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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an 04. 2022

'가만히 못 있는 병'을 아시나요?

'가만히 못 있는 병'을 아시나요?

이 병은 약도 없고, 치료 사례가 없기 때문에 완치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발병원인은 '일중독'입니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질병으로 여가 시간에 주로 증상이 나타납니다. 발현 증상으로는 불안, 초조, 두근거림, 죄책감 등이 있으며, 눈에 보이는 증후로는 분주하게 서성거리며 일거리를 찾거나, 가만히 앉아있을 때도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보며 대신 불안을 느끼고, 때로는 못 참고 "왜 그러고 있어? 할 일 없니?"라고 질문하기도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 병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TV 시청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빨래를 갤 때 주로 시청하곤 합니다. 아무 일도 안 하면서 TV를 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개켜야 하는 빨래가 없으면 뜨개질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수를 놓기도 합니다. TV는 거의 소리로만 듣다가 결정적 장면이 나오는 듯 느껴질 때만 고개를 살짝 들어 TV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손을 움직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다양한 수공예품이 하나 가득입니다. 그 많은 것들은 의미 있는 날, 좋은 사람들에게 주로 선물합니다. 똑같은 것을 두 개 이상 만드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만들고 사진을 찍어두지 않으면 어떤 것을 만들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만들었던 가방들입니다. 한 30개 정도는 만들었을 듯합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2년여의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수공예 작품들을 만들었는데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손뜨개 가방과 수세미입니다.



수세미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도 많이 하고, 색깔도 다양하니 그릇의 오염도에 따라 구분해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설거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저로서는 참 좋은 아이템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수세미는 주로 스마일 수세미인데 방긋방긋 웃고 있으니, 설거지가 귀찮아도 '즐겁게 하라'라고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작은 소품을 만들 때 리본으로 자수를 놓으면 입체감이 살아나 아름다움이 배가됩니다. 실로 한 땀 한 땀 놓는 프랑스 자수보다 조금 더 쉽게 수를 놓고 완성도가 높아져 좋아하는 수공예 중 하나입니다. 무지 옷에 꽃 한 송이 자수를 놓아주면 심심했던 옷에 브로치를 단 듯한 효과가 나니 일석이조겠죠?



한동안 꽃의 매력에 푹 빠져 자주 만들던 플라워 케이크입니다. 만들 때는 신이 나는데 버터크림을 잔뜩 품은 팁 설거지하는 것이 귀찮아서 요즘은 잘 만들지 않지만 하나씩 선물해도 받는 이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울 수 있어 주면서도 함께 기분이 좋아지는 케이크입니다.



가정용 빌트인 오븐(광파오븐)으로 만들 수 있는 베이킹들입니다.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으나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설거지가 많이 나옵니다. 그 과정이 귀찮아서 사 먹게 되지만 만들어서 먹어보면 사 먹는 것과 또 다른 매력적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빵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몇 가지 안되는데 시판용 빵에는 조금 더 많은 재료가 들어가죠. 몸에 해롭지는 않지만 유익하지도 않을 첨가물이 있으니까요.


사진만 봐도 얼마나 가만히 못 있는지 보이시죠? 요즘 저는 가만히 있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글 읽기와 글쓰기는 매일 하고 있지만 위의 사진에 보이는 활동들은 '일시정지' 상태입니다. 몸을 아끼지 않아서 삐그덕 삐그덕 기름칠을 하라고 소리를 냅니다. 그 소리를 외면했더니 이제는 데모를 하기 시작해서 주치의 선생님의 조언을 듣기로 했습니다. 말 정말 안 듣는 환자거든요.


시간을 짜임새 있게 사용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매일 주어진 일정이 다르면 요일별로 계획표를 따로 세우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저는 너무 계획을 세워서 계획조차 일이 되어 한동안 그것도 '일시정지'입니다. 흘러가는 대로, 주어진대로,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찾아오면 찾아오는 대로 살아보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 하는 일 없이 소파에 누워 종일 책 읽기, 밥 안 하고 시켜먹기, 청소 건너뛰기, 세탁기 2~3일씩 모아뒀다가 하기 등. 일상 가운데 했던 일들을 느슨하게 하는 연습을 해 봅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살아봤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불편해하지 않았고, 엄마의 변화를 느끼지도 못합니다. 이상하죠? 매일 해왔던 일을 하루 이틀 미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스스로 종종 대며 쓸고 닦고, 쫓아다니며 챙기는 일을 끊임없이 해왔던 것입니다. 그런 일상을 멈췄는데도 가족들 누구 하나 불편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무난한 세 식구를 민감한 저 혼자 조바심 내며 챙겨 왔던 것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던 모임에서도 나와보니 잘 굴러갑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일을 만들며 나와 같이 움직여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같은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서운했던 적은 없었을까?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이고, 베풀 수 있는 마음만 나눠도 세상은 잘 굴러간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 저와 같은 증상이 있는 분 계신가요? 연습을 해 보니 조금 느슨하게 살아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느리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는 로운입니다.









이전에 기록했던 글을 수정하여 재 발행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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