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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Mar 09. 2022

눈물겨운 대전역 플랫폼 가락국수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속 추억 하나

전라남도 해남. 나의 외갓집이다.


서울에서 전라남도 해남까지 가려면 하루가 꼬박 걸리고도 넘치는 먼 여정이다. 외할아버지 살아생전에 딱 두 번 해남에 가 보았다. 멀미가 너무 심해 해남에 도착해서 일주일, 서울에 올라와서 일주일 꼬박 앓던 나는 가족들의 시골길에서 늘 제외됐었다. 2주간의 생병 앓이는 나도 힘들지만 어머니께도 고역이었을게다.


9살 정도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나의 첫 외가행이었다.

서울역에서 목표까지 가는 완행열차를 타기 위해 네 식구가 길을 나섰다. 하루라도 결근을 하지 않으려 일을 마치고 고향길에 나선 부모님과 생의 첫 기차를 탔다. 설렘 가득하게 기차에 올랐지만 완행열차로 서울서 목포까지 가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딸의 멀미를 피해 고속버스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기차를 택했을 테지만 낡은 완행열차의 느린 행보에 멀미는 피할 수 없는 업보 같은 거였다.


대전역 플랫폼 안 1분 가락국수 (출처 : 다음 카페 아름다운 5060)


대전역에 도착하며 "3분간 정차합니다." 안내방송이 나온 후 사람들은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부모님은 남매에게 물으셨다.


"배고프니? 국수 사줄까?"


예나 지금이나 면 좋아하는 아이들의 식습관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남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떻게 뜨거운 국수를 3분 안에 먹고 들어올까 걱정이 되었지만 부모님과 함께 기차에서 내렸다. 1분 안에 국수는 네 식구 앞에 놓였다. 지금처럼 일회용 용기가 있었다면 받아서 기차에 오르면 그만이지만 그 시절에는 2분 안에 국수를 먹고 그릇을 반납한 후 기차에 올라야 했다. 이제 9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2분 안에 가락국수를 먹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우리 남매의 울음보를 터트린 건 시간 때문이 아니었다. 3분 뒤 네 식구는 기차에 올랐고, 남매는 꺼이꺼이 서럽게도 울었다. 어머니는 주위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없이 남편에게 잔소리 폭탄을 터트렸고,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대전역 완행열차 3분 가락국수는 끝내 맛보지 못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플랫폼에 세워진 1분 가락국수는 요즘의 우동과 닮았다. 승객이 내리자마자 퉁퉁 불은 면에 뜨끈한 국물을 붓기만 하면 되는 가락국수를 받아 들고 아버지는 식사 기도를 시작하셨다. 아버지의 기도는 2분을 넘겼고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안내방송이 울려왔다.


'기차가 출발할 예정이오니, 승객 여러분은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때부터다. 남매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기도는 안 끝났고, 가락국수의 국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는데 친절한 음성으로 울려 퍼지는 기차 탑승 안내방송은 청천벽력이었다. 야속하게도 국수 네 그릇은 허망하게 주인의 품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어머니와 남매가 기차에 오르는 그 찰나의 순간 아버지는 후루룩 국수를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후다닥 남매의 뒤를 따랐다.


이미 플랫폼에서부터 울던 남매는 아버지가 국수를 들이마시는 것을 보며 울음보가 거세졌다. 우리는 국물조차 맛보지 못했는데 들이키듯 국물과 함께 아버지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국수를 보며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우리처럼 똑같이 못 먹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어떻게 아버지는 그 뜨거운걸 자기만 쏙 먹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아닐까? 자리에 앉은 후에도 울음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었다. 급기야 어머니는 성질을 버럭 내시며 '그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어도 매를 드시겠다'며 엄포를 놓으셨던 것 같다. 그 뒤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서럽게 울다 잠이 들었을게다. 나에게 대전역 플랫폼 가락국수는 설움이다.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요즘 핫한 드라마이다.



지난주 [스물다섯 스물하나 7화]에서 주인공 희도가 아시안게임 금메달 결승전을 펼치는 장면이 나왔다. 신예 나희도와, 금메달리스트 고유림이 진검승부를 펼치는 장면 사이사이, 희도에게 극진한 사랑을 주었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실력은 비탈로 느는 게 아니라 계단처럼 느는거야. 껑충 껑충. 알았지?"


따뜻하고 자상한 아버지는 현명했고, 그런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고 자란 어린 희도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지만 밝고 대차게 자신의 미래를 향해 돌진하는 청소년으로 성장했다.


접전을 벌이고 금메달을 쥐었지만, 선수의 사연팔이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방송 매체에 희생된 희도의 금매달은 빛을 잃었다. 홀로 기차에 올라탄 희도의 눈에 [대전역 플랫폼 가락국수]의 추억이 아련히 그려졌다.


대전역 플랫폼 가락국수


3분 안에 돌아오겠다며 아빠는 희도를 안심시켰지만 기차의 출발 알림이 들려오고도 아빠가 돌아오지 않자 희도는 울음을 터트린다. 이내 가락국수를 들고 온 아빠를 보며 서럽게 푸념하는 희도에게 아빠는 자상하고 따뜻하게 다독여주었다.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희도가 하는 말,


"아빠, 나 금메달 땄어!"


드라마 속 장면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어? 저 국수... 내가 희도 나이에 못 먹었던 그 때 그 국수...!"


저는 못 먹었죠. 그래서 아직도 그 맛은 모릅니다. 희도의 아빠와 같은 마음으로 제 아버지도 딸에게 국수를 먹이고 싶었을 텐데 끝내 먹지 못한 서러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 설움, 억울함, 배고픔, 아까움, 그리고 국수를 먹기 위해 내려갈 때의 기대... 그 모든 감정들을 오롯이 하나하나 새겨보았습니다.


기억 저편에는 안타까움과 아련한 추억으로 새겨져 있지만 그때 부모님의 나이대를 살고 있는 지금, 그 마음을 비추어보니 못 먹인 부모님의 마음은 더 안타까웠을 것 같습니다. 없이 살던 시절 300원짜리 국수 네 그릇은 그리 가벼운 값이 아니었을 겁니다. 잊지 못할 추억 하나 만들어주고픈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겼던 가락국수는 그저 국수가 아니라 오래도록 두고두고 되새기고픈 선물이었을 테니까요.


오늘 나는 내 아이들에게 선물 같은 일상을 남겨주고 있을까요? 전하는 마음이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전해져 아이들의 마음속에 엄마의 사랑이 싹텄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싹튼 사랑이 근원 되어 살아갈 동력이 되길 바라봅니다.


일상이 선물 되길 바라는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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