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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Nov 11. 2021

고2 딸과의 산책 [이성교제와 진로]

"혹시 동글이 어머니세요?"

앵글이와의 산책길 1편.


앵글이의 이야기보따리 4.


엄마, 어제 충격적인 말을 들었어.

무슨 말?

아니 어제 동글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친구를 데리고 집에 온 거야.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보여주기로 했대.

그런데?

동글이가 집에 들어와서 애벌레를 가지러 가고, 친구는 현관에 있었거든? 그래서 내가 "안녕? 동글이 친구니?"라고 친절하게 인사해줬어.

잘했네. 그런데 무슨 충격적인 말을 들었어?

그랬더니 걔가 나한테 "어머니세요? 안녕하세요..."라는 거야. 아니, 내가 어딜 봐서 어머니로 보여? 나 참 기가 막혀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 웃을 때가 아니야. 아니, 이모도 아니고, 어떻게 내가 어머니로 보이냐고...

네가 너무 편한 복장으로 있어서 동글이 친구 눈에는 엄마로 보였나 보지. 동글이가 늦둥이라 엄마 나이가 많은 거잖니. 동글이의 친구 엄마들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 나이대니까...

아무리 그래도 내가 18살인데 엄마로 보였다고? 그 녀석, 눈이 이상한 거 아니야??

너처럼 나이 많은 누나가 있는 줄 몰랐나 보지.

아... 됐어!! 나 완전 맘 상했거든? 생각해 보니 또 울컥 올라오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지 말라고... 난 진짜 심각한데 엄마는 왜 자꾸 웃어... ㅠ.ㅠ 다이어트도 좀 더 하고, 더 이뻐져야겠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앵글이의 푸념으로 저는 양쪽 볼이 풍선 100개 분 것 마냥 뻑뻑해지도록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런들 저런들 덕분에 1년은 젊어질 듯 웃었네요. ㅎㅎ



앵글이의 이야기보따리 5.


엄마, 애들이 요즘 나 빼고 다 연애해.

너는 왜 안 해?

왜 안 하냐고? 하지 말라고가 아니라?

왜 하지 마?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맘에 드는 남자애가 없어서 안 사귀는 것도 있고... 그리고 수험생이 연애가 말이 돼? 사귀라는 엄마는 또 뭐고?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지.


※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아이들이 이성에 관심이 높아지고, 서로 사귀는 친구들이 많아집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가볍게 교제를 해도 괜찮으나,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사귀게 되면 졸업 이후에도 관계가 이어질 수 있으니 부모님들께서 걱정하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흘러가는 것을 억지로 막을 수 있나요? 감정이 끌려가는 것을 말이에요. 올바른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자기를 존중하고, 아끼며, 서로에 대한 예의와 혹 있을 이별에 대한 예의도 잘 지켜가도록 이야기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앵글이의 이야기보따리 6.


엄마, 근데 엄마는 정말 내가 대학에 안 가도 잘 살 것 같아?

응, 잘 살 것 같은데? 왜??

아니, 엄마가 맨날 그렇게 말을 하는데, 내가 스트레스받을까 봐 걱정돼서 그냥 하는 말인가 하고...

대학에 가든, 안 가든 잘 살 것 같아.

그걸 어떻게 알아? 나를 그렇게까지 믿어?

그럼. 18년이나 키웠는데 엄마가 너를 모르겠어? 너는 대학에 상관없이 잘 살 거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

음... 그래. 너는 네가 계획을 세워서 혼자 공부하잖아. 그렇지?

응.

그리고, 매일 2시간씩 운동하고, 체중 관리한다고 좋아하는 음식도 조절해서 정해진 양만 먹고, 자는 시간, 깨는 시간 철저히 지키려고 하고, 인강으로 수업을 듣는데 완강해서 2년이나 연장됐잖아. 그 모든 것들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기량이 있다고 생각해.

오~~~~ 듣고 보니 나 되게 멋진데? 엄마가 이야기해주니까 되게 멋진 사람같이 느껴져.

매일 그렇게 하고 있는걸 뭐. 가끔 웹툰 보느라 하루 종일 늘어져 있을 때도 있지만, 어떻게 사람이 기계도 아닌데 언제나 똑같이 잘 지키며 살아. 엄마도 그렇게는 못 살았어. 나도 못하는 걸 너한테 하라고 하는 건 욕심이지.

내가 이래서 엄마랑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거야. 엄마가 이렇게 잘 설명을 해주니까...

작심삼일이라고 하잖아. 그럼 계획을 일 주기로 계속 다시 짜면 되지. 그럼 하루라도 더 잘 지킬 수 있지 않을까?

그거 좋은 생각이네. 사실 계획 짜고 일 지키는 것도 엄청 어려워. 내가 해봤는데 어렵더라고...

그럼 계획을 하루, 이틀 단위로 짜면 되지. 매일 아침 눈뜨며 그날의 계획을 짜도 되고... 요즘 엄마가 새벽 필사하면서 아침에 하루 계획을 세워보니 좋던데?

그것 좋은 생각인데? 역시 엄마는 내가 답답한 부분을 아주 잘 알아.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나더러 신기하대.

뭐가?

내가 친구들 상담을 많이 해주거든? 애들이 깊게 생각을 잘 안 해. 친구들이 와서 진로 문제, 연애 문제 이런 걸 물어보면 내가 잘 상담해주거든. 그러면 '이런 걸 어떻게 알아?' 그러길래 엄마한테 들었다고 하거든? 그러면 되게 신기해해.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엄마랑 하느냐고... 그럼 누구랑 해? 엄마가 아니면?

그렇지. 엄마가 제일 편하고 너를 제일 잘 알고, 네 말을 제일 잘 들어주잖아.

그런데 친구들은 엄마랑 이렇게 많이 이야기 나누지 않아. 내가 엄마랑 많이 친한 거야.

나도 알아. 그래서 고맙고 이뻐. 우리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잘 지내자.

당연하지. 난 결혼해도 엄마 집 근처에 살 거야.

아니? 그건 아니야. 멀리 떨어져서 살아.

왜? 난 맨날 엄마 집에 올 건데?

아니야... 비밀번호 바꿔버릴 거야.

다 아는 수가 있지. 내가 엄마 집 와서 냉장고도 좀 털어가고 할 테니까 나 결혼해도 나 좋아하는 거 많이 사다 놔줘? 알았지?

그건 아니지... 벌써부터 엄마 집 털어갈 생각이나 하고 안 되겠군. 넌 접근금지명령을 내려야겠어. ㅎㅎㅎ


함께 걷는 내내 신이 나서 떠들던 딸아이의 수다 중 기억나는 것 몇 가지만 적어보았어요. 긴긴 이야기가 되었네요.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 너무 많은 수다를 들어서 기억조차 못하겠어요. 내일이면 바람과 함께 겨우살이 준비에 들어갈 나무들이 오색찬란한 옷을 벗어내겠죠? 조금 더 길게 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싶었지만 계절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올 해의 마지막 가을 날을 딸과 함께 보내서 행복했습니다. 한 해, 두 해 넘어가며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다행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네요. 친구 같은 엄마와 딸로 앞으로도 잘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앵글이가 집에 도착하면 보통 5:20~30분 정도입니다. 그 시간에 딱 맞춰 저녁 준비를 해 두죠. 급식을 안 먹는 앵글이가 도착하면 배고플 것 같아서 되도록 새 밥으로 준비해 놓습니다. 오늘은 앵글이가 좋아하는 얼큰한 두부찌개를 끓여 두었습니다.


월요일 오후 5:30.


엄마, 다녀왔습니다.

응. 고생했어. 엄마 지금 저녁 준비 중이야.

오늘은 뭐야?

네가 좋아하는 두부찌개. 도착시간에 맞춰 끓이고 있었지?

오~ 이건 정말 찐 사랑인데? 엄마는 날 진짜 많이 사랑하는구나?

그걸 이제 알았어?

진작 알았지. 그런데 내가 올 시간에 맞춰 밥을 했다는 건 진짜 날 너무 사랑한다는 거잖아? 엄마, 나 진짜 배고파.


도착하자마자 가방 던져놓고 밥부터 챙깁니다. 8시부터 5시 반까지 공복이니 얼마나 배가 고플까요? 먹고살자고 공부도 하는 건데 한편으로는 짠합니다.



화요일 오후 5시. 

데리러 와달라는 카톡이 들어오네요. 어쩌겠어요. 데리러 가야죠.


엄마, 우리 이번 주 목요일부터 다음 주까지 온라인 클래스야. 학교 안 가. 앗싸~ ^^

왜?

수능 보잖아. 오늘 사물함 다 비웠어. 책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집까지 들고 오기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엄마한테 전화한 거야.

그러네. 가방이 빵빵해 보여. 그런데 사물함은 왜 비워?

우리 교실이 수능 시험장이라서 목요일부터 학교 전체 방역하고 책, 걸상 낙서 지우기 시작해야 한대.

그런 준비를 하는 줄은 몰랐네. 낙서까지 다 지우는구나.

응. 정말 수능이 다가오는 게 느껴져. 선배들은 얼마나 불안할까?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아. 괜히 나도 불안한 거 있지?

막상 부딪치면 다 잘 해내게 될 거야. 그리고, 뭐가 걱정이야? 엄마가 뒤에서 딱~ 지키고 있는데... 걱정하지 마~

 

수능시험일이 다가오니 고 3만 불안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고2도, 고1도 본인들이 거쳐갈 예측 못할 미래의 상황이 그려져 불안하겠죠.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잘 견뎌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살다 보면 그보다 더한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아가며 어른이 되어가겠죠. 되도록 출렁이지 않고 올곧이 걸어갈 수 있도록 방향지시등을 깜박깜박 켜주고 싶은 것이 엄마 마음입니다.


고3 친구들!! 좋은 성과 낼 수 있도록 일주일 잘 지내봅시다!



 오늘도 아이와 함께 크는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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