 통장에 잔고가 딱 찍히면 뿌듯하겠지?"
"그죠? 근데 왜요?"
"그러니까 옷을 못 산다고. 티셔츠 한 벌에 30만 원씩 하는 걸 어떻게 사 입어?"
"생일 선물로 사준다잖아요. 1년에 한 번 있는 생일인데 한 번쯤 살 수도 있는 거지. 뭐."
"너도 안 사 입잖아."
"난 뭐... 매일 집에 있으니까... 별로 필요도 없고..."
"그러니까..."
"이러니 우리는 돈을 아무리 벌어도 뼛속까지 서민이라는 거예요."
"서민?"
"그렇죠. 가끔씩 비싼 옷도 사 입고 그렇게 다들 사는데 우리는 전표만 보고 가격에 놀라서 살 생각을 못하잖아요. 그러니 서민 맞지."
"내가 돈을 많이 벌어도 못 살 것 같아."
"돈은 원래 써 본 사람이 쓰고 사는 거라잖아요. 매번 홈쇼핑에서 5벌, 6벌 묶음으로 파는 옷만 사 입고 쿠*하고 비교하니까 아울렛에 와도 옷을 못 사 입죠."


매장을 돌아 나와 둘이 우리네 사는 얘기를 하다 보니 입구까지 걸어 나왔지 뭐예요? 오늘도 아울렛 쇼핑은 틀렸나 봐요. 현금 주고 사는 것도 아니고 상품권을 모아뒀다 사려는 건데도 발걸음을 돌리는 우리 부부는 생각까지 비슷한 것 같죠?


"그러지 말고, 이왕 나왔으니까 임진각에 곤돌라나 타러 가볼까?"
"정말? 나 그거 타보고 싶었는데..."
"그래. 그냥 집에 가기도 좀 그렇잖아. 커피 한 잔 사서 임진각이나 가자. "
"커피 사려면 2층에 올라가야 하는데?"
"2층? 아니야, 저쪽에 편의점 있더라. 거기에서 사자."
"아울렛에서 쇼핑도 안 하고 그냥 가면서 편의점을 털자고요?"
"좋잖아. 이것저것 고를 수도 있고..."


결국 아울렛에서 편의점을 털어 물과 커피, 과자 한 봉지를 사서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아울렛의 편의점 쇼핑



그 모습이 재밌어서 몰래 한 컷 찍어봤습니다. 그러고는

"잠깐 쇼핑백 좀 줘봐요."
"왜?"
"인증샷 좀 찍어두게..."
"인증샷은 왜?"
"재밌어서... ㅎㅎㅎ"


차에 올라타서 둘이 바나나우유에 하나씩 빨대를 꽂아 기념샷도 찍어봤습니다.

로운이 좋아하는 바나나우유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 저는 흰 우유를 잘 못 먹습니다. 희한하게 바나나우유는 괜찮아요. 그래서 유일하게 먹는 우유가 바나나우유랍니다. 그래도 아내의 취향을 생각해서 바나나우유도 담아왔네요. 그 마음이 기특해서 특급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사는 게 별거 있나요? 서로 알아가며 다독다독 맞춰가며 사는 게 또 부부의 사는 맛이죠. 그래서 한 마디 했습니다.


"아울렛에 와서 편의점 쇼핑을 하는 부부는 우리밖에 없을 것 같지 않나요?"
"그래도 쇼핑백에 넣어주니까 폼 나지 않았어?"
"쇼핑백에 편의점 마크가 있는데도요?"
"알게 뭐야. 뭐 하나 들고 있으면 뭐 하나 샀나 보다 하겠지."
"이러니 부창부수 맞는 것 같죠?"
"부창부수라는 말도 알아?"
"왜 이래요? 이래 봬도 나, 글 쫌 쓰는 여자라고요."


우리 부부 사는 얘기 어떠셨나요? 돈이 많든 적든, 아마도 저는 앞으로도 백화점이나 아울렛에서 쇼핑은 못할 것 같습니다. 몇 번을 가 봐도 브랜드도 잘 모르지만 가격표를 먼저 보게 돼요. 돈을 벌어서 쓸 때도 그랬고, 지금은 남편에게 받아쓰는데도 역시 그렇네요. 가끔은 생각합니다. '어릴 때 너무 어렵게 살아서 그런가...' 하고 말이죠. 다행인 것은 옷이며 신발, 장신구, 가방, 화장품... 들에 관심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아래층 동생이 우스갯소리로


"언니는 명품은 안 사는데, 먹는 것과 만들기 재료 사는 비용으로 채널백 사는 것보다 더 많이 쓰는 것 같아."


라고 합니다.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소비 취향도 다르니까요...


덕*원조국수의 진한 멸치국물로 맛을 낸 잔치국수


오늘은 남편과 함께 데이트도 하고 쇼핑도 하면서 오전 시간을 알차게 보냈습니다. 점심은 좀 맛난 것으로 먹어볼까 했는데 남편이 하필 잔치국수를 고르는 바람에 집 근처 국숫집에서 국수 한 그릇 후다닥 먹고 홀로 줌 수업을 하고 있던 동글이에게로 돌아왔네요. 그래도 오늘의 데이트는 오랜만의 바깥구경이라 기분전환도 되고 마음도 흥겨웠습니다.


오늘 얻은 성과는,

동글이가 혼자서 줌 수업을 잘 마치고, 차려뒀던 점심도 스스로 챙겨 먹었던 점과 충동적인 쇼핑을 잘 참은 것, 그리고 남편과의 소소한 데이트였습니다. 오늘의 짧은 마실로 주말을 좀 더 신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에너지가 가득 충전되었거든요.



즐거운, 그리고 많이 웃는 주말 보내세요.
일상 속에서도 감사함이 가득한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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