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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un 21. 2021

엄마의 하루는 늘 분주하다.

우리는 다 똑같이 아이 키우는 아줌마다.

아침부터 분주한 하루를 시작했다.

백신 접종으로 쾌청한 컨디션이 아니었음에도 일상은 순서대로 진행되고 나는 컨디션과 상관없이 엄마의 일을 해 나간다.


이번 주 온클 주간이라던 앵글이가 학교에 가야 한다며 부산을 떠는 통에 정신없이 동글이 아침만 겨우 챙겨주고 나갔다 왔더니 오는 길 저 너머로 터덜터덜 동글이가 등교하는 모습이 보였다.


"동글아~ 잘 다녀와~"

아이는 무심하게 뒤돌아보며

"응~"

하더니 제 갈길 간다.

'아차! 물을 안 챙겼네.'


코로나가 시작되고 학교에서는 물을 주지 않아서 개인 텀블러를 들고 다녀야 한다. 잠시 가져다줄까 생각하다 이내 그만뒀다. 이 정도 문제쯤은 스스로 해결해보란 의미로...


어젯밤 양치하다 치아 보철이 떨어져 병원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치과도 가야 했고, 온클 앵글이 점심도 챙겨야 했다. 지난주 백신 접종으로 느슨하게 보냈던 탓에 미뤄뒀던 수업 준비며 보고서도 이메일로 보내야 하고, 주말 미팅 서류도 꾸려야 하고... 오늘 하루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있었다.


동글이 물 챙기는 건 잊었지만 순서대로 오늘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하고 나니 동글이 하교시간이 되었다. 2시가 넘어 집에 들어온 녀석이 정수기 앞부터 내달려가더니

"엄마~ 오늘 물 안 챙겨줬더라? 목 말라죽는 줄 알았다니깐?"

벌컥벌컥 세 잔을 연거푸 마시더니 그제야 목마름이 가시는지 씻으러 들어간다.




엄마의 하루는 늘 분주하다.

신기한 것은 분주한 하루 일과가 모두 제각각이고 연결점이 없는 일 투성인데도 해 낸다는 거다. 동시에 두세 가지 일쯤은 지체 없이 해내고 심지어는 두세 가지 일에 전화통화며 깨똑 문자며 초인종 누르고 배송된 택배 물품도 받아 정리하는 것을 동시에 해낸다. 이럴 수가...


같은 일을 아빠에게 부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기하게도 남편들은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아들과 별 차이가 없어진다. 밖에서는 근사한 타이틀과 업무 실적으로 삐까번쩍 한 남편들이 왜 집으로 들어오면 일시정지 상태가 되는지 참 궁금하다. 물론 이 내용은 모두의 남편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내 주변의 몇몇 보다 조금 많은 남편들이 그렇다.


아내와 함께가 아니면,

병원에도 혼자 안 가고,

쇼핑도 안 가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도 못하고,

심지어 핸드폰에 앱 하나만 깔면 수만 가지 음식이 즐비한데도 주문을 못해(안 하는 건가? 싶긴 하다.) 대충 라면이나 주전부리로 때우기 일쑤다.

결혼과 동시에 뜬금없이 효자가 되거나

연애할 때 잘 먹던 음식도 못 먹는 음식이 되기도 하고,

아이를 봐달라고 하면 정말 보기만 한다.


하루 종일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해도 티가 안 나고, 조금만 손 놓아도 집안 꼴이 말이 아니게 된다.

셈  할 수 없는 일이다 보니 가치를 메길 수가 없고,

알아달라 말하기도 구차할 때가 더 많다.

당연한 듯 엄마, 아내의 이름으로 주어진 노동이 어쩔 때는(특히 아플 때) 서운하고 헛헛하다.


아줌마 세상에서 살아보니,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도,

커리어를 쌓아서 제 입지를 높였던 것도,

외모를 잘 가꿔 한 인기 했던 것도

이 세계에서는 별반 특별하지 않다.

다 똑같이 아이 키우는 아줌마다.


모이면 아이들 커가는 얘기, 남편님 손가는 얘기로 주제가 1분 단위로 바뀌고, 간만 외출에 쇼핑을 가도 결국 가족들 먹거리, 아이들 옷가지 사는 거로 마무리되는 삶이 지금 나의 삶이다.


그렇다고 불행하다거나 불만이 있거나 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상황이 변하고 역할이 달라져 모습이 변했고 그 안에서도 삶은 이어지니 오늘도 분주했지만 열심히 나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을 뿐...


그래. 그랬구나...

오늘도 참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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