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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Oct 03. 2021

운빨 남자도 놀랄만한 브런치 신고식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기


남편은 브런치 입문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브린이 입니다. 글을 쓴다고 해서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곧 싫증을 낼 수도 있고, 내가 글을 쓰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소통도 해야 구독자도 늘고 조회수도 늘어나는 브런치의 시스템과 남편의 성격이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었죠. 그런데 생각보다 남편은 재밌어합니다. 그 반응이 신기하기도 하고 자면서도 글감이 둥둥 떠다닌다고 하니 새롭기도 합니다. 남편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달까요? 그러던 어느 날,


"너는 하루 조회수가 얼마나 나와?


아풀싸! 하필 물어보던 날 피드에 글이 올랐습니다. 이런...


"음,... 매일 다르기는 한데..."

"지금 몇이야?"

"지금은 35,650??"

"뭐? 3만??? 헐~ 진짜? 에잇! 나 이거~ 브런치 안 할래."

"왜요?"

"나는 지금, 35명 읽었어."

"글이 몇 개 없으니까 그렇죠. 그래도 당신은 내가 처음 시작할 때보다는 성적이 좋은 편이에요. 나는 당신도 구독자가 아니어서 0명으로 시작했잖아요."

"그럼, 당신은 구독자가 몇 명이야?"

"구독자... 한..."

"아니다! 됐어!! 안 궁금해. 얘기 안 해줘도 돼!"

"그래서 이제 글 안 쓰려고요?"

"누가 안 쓴대? 그냥 그렇다고..."


남편의 푸념 어린 투정이 귀엽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발행을 누르면 수시로 들여다보게 되는 시기가 있잖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남편도 그 과정을 거쳐가고 있습니다.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고,... 진짜 저러다가 그만 쓰려나 싶었는데 퇴근 후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씁니다.


"이제 브런치 안 한다면서요?"

"그러려고 했지. 그러려고 했는데 자꾸 생각이 나! 나 아무래도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 이야기 소재가 자꾸 떠오른다니까?"

"ㅎㅎ 좋은 일이네요. 아침에만 해도 그만둘 것처럼 하더니..."

"이거, 완전 중독이야. 안 하려고 해도 자꾸 떠올라서 쓰게 되잖아?"


파란만장한 남편의 삶을 글에 담아내려니 이야깃거리가 샘솟는 모양입니다. 이 이야기를 쓰다 보면 저 이야기가 떠오르고, 저 이야기를 쓰다 보면 또 이 이야기가 떠오르고,... 계속 쓰다 보면 글쓰기도 늘고 생각도 정리되는 기쁨을 알게 되겠죠.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며칠이 지났습니다. 남편이 쓴 글 조회수가 폭증하네요. 남편의 글이 피드에 오른 모양입니다. 그래서 얼른 창을 열어보았습니다.


"뭔 일 이래??"

"당신 글이 피드에 올라서 조회수가 갑자기 오르는 거예요."

"진짜? 이거 장난 아니야. 순식간에 10000을 찍었어. 어떻게 해야 해?"

"어떡하긴요. 피드에 오른 글을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전 국민이 다 읽는 거지."

"와~ 무섭다... 이럴 수도 있구나..."


남편과 통화를 하고 다시 들어가 보니 첫 번째 창에서 요지부동입니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기'라더니 한 달도 안된 브린이의 가슴이 벌렁벌렁 거릴 만한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네요.




퇴근 후 남편은 현관을 들어서며,


"어떻게 해? 벌써 40000이 넘었어. 이거 글 어떻게 내리는 거야?"

"글을 어떻게 내려요? 올리는 것도 브런치 마음이고, 내리는 것도 브런치 마음이지..."

"그래? 그럼 그냥 둬야 되는 거야?"

"제목이 재미있어서 아무래도 조회수가 좀 나올 것 같은데요?"

"별일이 다 있어. 신기하네... 그런데 동글이 얼굴이 나왔는데 괜찮을까?"


곁에 있던 동글이가 한 마디 합니다.


"아빠~ 아빠 얼굴만 가리면 어떻게 해? 나도 초상권 있다고..."

"아빠가 알았나? 이게 올라갈지 아빠도 몰랐지..."

"그러니까 사진을 대충 올리면 어떻게 해? ㅎㅎ"

"사진을 올리려면 옷을 입고 있는 거루 올렸어야지 너무 리얼한 거 아니에요? 러닝셔츠 차림으로 그냥 올리면 어떻게 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신기해서 열어보는 거 아닐까요?"

"아니, 동글이랑 같이 게임하는 걸 올리려고 보니까 이거밖에 없더라고..."

"바지라도 입은 게 어디예요. 정말 속옷 차림이었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요."

"그러게... 앞으로 조심해야겠어."


피드에 오른 첫날 저녁, 신기한 체험을 한 남편의 회고로 날이 저물어 갔습니다.




아침이 되어 아이들 아침을 챙겨주고 있는데 남편이 허겁지겁 방에서 나옵니다.


"여보!! 여보!"

"왜요?? 무슨 일 있어요?"

"큰일 났어. 밤 새 만명도 넘게 읽었어. 와~ 이거 대박~"

"그럴 것 같던데요 뭘... 오늘도 아침에 보니 첫 화면에 있더라고요. 오늘 더 읽으면 더 오르겠죠."

"이러다가 주변 사람들이 다 읽는 거 아니야?"

"재밌게 사는구나~ 하겠죠... ㅎㅎ"

"이제 막 무서우려고 해... 별 내용 없는데... 제목에 낚여서 들어왔다가 별 내용 없으면 사람들이 읽어보고 욕하는 거 아니야?"

"내가 읽어봤는데 재밌었어요. 욕할 정도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뭐, 덕분에 글도 알리고 작가 이름도 알리고 좋죠."


어리둥절한 남편의 수선으로 며칠 째 브런치 창이 바쁩니다. 다른 글을 쓸 정신도 없어요.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놀랍고 당황스러운 남편의 브런치 신고식은 거창하기도 합니다. 3일 새 10만 조회수를 무난히 통과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이 사람 운빨일까요?




3일째 남편의 글은 피드에 머물고 있습니다. 여전히 조회수도 짱짱하게 오르고 있죠. 브런치 생활을 하다 보니 어떤 글은 피드에, 어떤 글은 브런치 메인창에 소리 소문 없이 올라갑니다. 글이 창에 버젓이 올라 있으면 '읽히는 글을 쓰고 있나 보다' 싶다가도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어보면 한 없이 작아지는 나를 보며 크고 작은 슬럼프에 빠집니다. 수많은 글들 중 왜 내 글이 올랐을까? 브런치의 선택은 어떤 기준으로 피드와 메인에 글을 올려주는 걸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저 궁금증일 뿐 제가 관여할 문제는 아닙니다. 글은 나의 것이고 글을 소개하는 것은 브런치의 몫이니까요.


가을이 오고, 브런치의 이벤트로 많은 글벗 작가님들의 마음이 분주한 것 같습니다. 자주 보이던 작가님들이 보이지 않으니 궁금하기도 하네요. [출판 프로젝트]를 준비하느라 글을 다듬고 계신가 보다 생각해봅니다. 1년에 한 번 있는 출판 프로젝트는 책을 쓰고 싶은 작가님들의 '꿈의 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마다의 색깔로 옷을 입힌 브런치 북이 매일매일 올라옵니다. 어쩜 그렇게 간결하게 글을 쓰고, 브런치 북을 소개하는지 올라올 때마다 독자를 유혹합니다. 그 열정을 저에게로 옮겨와 함께 으싸으싸 힘을 내야 하는데 저는 나날이 작아지고 있습니다. 책 한 권이 하나의 주제로 펼쳐지려면 그만큼의 기량이 있어야 할 텐데 나에게 그런 기량이 있는지 곱씹어 생각하게 됩니다. 채택도 되기 전에 겁부터 나는 것을 보면 소심한 로운이가 출연한 모양입니다. 모두에게 출판의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 해마다 도전하는 작가님들의 의욕과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며칠 동안 놀람과 경이를 남편과 함께 체험하며 엄마 미소가 지어집니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 새로운 세계에 한 발 내딛는 경험이 줄어드는데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브런치와의 만남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주고, 같은 주제로 생각을 공유하게 해 주어서 좋습니다. 남편과 한참 동안 같은 주제로 수다 떨 수 있는 경험이 너무 오랜만이라 신기하고 새롭습니다. 서로의 글을 읽어주고 생각을 들여다보며 더 많이, 더 깊이 알아가는 계기가 되어 준 것이 글쓰기여서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오래도록 함께 글을 쓰며 도란도란 정답게 나이 들어가는 꿈을 꿔 봅니다.



글 읽기 좋은 가을...
남편과 함께 글을 읽고 글을 쓰는 로운입니다.










사진출처: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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