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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Sep 20. 2021

추석 선물로 '책' 사주면 안 돼요?

"아빠는 엄마한테 책 선물을 받은 적이 없어!"

며칠 전부터 동글이가 자꾸 거래를 해 옵니다.


"엄마, 흔한 남매 8권이 나왔는데 사 주면 안 돼요?"

"지금 있는 것도 한두 번 읽고 안 읽는데 8권을 사려고?"

"그래도 새로 책이 나왔으니까 사주세요. 궁금하잖아요."

"지금 있는 책 한 번씩 다 읽으면 생각해볼게."

"추석 선물로 사 주면 되잖아요."


한 번 두 번 말하더니 오가며 계속 확인을 하기 시작합니다.


"엄마, 흔한 남매 8권 샀어요?"

"아니, 아직."

"안 살 거예요?"

"네가 하는 거 봐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줘야 새로운 책을 사주지. 다른 책도 읽고 게임하는 시간도 줄이면 주문해줄게."

"정말이죠?"

"그럼."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 6시면 일어나서 혼자 TV를 보거나 탭, 컴퓨터를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동글이입니다. 거실로 나가보니 소파에 뒹굴대며 TV를 보고 있네요. 조용히 아침 준비를 했습니다. 10시쯤 되니 배송 완료 안내 문자가 도착했어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떼고 동글이 모습을 지켜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글이는 게임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주말이고 제 편 들어줄 든든한 아빠도 있으니 '만고 땡'입니다. 지켜보다 한마디 거들어봅니다.


"게임하는 시간을 조절해 보자고 이야기했는데도 계속 게임을 하면 흔한 남매 신간이 달아날 텐데..?"


비겁한 방법이지만 반 협박을 해 봅니다. 동글이가 그제야 뒤를 돌아보며,


"어? 샀어? 정말? 샀으면 샀다고 이야기를 해줬어야죠. 그럼 내가 게임 안 했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녀석의 계산법입니다. 그럼 '책을 안 사주면 계속 게임을 하겠다'는 뜻이란 말일까요?


"컴퓨터 끄고 밖에 나가봐. 왔다고 문자 왔어."

"엥? 진짜로? 엄마 진짜 샀어? 완전 대박!"


버선발로 뛰어나갑니다. 현관 앞에서 박스 뜯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네요. 시리즈가 새로 나올 때마다 친구들이 사기 전에 제일 먼저 산 후 자랑하는 게 동글이의 낙입니다. 그 으쓱한 마음을 알겠기에 군말 없이 사줍니다. 책 읽기에 흥미가 없어 만화책이라도 읽는 것이 다행이다 싶지만 유행하는 시리즈물 만화책은 사면서도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저도 어쩔 수 없는 편견 투성이 엄마입니다.


시리즈를 모으는 동글이의 플렉스(flex)


반갑게 책을 뜯고는 식탁 위에 올려두고 다른 것을 하며 배외하는 동글이에게


"책 사달라고 조르더니 왜 안 읽어?"

"응. 내가 뭐 좀 할 게 있어서... 이제 읽을 거야."


말없이 지켜보던 남편이 불쑥 한마디 거듭니다.


"동글아, 열심히 읽어. 아빠는 엄마랑 여태 살면서 책 한 권 선물 받은 적이 없어."


라고 합니다. '어? 그랬나?' 정말 생각해보니 책을 선물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한 번도 책을 사준적이 없어요?"

"없어."

"그렇구나. 없는 것 같네요."


남들에게는 책 선물을 하면서 남편에게는 책을 선물한 적이 없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무안해서


"내가 산 책이 다 당신까지 뭐. 같이 읽으면 되죠."


최근 읽었던 책들


한마디 던져두고 생각해보니 남편과 책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독서동아리를 5년째 하면서 그때그때 산 책을 함께 읽자고 했어도 됐을 것을 왜 한 번도 권하지 않았을까요?


동글이 덕에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독서 모임을 굳이 밖에서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남편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며 생각을 나누면서 살아가면 더 멋진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편과 함께 글을 읽고 쓰며 살고픈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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