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은 아니지만 늦둥이 아들이 있으니 녹색도 서고 뽀로로도 봅니다."
"로운님, 정기진료 다녀 가신 지 일주일 정도 되었는데 왜 저를 만나러 이렇게 일찍 오셨을까요?"
선생님은 나를 만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 벌써 10년째 다니고 있는 병원이라 선생님은 내가 이렇게 불쑥 찾아가면 뭔가 심상찮아서 왔으리라 직감적으로 느끼시는 듯하다.
"지난주 진료 때도 불편하기는 했는데, 이러다 말겠지 하고 말씀을 안 드렸거든요. 흉통이 예정보다 심해지고 최근 2주 정도는 잠을 방해할 정도여서요."
"음... 좋은 현상이네요."
"네?"
"로운님의 말씀은 가끔 조이듯 아픈 게 아니라 24시간 계속해서 아프다는 거잖아요?"
"네.'
"그러니까 좋은 증상이라는 거예요. 심장에 무리가 돼서 통증이 생기면 갑자기 1~2분 정도 숨도 못 쉬게 고통스럽다가 이내 말짱해지거든요? 근데 그 잠깐의 통증이 너무 지독해서 아마 참지 못하셨을 거예요. 2주 동안 많이 아프셨지만 견딜 만큼 아프셨으니까 24시간 내내 아프면서도 이제야 오신 거잖아요. 검사는 해 보겠지만 큰 일은 없을 거예요."
선생님의 처방에 따라 심전도 검사를 마치고 다시 진료실로 왔다.
"결과지를 보니까 역시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네요.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인데 약을 처방해드릴게요. 이 약을 먹는다고 한번 먹고 당장 좋아지지는 않아요. 그런데 일주일쯤 먹으면 조금씩 편안해지실 거예요. 3주 뒤에 우리 약속이 있으니까 3주 분을 드릴 테니 드셔 보시고 3주 뒤에 봅시다."
처방전을 받고 약국에서 약을 받아 집에 돌아와서 보니 '공황장애' 치료제였다. 마음을 만지는 일을 직업으로 하면서 정작 내 마음은 늘 이모양이다. 타인의 마음은 잘 어루만져주고 치료해주면서 내 마음 다루는 것은 늘 미숙해서 꼭 병원을 찾도록 만드는 나를 보며 꿀밤이라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언니, 내일은 뭐해요?"
"내일 아침에 녹색어머니 봉사해야 해!"
"어머~ 녹색어머니? ㅎㅎㅎ 그렇구나. 언니는 동글이가 아직 어려서 녹색을 서야 하는구나. 이게 언제 적에 듣던 말이야? ㅋㅋㅋ"(친구의 아이들은 고1, 고2 연년생이다.)
"그래. 난 아직 녹색도 서고 뽀로로도 본다. 왜? 뽀로로 18년 봐 봤어? ㅋㅋㅋ"
"그러게. 언니라서 깜박 잊고 있었네. 아직은 녹색도 열심히 서야지..."
맑은 하늘보다 더 맑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행복한 로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