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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Dec 11. 2021

새벽 5시 30분 그녀들이 찾아온다

뽑고 뽑히는 무시무시한 그녀들

48년 세상살이 중 입원과 수술을 참 많이도 했다.


고2 때 교회 오빠의 장난으로 뒤로 넘어져 뇌수막 파열이 되는 뇌진탕이 되어 한 달간의 입원을 했었다. 그 사건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일생일대의 비극적 사고가 되었다. 성악으로 입시를 준비하던 중 뇌수막이 찢어지며 뇌척수액이 코로 모두 쏟아져 내렸다. 아직 어리고 회복력이 좋은 성장기라 저절로 뇌수막이 붙어 뇌척수액이 채워질 수 있으니 절대 안정,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않기 등으로 치료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주치의 당부가 있었다. 다행히 한 달간 꼼짝없이 누워 지낸 결과 뇌수막도 붙고, 뇌척수액도 채워져 퇴원은 할 수 있었으나, 이후 체육시간은 교실 지킴이가 되었고, 예체능에서 문과 입시로 전환되는 대반전을 겪어야 했다. 


뇌진탕으로 찍었던 MRI에서 축농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고등학교 졸업 후 20살에 축농증 수술을 했고, 2년 뒤 재발이 되어 비염 수술을 또 하게 되었다. 비슷한 수술을 국소마취로 두 번 겪으며 지옥의 문턱을 오갔었다. 지금은 기술이 좋아져 수술법도 간단해졌지만 30년 전의 축농증, 비염 수술은 수술법 자체도 미개했고, 치료 과정이 지나치게 험난했다. 덕분에 난, 콧속에 코털이 없다. 그래서 먼지가 많은 날 외출은 괴롭다.


선천적 유전병으로 아벨리노 각막이영양증을 앓고 있는 나는 속눈썹이 눈을 찌르도록 안쪽 바깥쪽 끝까지 난데다 아래로 치우쳐 속눈썹이 눈동자에 자꾸 들어가서 붙었다. 그로 인해 계속해서 결막염을 일으켰고 세브란스병원에서는 눈꺼풀을 절개해서 들어 올리는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래서 속쌍꺼풀이 있음에도 쌍꺼풀 수술을 하게 되었다. (미용수술과는 다르다. 속눈썹을 올려주는 수술이라 절개 후 눈꺼풀을 조금 잘라내고 뒤로 올려 봉합하는 수술이었다.)


이후 자궁근종 수술과 육아종으로 인한 6차례 수술, 충수염, 자연유산으로 인한 2회의 소파수술, 겨드랑이에 작은 물혹을 제거하는 수술은 그동안 했던 수술에 비하면 비교적 별 것 아닌 축에 속한다. 새벽 빗길에 넘어져 무릎뼈가 드러날 정도로 파열이 심해 새벽이라 마취과 의사가 없어서 마취 없이 봉합수술을 했던 것은 어쩌면 귀여울법한, 수술 축에도 못 끼는 수술이었다. 


잦은 수술과 입원으로 독한 항생제와 진통제를 몸에 주입하다 보니 면역력은 계속 떨어졌고, 급기야 금번에 하게 된 외상과염&신전건 파열 수술 후 항생제 주사제 부작용으로 주삿바늘이 꽂힌 왼쪽 팔 전체에 붉은 발진이 생기고 목 주변에도 알레르기 증상이 생겨 가려움과 함께 울렁거림, 메스꺼움으로 혈압은 170이 넘게 치솟아 앉고 서기조차 힘들게 됐었다. 결국 주사제를 끊은 후 이틀이 지난 후에야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앞으로의 건강관리는 더욱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다짐에 다짐을 얹게 되었다. 건강은 건강할수록 더 챙겨야 한다는 귀한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1000 ×2000 사이즈의 침대 하나가 내가 사는 공간의 전부이다. 커튼으로 감춰진 작은 세 평짜리 공간에서의 하루하루는 지루하고 또 지루하다. 더군다나 앉고 서는 것조차 어려워 누워만 있는 환자에게 세 평의 작은 공간은 무섭도록 적막하다. 잠을 자고 싶어도 온갖 소리가 침범한 병실은 잠에 집중하기 어렵다. 24시간 밝혀져 있는 복도 공간에서 스며드는 빛줄기는 숙면을 취하기 어렵고, 24시간 돌아가는 병실 안 냉장고의 모터 소리는 밤이 깊을수록 공장이 가동되고 있는 듯한 소음을 내뿜는다. 이틀은 움직이기도 어려워 잠을 이룰 수도 없었고, 고개만 들어도 쓰러지는 지경이라 꼬박 날을 샜다. 이틀이 지나고 도저히 참지 못한 나는 간호사님께 냉장고를 꺼주십사 부탁을 했고 이후 조금 조용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


아프면서 정지된 삶을 살아보니 생활 소음은 사람을 참 고통스럽게 했다. 병실 안 화장실 환풍기 소리, 복도에서 들리는 환자들의 말소리와 보조기 걸음 소리, 탕비실에서의 물 뜨는 소리, 설거지 소리, 특히 간호사님들의 말소리와 시시각각 들려오는 주사제 및 약품 정리 소리와 4시간마다 찾아와 바이탈 체크를 하는 소리 등... 소음과 함께하는 병실의 삶은 휴식이 되지 못했다.


자주 입원하며 느끼는 것이지만 왜 병원에서는 이른 새벽 바이탈 체크를 이유로 새벽 불을 밝히는지 모르겠다. 나와 같이 조금 민감한 환자는 밤에 잠을 자기 어렵다. 가까스로 잠이 들어 이제 조금 숙면을 취할법한 시간 새벽 4:30~5:00! 잠을 청해 달콤함에 빠질 즈음 문이 드르륵~ 열리며 불을 켠다.


새벽체혈과 혈압, 체온체크


"불 좀 켜겠습니다. 로운님, 혈압체크 좀 할게요. 그리고 혈액검사가 있으셔서 채혈을 좀 하겠습니다."


간호사님이 흡혈귀처럼 보이는 순간이다. 새벽 5:00에 굳이 환자를 깨워 바이탈을 체크하고 피를 뽑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한 6시나, 7시쯤 하면 안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지만 그나마 여기는 관절전문병원이라 나은 편이다. 큰 병원일수록 더 일찍 깨운다. 그리고 피도 더 자주, 더 많이 뽑아간다. 그나마 간호사님의 실력이 좋아서 한 번에 성공하면 감사하다. 혈관을 잘 못 찾는 간호사님이 두세 번씩 그 굵은 바늘을 찔러대면 새벽 잠결에 마음 수양까지 보태야 되는 시험에 빠져들게 된다. 이번 주 새벽 담당 간호사님은 혈관을 잘 못 찾는 간호사님이셨다. 두 번 찌르는 일은 다반사였고, 하루는 혈관을 찾다 찾다 못 찾아서 발등에서 채혈을 하는데 발등 채혈의 통증은 팔뚝의 100배는 아프고 고통스럽다. 나도 모르게 '으악~ 아파요~ 제발요~ 그만해주세요~'를 연발했다. 보호자도 없이 홀로 맞는 고통은 서럽고 또 서럽다. 응석 부릴 보호자가 없어 외롭고 또 외롭다. 


매일 새벽 찾아오는 간호사님의 방문은 나를 떨게 했고, 며칠이 지나니 그 시간만 되면 나도 모르게 간호사님 방문보다 먼저 깨어 긴장하게 되었다. 


도대체 그 새벽에 과연 누구를 위한 바이탈 체크일까? 그 시간에 환자를 더 잘 재우는 것이 건강 회복에 더 좋은 일이 아닐까? 그 새벽에 깨우는 것은 회진 시간 전에 결과가 나와야 하기 때문일 테니 환자보다 의사 선생님을 위한 것일 것이다. 환자수가 많은 대학병원에서는 이보다 더 심한 것을 보면 이것은 진실이다. '제발... 새벽에는 그냥 잘 수 있게 둬주세요.'


예전에 백병원에 입원했을 때 보호자를 시켜 '환자가 민감한 편이니 새벽 바이탈 체크를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부탁했던 기억이 났다. 중병이 아니라면 조금 의례적인 바이탈 체크를 거부해도 좋다고 조언해주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새벽 바이탈 체크를 아침 식전에 해도 큰 문제는 없다. "보호자님들!! 꼭 기억하셨다가 아픈 가족들이 새벽에는 깨지 않고 잘 잘 수 있도록 미리 간호사님께 요청해 주세요."


새벽에 일부러 가려놓은 커튼을 열어젖히고 팔뚝에 혈압계를 채우는 간호사님!! 잠도 못 자고 밤을 지새우며 환자들을 지켜주시는 불침번이 기꺼이 되어 주시는 수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새벽 당번으로 채혈을 하시는 간호사님은 채혈 실력이 뛰어나신 분으로 부탁드려요. 정말 두세 번 찌르시면 정말 정말 슬프고, 고통스럽고, 마음이 아픕니다. 



간호사님이 나가시면 한 30분 뒤쯤부터 청소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덜그럭 덜그럭... '제발 조용히 청소해 주시면 안 될까요?' 감히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외마디는...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를 무한 외치게 된다. '쓰레기통도 거칠게 비우지 말아 주세요. 소음이 괴로워요. 걸레는 왁스 냄새가 너무 많이 나네요. 코로나인 건 알지만 계속 뿌려 대는 그 소독제를 환자가 다 들이마셔도 괜찮은 걸까요? 누가 좀 알려주세요. 걸레질은 침대에 부딪치지 않게 살살해 주시면 안 될까요?' 부지런히 그날의 일을 마쳐야 하는 아주머니의 마음은 알겠지만 수술하고 아직 통증이 가라앉지 않은 환자는 정말 괴롭다. '청소는 아침식사 후에 해 주시면 안 될까요? 환자도 잠을 좀 자게 해 주세요.'





세 평짜리 호사를 누리는 로운이는, 창 밖의 풍경이 보이는 전망 좋은 방에서 하루속히 나아서 불편 없이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입원 기간을 보내다가 다음 주 기말고사를 앞둔 딸아이가 "엄마가 없어서 불안해!"라는 말 한마디를 듣고 득달같이 집으로 왔습니다.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는 것을 이번에도 느꼈지만, 나이 들며 노화되는 몸을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함에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모두 모두 건강할 때 몸을 아끼고 소중히 하시길 바라봅니다. 팔 하나만으로 못하는 일은, 머리 묶기입니다. 아셨나요? ^^;;


작은 것에 감사한 순간을 배워가는 로운입니다. 











사진 출처 : 로운과 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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