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필사 34일째

2021-11-16/#034 [잘 읽히는 글쓰기 연습 6]

by 로운


[새벽 기상 04:58] 나의 하루는 "매일 새벽 4시 58분에 시작된다!"


잘 읽히는 글쓰기 (6)


[글쓰기의 구조 2 - 전문(lead)]

※ lead : 신문이나 방송 따위의 보도 기사에서, 내용의 핵심을 담은 첫머리의 짧은 구절


• 기자가 맨 처음 제시하는 문장

⓵ 기사의 얼굴이자 기관차, 기사를 이끄는 나침반 역할

⓶ 리드가 좋아야 기사 전체를 읽을 마음이 생긴다.


• 리드는 기사 내용을 간단명료하게 압축한다.

⓵ 짧고 단순하게, 핵심적 요소를 찾아 쓴다. : 촌철살인의 리드 한 줄은 기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⓶ 독자가 읽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 관심을 나타내도록 쓴다.

⓷ 취재 단계, 기사를 쓰기 직전, 기사를 쓰면서도 생각해야 좋은 리드를 쓸 수 있다.


• 리드는 기사의 뉴스성을 강조한다.

⓵ 리드를 보면 기사의 가치와 비중을 알 수 있다.


• 편집자가 제목을 붙이는 데 용이하다.

⓵ 편집자가 바쁠 때 리드만 보고도 제목을 뽑을 수 있어야 한다.


• 한 문장 또는 리드와 리드를 뒷받침하는 sub lead로 구성




피곤하면 이상하게 코 주변이 부르터 올라옵니다. 보통은 입술 주변이 부르트는데 저는 이상하게도 코 주변과 콧속에 염증이 생깁니다. 입술이 부르트는 것보다 두 세배는 더 심한 통증이 옵니다. 못 견디고 병원에 갔더니 못 고친다고 하더군요. 스스로 잘 관리해서 컨디션 조절을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가 봅니다.


고작 뾰루지 하나 난 것뿐이어서 보기에 괜찮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당사자는 아프고 불편합니다. 세수를 할 때도 콧날이 만져져 통증이 발끝까지 오는 것 같고, 콧물을 닦을 때도, 로션을 바를 때도 건드려져 아파옵니다. 일반적으로 나는 여드름 종이 아니어서인지 피부 깊숙한 곳까지 통증이 느껴져서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인중 가까이가 부르터 올라오고 있어 치아까지 통증이 느껴집니다.


이상하죠? 우리 몸의 크기에 비해 부르터 올라온 부분은 고작 점 하나 정도입니다. 며칠이 지나면 조금씩 자라나 커다랗게 되겠지만 오히려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고, 염증이 차 오르면 통증은 시작 단계보다 줄어듭니다. 통증이 가장 심할 때는 부르트기 시작 한 바로 지금입니다.


관계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알아지는 것은 '나 자신' 뿐인 듯합니다. 내 안의 생각들을 나 혼자 알고서 눈치채 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입니다.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주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보여주고 그 모습에 실망해서 돌아설 관계라면 언제고 어긋날 관계입니다. 어긋날 관계에 정성을 들이면 결국 상처 받는 것은 '내'가 될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시간의 흐름 따라 알아지려니' 착각하면 상처가 남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처음에는 몰라줘도 괜찮다고 생각해도 시간이 흐르고 그 서운함이 쌓이면 상처가 됩니다. 그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섭섭함이 자라나 병이 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정은 베풀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그 베풂이 자라나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가까워질수록 그 '선'을 명확히 지키고 조심할 때 관계가 풍성해집니다.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할 예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작은 뾰루지에 통증이 생기니 나도 모르게 손이 갑니다. 온갖 균이 가득 찬 손으로 자꾸 만지게 되면 뾰루지가 커지고 덧나고 결국 곪아 흉터가 남습니다. 아프지만 참고 건드리지 않으면 며칠이 지나 서서히 통증이 사그라들고 회복됩니다.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제각각의 사람들을 만나보니 한 사람도 나와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마주하다 보면 대충 성향별로 분류할 수 있는 눈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선입견이며 착각입니다. 내가 세운 기준이 반드시 옳고, 그름의 원칙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기준으로 세운 틀에 상대를 맞춰놓고 내게 유익하면 아군, 내게 불의하면 적군으로 나누어 판단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편해도 지켜야 할 선을 지켜가며 살아가는 것이 '나잇값'인 것 같습니다. 1등만 있는 세상이 좋을 것 같지만 조화롭지 않습니다. 모두가 최고가 되고 싶어 하지만 꼭 그래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얼마큼 좋아하고, 어느 정도까지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아가는 시간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해보고 이야기하는 것과 해보지도 않고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가능성이 어느 정도일까요? 어쩌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나를 괜찮다고 인정하며 살고픈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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