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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Nov 16. 2021

"여보, 우리 해볼까? 안 한 지 오래됐잖아."

'남편이 왜 저럴까요? 갑자기, 왜 그럴까?'

토요일 저녁.

저마다 각자 하고픈 것들을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평화로운 일상입니다. 동글이는 탭을 보고, 앵글이는 친구와 통화를 하고, 남편은 컴퓨터로 영화를 감상 중입니다. 저는 동글이 곁에서 글감을 찾으며 책을 읽습니다. 한 참 책에 집중하고 있는데 남편이 돌아보며 한 마디 던집니다.


"여보~ 우리 내일 해볼까?"

"뭘 해봐요?"

"안 한 지 한참 됐잖아."

"그러니까 뭘 해보냐고요?"

"해 본지 오래된 거 몰랐어?"


갑자기 띵~ 하면서 몇 가지 생각이 휙~ 휙~ 빠르게 지나갑니다. '어떻게 답해야 정답에 가까워지지?' 생각해 봐도 언뜻 남편이 원하는 답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싫어?"

"음... 내일 일요일인데요?"

"일요일이 뭐?"

"일요일이라고요..."

"그러니까... 그게 왜?"

"일요일이고, 애들도 있는데 뭘 해요?"

"애들 있다고 못하나?"

"못하죠. 애들이 다 컸는데 어떻게 해요?"

"그냥 나가면 되지."

"애들만 두고요?"

"응. 안돼?"


'남편이 왜 저럴까요? 갑자기, 왜 그럴까?' 생각해 봐도 속 뜻을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멍~ 하니 초점 없는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봤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남편이 뻥~ 터지며 깔깔 웃기 시작합니다. '헉~ 당했구나.' 싶었습니다. 짓궂은 남편은 가끔 저를 놀려먹는 재미가 있는 모양입니다. 농담 잘 안 통하고 매사 좀 진지한 편인 저는 짓궂은 남편의 꾀에 늘 당하고 맙니다.


"뭐예요... 장난이었어요??"

"아니,... 내일 '해' 보자는데 뭘 그렇게 당황해?"

"무작정 '해볼까?' 하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해' 보자고... 같이 '해' 안 본 지도 오래됐잖아. 그러니까 내일 같이 '해'보자는데 얼굴까지 빨개지고 왜 그래? 사람이 음흉하게...ㅋㅋㅋㅋㅋ"

"놀리니까 재밌어요?"

"응. 너무 재밌어...ㅋㅋㅋㅋ"

"유튜브에 나왔어요?"

"ㅋㅋㅋㅋㅋ 응. 지금 보다가 너무 웃겨서 당신한테 써먹어 봤는데... 정말 이렇게 말하면 그렇게 오해하는구나..."

"오해하도록 말해놓고 뭘..."

"그래서 '해'보고 싶어?"

"됐거든요? 안 보고 싶어!!"


장난기 많은 남편의 골림에 입이 삐죽 나왔습니다. 맥락 없는 질문에 순간 남편이 개구쟁이란 걸 깜박 잊고 말았네요. 덕분에 순간 '음흉한' 여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질문하면 저만 오해하나요?




요즈음 앵글이가 이성교제에 관하여 자주 질문을 합니다. 앵글이가 읽던 책에 열정적인 사랑이 우정의 감정으로 바뀌어야 사랑이 안정화되어간다는 글이 쓰여 있었던 모양입니다.


"엄마, 엄마랑 아빠도 우정의 감정으로 사는 거야?"

"우정... 비슷하지 뭐. 열정은 아닌 것 같아."

"그렇구나... 계속 열정적인 사랑을 하면 안정감이 없어서 불안해진대."

"그래?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아."

"뭐, 엄마랑 아빠는 내가 봐도 우정 같아 보여."

"네가 잘 몰라서 그래. 우리도 열정이 있거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그럼, 고등학생 딸이 느낄 만큼 열정적인 사랑을 보여주면서 하니?"

"으흠... 울 엄마는 너무 야해... 오글오글..."


앵글이 가 또 묻습니다.


"엄마, 엄마는 아빠가 귀여워?"

"왜?"

"귀여운 감정이 사랑하는 감정을 이긴대."

"그래?"

"사랑해서 반했다가 사랑의 감정이 줄어들면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실망하게 되는데 귀여우면 다 참아진다는데? 아기들이 사고 쳐도 귀여워서 웃음이 나는 거랑 비슷한 거래."

"아빠는... 쫌 귀엽지."

"내가 봐도 엄마가 아빠를 귀엽게 봐주는 것 같아. 나는 잘 모르겠지만..."

"왜? 다른 아빠들이랑 좀 다르잖아. 귀여운 면이 많지."

"우리 집이랑 친구들 집이랑 좀 다르긴 해."

"어떤 면이 다른데?"

"엄청 많이 싸우고, 말투부터 틀려. 그래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어. 친구 부모님들은 서로 대화할 때 되게 무뚝뚝하고 싸우는 말투 거나 소리 지르듯 크게 말해."

"그렇구나... 아빠한테는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우리 아빠는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상처 받을 것 같아."
"네가 보기에 그래?"

"응. 엄마가 그렇게 말한 적이 없으니까 놀라겠지."

"너희들한테도 소리를 안 지르는데 아빠한테 어떻게 그렇게 말해."

"역시... 엄마가 더 아빠를 좋아하는 게 맞아."
"살아보니까 엄마가 더 사랑하면서 사는 게 더 행복한 것 같아."




만으로 꼬박 21년을 함께 한 남편입니다. 최근에 남편도 역시 첫눈에 눈이 맞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제가 조금 더 사랑하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짓궂은 장난에도 피식 웃음이 나는 것을 보면 아직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은 듯 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냥 이대로 벗겨지지 않고 평생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방법은 각자의 삶을 존중해주는 것입니다. 10살 동글이도, 18살 앵글이 도, 50살 남편도 집에서는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합니다. 엄마의 간섭이 없는 우리 집은 각자의 시간을 나름대로 사용하며 편안하게 살아갑니다. 서로가 필요할 때는 의견을 먼저 물어봅니다. 외식을 하고 싶을 때도, 배달음식을 시킬 때도 그렇습니다. 물어보고, 과반수 이상일 때 움직입니다.


앵글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외출할 때 앵글이 혼자 집에 남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처음에는 앵글이만 두고 외출하는 것이 불편했지만, 본인의 선택을 존중해서 내려진 결정이므로 지금은 괜찮아졌습니다. 가정마다 다른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기에 우리 집 사는 모습이 다른 가정에서도 좋은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남편의 짓궂은 장난으로 당황스러웠지만 덕분에 맘 속으로는 오글오글 야한 생각도 스쳐가며 웃을 수 있었습니다. 옆에 앉아있던 동글이는 알아듣고 웃었을까요? 그냥 웃었을까요? 묻기도 애매해서 그냥 넘어갔지만 글을 쓰다 보니 궁금해지네요.


일상이 얘깃거리인 로운의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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