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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Nov 17. 2021

장인, 장모와 허그로 인사하는 사위

포옹抱擁 : 다른 사람을 품에 껴안음

남편은 장인, 장모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진한 포옹을 합니다.

마음을 담아서, 으스러지도록 꼬옥 안아주며 "사랑합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시던 부모님께서도 20년 동안 한결같은 사위의 인사에 적응을 하셨는지 이제는 사위의 포옹을 은근히 기다리시고, 때로는 먼저 다가와 안아주기도 하십니다.


사랑의 표현이 많은 부모님이시냐고요?

아니요... 자라면서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고, 안아주셨던 기억은 더더욱 없습니다. 무뚝뚝하고, 표현이 없으셨던 부모님과 우리 남매는 '표현하지 않아도 알려니'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남편을 만나고, 남편을 부모님께 소개하는 날부터 남편은 첫 만남에서 헤어질 때 부모님을 안아주었습니다. 신기한 광경이었습니다. 정작 부모님과 저는 지금도 서로 안아주지 않습니다. 어색하고 오글거려서 마음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딸을 30년 동안 키우시며 외적인 표현 없이 살아오신 부모님께도 남편은 신기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결혼 후 20년이 넘도록 남편은 부모님께 한 번도 거름 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진한 포옹을 합니다. 저는 "어머님, 사랑합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를 외치며 포옹하는 남편을 곁에서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왜 같이 안아주지 않느냐고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왜 안될까요?


제가 뻘쭘하게 세 사람의 만남과 이별을 지켜보고 있으면 남편이 다가와 억지로 저를 끌어다가 부모님 앞에 두고 양 팔을 벌려 저와 어머니, 저와 아버지를 한꺼번에 끌어안아줍니다. 살다 보니 아내가 스스로는 포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유도하는 거겠죠. 그 마음을 알기에 항상 고맙습니다.


"내가 왜 장인, 장모님을 안아 드리는 줄 알아?"

"모르겠는데요?"

"마음가까워야 따뜻해져."

"??"

"당신도 내가 아침저녁으로 안아주잖아. 꼭 안고 있으면 그 사람의 마음이 전해져."

"그래요?"

"장인, 장모님도 처음에는 어색해서 몸이 뒤로 쭉 빠지고 엉거주춤하셨거든? 그런데 지금은 나보다 더 꽉 안아주셔. 익숙해지니까 괜찮아지신 거지."

"네..."

"당신은 참 이상해. 당신 부모님인데 왜 나보다 더 어색해해?"

"그러게요... 잘 안되네... 어릴 때부터 안 해서 그런가 봐요."

"그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더 어색해야지. 한두 번 어색함을 감추고 해 보면 차차 괜찮아져. 그리고 되게 좋아하신다? 그거 알아?"

"아니요? 우리 남매 키울 때도 사는 게 바빠서 안아주거나 표현하면서 키우신 게 아니라서 좀 이상해."

"요즘에는 은근히 기다리시는 것 같아. 헤어질 때 내 눈을 보신다니까? 저놈이 가까이 오나, 안 오나 하고... ㅎㅎㅎ"

"좋으신가부지. 나도 당신이 부모님께 따뜻하고 곰살맞게 하니까 좋아. 고맙고요."

"안아드리면 요즘에는 부모님이 더 꽉 안아주셔. 당신이 그 느낌을 알아야 할 텐데..."


본인은 하면서 아내가 어려워하는 것을 아는 남편은 제게 그것을 시키거나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고맙습니다. 억지로라도 하라고 했다면 마음이 불편했을 거예요. 몸이 앞서가서 부모님을 안아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남편이 안아 드리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푸근하고 고맙습니다. 남편은 제게는 시키지 않지만 아이들은 꼭 시킵니다.


"어서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안아드리면서 사랑한다고 인사드리고 오렴."


이제는 익숙해져서 아빠가 시키기 전에 미리 달려가 안아드리면서 뽀뽀도 해 드리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집에서 포옹으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오직 저 한 사람뿐이죠.


가난한 집으로 시집 온 어머니는 11 식구의 가장이었습니다. 사는 것이 버겁고 힘든 가운데 남편 학바라지도 하셨습니다. 덕분에 아버지는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은 11 식구 중 어머니 한 사람뿐이었죠. 그러던 어머니께서 아버지 학 바라지를 마친 뒤 마흔이 넘은 나이부터 공부를 시작하셨습니다. 일하면서 공부하느라 본인 삶이 바쁘셨습니다. 덕분에 오빠와 저는 스스로 열심히 자랐죠.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오빠와 제가 들고 갈 도시락을(오빠 2개, 나 2개) 싸서, 오빠 가방에 넣어주고, 제 것을 챙겨 학교를 다녔습니다. 흔한 외식도 없이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나이가 들고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죠. 부모님께서 살아오신 세월도 녹록지 않았지만, 어린 제가 살아온 길도 힘에 벅찼었기에 사랑을 표현하고 주고받을 여유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남편을 만나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표현하며 사는 것이 미숙해서 표현 못하는 아내를 대신해 주는 남편이 든든합니다. 나이 들어가며 외로울 수 있는 부모님께 넉넉한 사랑의 표현을 대신해 주는 남편이 참 고맙습니다. 어쩌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잔소리 없는 아내, 맛있는 밥상을 언제든지 대령해 주는 아내, 남편에게 과할 만큼 친절한 어투로 말하는 아내 역할을 해낼 만한 이유가 되고도 넘치는지도 모릅니다.


글을 쓰는 것이 이럴 때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늘 고마웠는데, 고맙다고 말을 했지만 절절하게 마음을 전한 적이 있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나를 챙겨주는 남편도 고맙지만, 내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살가운 남편이 더 고맙게 느껴집니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사랑의 완성처럼 여겨져서일까요? 생활 가운데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이 편안한 것, 그것이 행복인 것 같습니다.


감사를 배워가는 로운입니다.



아들이 되어주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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