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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an 26. 2022

장남 며느리는 언제 졸업하나요?

"가족이 이웃 친구보다 반갑고, 좋아야 하지 않을까요?"

가족이 많은 집 장남에게 시집간 며느리는 졸업이 언제일까요?


결혼을 하고 장남의 며느리가 되면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며느리 할 일이 천지에 널립니다. 줄줄이 엮인 형제들이 어리다면 그 역할의 끝은 기약이 없죠. 형제들이 장성해 가정을 이루고, 딸들은 시댁으로 향해 떠나갑니다. 명절이 되면 형제들은 결혼 후에도 그들의 자녀까지 더해 본가로 찾아오고, 장남 며느리는 손님맞이 상차림으로 적게는 며칠, 많게는 한 달여 시간 동안 장보기부터 식재료를 다듬고 씻고 음식 만들고 차려내고 정리하고, 손님들이 다 가고 난 뒤 뒷정리까지...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명절 살이를 하게 됩니다. (간혹 장남이 아닌 차남, 혹은 막내 집에서 명절을 치르기도 하는데 시부모님을 누가 모시느냐, 혹은 시부모님 근처에 사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조금씩 변화가 있기도 합니다.)


작은집들의 자녀들이 장성해서 하나둘씩 결혼을 해도 장남 집에는 손님이 늘어날 뿐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집들에 손주들이 생기면 본가에서 분리해 그들만의 명절 살이가 시작되죠. 물론 명절에 그들의 집에서 가족들만의 식사자리를 가진 후 인사를 하기 위해 본가에 들르게 되지만, 대체로 작은집 자식들이 결혼 후 자녀를 낳으면 하나둘씩 본가에서 분리되어 각자의 집에서 명절을 치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작은 집 며느리들의 졸업이 시작되는 거죠.


그렇게 차남 이하의 자녀들은 하나둘씩 자기 집 명절로 분리해서 가게 되고, 그들의 방식으로 바꾸어 명절을 보내지만 장남 집은 변화가 없습니다. 형제들이 분리 해나가도 여전히 명절은 분주하고 형제들 자리에 부모님 형제들로 자리 바꿈이 됩니다. 시아버지의 형제분들로 바뀌어 그 자리를 대신하여 빈자리를 채우니 말이죠. 장남 며느리는 본인의 자녀들이 장성해 가정을 이루고 손주들이 생겨도 여전히 본가에 매여 명절 준비를 합니다. 그렇다면 장남 며느리는 언제 명절 살이를 졸업하나요?


시부모님들께서 돌아가시고 장남 가족만 남습니다. 그래도 하던 가닥이 있어 장남 며느리는 여전히 명절 준비를 합니다. 혹시 찾아올 형제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이부자리를 챙겨두고, 집안 정리도 해 둡니다. 그리고 기다리죠. 이제는 본인의 자녀들도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고 딸은 시댁으로 아들은 본가로 올 테지만 단출해진 명절 풍경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듯합니다. 장남 며느리가 본인이 모시던 시부모님의 나이가 되고 나니 외롭고 적적하여 가족들을 기다립니다. 이제는 북적북적대는 명절 풍경이 싫지 않습니다. 평소 조용하던 집에 북적이는 가족들의 웃음소리로 채워질 것에 대한 기대로 시키지도 않은 명절 준비를 스스로 해냅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적게는 30년, 많게는 50년 가까이 명절과 집안 대소사를 챙긴 장남 며느리는 외로워집니다. 그가 돌본 남편의 형제들이 장남 며느리가 애써 챙긴 그 많은 공들을 당연시하여 그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결혼 생활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남편의 형제들을 챙기고 돌보고 결혼시켜 오늘에 이르렀다는 마음으로 뿌듯하고 자랑스럽던 그 마음에 순간 재가 뿌려집니다. 형제들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장했고, 스스로 가정을 이뤘으며,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부단히 애썼다고 생각합니다. 장남 며느리가 결혼생활 중 상당 부분 시가족을 위해 애썼던 시간들은 물거품이 되고, 그 공을 고마워하거니 미안해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될까요? 장남 며느리라면 당연히 해 내야 할 일이어서 그 가치로움이 사라지는 걸까요?


시부모의 빈자리를 장남이 채워나가면 맏며느리는 생각합니다. 시부모님께서 안 계시니 이제 부모님의 빈자리를 대신해야겠다고 말이죠. 형제들에게 애틋함도 더 깊어지고, 독립하여 한 가정을 이루고 대가족이 된 그들 가정에 아무 일 없이 건강하고 평안하기를 기도하죠. 그리고 조금의 욕심이라면 그들이 숱한 세월 동안 애쓴 장남 며느리에게 '고마웠다, 애썼다, 덕분이다'라고 인정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세월 속에 묻힌 그녀의 희생과 노력은 당연한 일상이었기 때문에 치하받기 어렵습니다. 부엌 외진 구석에서 손님상에 나와 볼 짬도 없이 몇십 년을 일했어도 그 수고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장남 며느리는 힘이 빠집니다. 하필 그때가 장남 며느리도 늙고 쇠해져 갱년기를 훌쩍 보내고 난 뒤의 나이라면 어떨까요?


오늘도 우리들의 장남 며느리는 다음 주 있을 구정 명절을 위해 장을 보며 식단을 짜고 있을 겁니다. 물가가 아무리 치솟아도 내 집에 올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며 일하고 있겠지요. 언제 졸업할 수 있을지 기약 없는 그 길을 묵묵히 걷고 있을 우리들의 장남 며느리를 위해 금번 명절에는 인사치레로 겉만 뻔드르르한 감사 말고, 진심이 느껴질 만큼 고마움을 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당신의 자녀도 누군가의 집 장남 며느리가 될 수 있으니 말이죠.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가족이 이웃 친구보다 반갑고, 좋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로운입니다.








대문사진 : 전원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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