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필사 23일째

2021-11-05/#023 [아티스트 웨이]

by 로운

아티스트 웨이아티스트 웨이

[새벽 기상 04:58] 모닝커피와 함께 하루 시작!



[아티스트 웨이-p131~138 수치심 극복하기]



수치심 극복하기
수치심을 제어장치이다.


• 어떤 작품을 만드는 행위는 바로 그것을 사회에 드러내는 것이다. 예술은 그 모든 것을 밖으로 드러내고 빛을 비춘다. 예술은 우리 주위를 맴도는 어두움에 빛을 드리운다.

• 사람들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때로는 그 전달자를 제거하기까지 한다.

• 예술은 굳게 닫힌 옷장을 열고, 어두운 지하실과 다락방에 맑은 공기를 들여보낸다.

예술은 상처를 치료한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선 먼저 상처가 드러나야 한다.

아티스트의 창조적인 행동은 종종 수치심의 반격을 받는다. 나쁜 비평은 우리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주된 원인이다.

• 아티스트들은 작업을 잘해나가다가 완성할 때쯤 되면 이상하게도 그 작품이 만족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런 생각은 고통을 피하고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전형적인 대응장치이다.

• 어린아이는 관심을 끌려고 한 일들이 계속 무시당하면 관심을 끄는 것 자체를 두려운 행동으로 인식하게 된다.

• 어린 아티스트가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어떤 일을 해내서 부모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 노력이 무관심이나 질책에 부닥친다면, 어린 아티스트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부모에게 인정받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종종 창조성을 발휘하다가 억울하게 수모를 당한다.

• 수치심은 무관심 아래 숨어 있으면서 우리의 새로운 노력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래서 창조적인 작업을 시도하는 순간 수치심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우리 내부의 아티스트는 창조적인 어린아이인데 수치심은 우리 안에서 어른으로 기능한다. 따라서 이 어린아이가 만드는 예술작품에 우리는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다.

•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작가라면 좋은 의도의 건설적인 비평이라도 작가 생활을 끝장낼 수 있다.

모든 비평이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해두자. 아무리 혹독한 비평이라도 그 초점이 정확하고 올바른 방향을 가리킨다면, 그것을 읽는 순간 "아하!"하고 감탄사가 나오기도 한다.

해로운 비평은 헐뜯고 비웃고 비난만 하는 비평이다.

창조성을 회복하는 과정에 서 있는 우리는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있다.

• 자신을 방어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올바른 비평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 창조적인 아티스트의 삶을 추구하는 우리는 언제 비평이 필요하고, 누구의 비평이 적절한지를 알아야만 한다.

예술은 안전하게 부화시킬 장소가 필요하다.

아티스트로서 우리는 자신만의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법을 스스로 배워야 한다. 내면의 어린아이와 같은 창조성을 수치심으로부터 보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예술활동을 통해 저마다의 부끄러운 비밀을 드러냄으로써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해방시킨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에 틈을 내줘서는 안 된다. 일단 시작되면 의심을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러면 우리는 당장 행동을 취해야 한다.

"너는 훌륭하고 용감한 아티스트야. 잘 해내고 있어. 그 작품을 만든 것은 잘한 일이야." 이렇게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글을 쓰는 삶을 선택한 것은 축복입니다.

글을 씀으로 인해 치유가 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창조적인 행위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받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조금 더 좋은, 조금 더 만족스러운, 조금 더 인정받고픈 마음으로 노력합니다.


상처는 밖으로 꺼냈을 때 치유됩니다.

안으로 안으로 삼키면 결국 곪아 고름이 차고 결국 도려내야 치료가 됩니다.

글을 씀으로 인해 내면의 나와 대면하는 연습을 합니다.

그것이 꼭 글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악기 연주, 노래 부르기, 그림 그리기, 운동 등 발산할 수 있는 예술적 행위는 모두 치유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얼마 전 악성 댓글로 인해 상처 받고 주저앉은 경험이 있습니다.

올바른 비평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내면의 수치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앉았습니다.

오늘의 명상을 이전에 했더라면 조금 더 단단했을까요?

어쩌면 그 경험으로 인해 오늘의 명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글을 쓰는 많은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아주고, 답글을 받습니다.

모두 글을 쓰는 것에 진심이고, 성실합니다.

부귀영화가 따르고 명예가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 매일 글을 쓰고 또 씁니다.

아마도 글을 씀으로 인한 치유의 능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살면서 대부분 나름의 고통과 상처가 있습니다.

글을 통해 발산하고 그 글을 읽고 공감해 주는 독자들이 있어 고통과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얽히고설킨 감정들이 단정해지고, 요동치는 마음이 잔잔해집니다.

꼭 드러내는 글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저처럼 모닝 페이지에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을 적어내는 것만으로도 발산하는 효과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닝 페이지는,
하루 3쪽, 매일 아무것이든(할 말이 없으면 '할 말 없음'으로 가득 채우더라도) 그냥 적는 것입니다. 가급적 아침 기상 후 바로 적는 것이 좋으나, 제가 해 보니 시간은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나 조차도 써 놓은 것을 다시 읽지 않습니다. 그저 닥치는 대로 적는 것입니다. 그것이 욕이어도 상관없습니다. 모닝 페이지는 일기도 아니고, 낙서 같은 것이니까요.

놀라운 것은,
처음에는 아무 말 대잔치였는데 날짜가 지나고 달이 지날수록 채우는 것이 쉬워지고, 마음이 단정 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복잡하게 얽힌 많은 생각들과 지금 현재 놓인 자신의 현실이 힘이 든다면 한 번 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오늘의 하루가,

행복하고 편안한 날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매일 한 뼘씩 자라는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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