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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Mar 12. 2022

주말

토요일 오전

남편은 소파에 누워 골프방송을 본다.

앵글이는 공부방에 들어가기 위한 사전 절차로 샤워를 한다.

동글이는 피아노를 치겠다는 핑계로 엄마의 핸드폰을 빼앗아 제 방으로 갔다.

로운이는 일상의 기록을 노트북에 남긴다.


실제는,

골프방송을 틀어놓고 늘어지게 코를 곤다.

공부를 하기 위한 샤워였지만 씻는데만 두 시간이 넘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유튜브로 찾아 연주를 한다 했지만 카트라이더를 한다.

노트북을 펼쳐두고 깜박이는 커서를 노려보고 있다.


주말,

전업주부의 길을 선택한 이후 '주말'이라는 단어는 먼 나라 남의 말이다. 주부에게 주말은 휴식이 아니기에 기다려지는 날 또한 아니다. 되레 평일이 더 낫다. 가족들을 모두 내보내(?)고 어질러진 집을 대충 정리하고 나면 오전 한 때 잠깐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짬은 난다. 하지만 온 가족이 함께하는 주말은 밥 차리고 치우고 돌아서면 다시 밥때가 오는 이상하고 요상스러운 신비한 하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주부가 주말에 집을 비우게 된다면?

집안 꼴이 말이 아니게 된다. 반나절 집을 비운 후 돌아오면, 개수대에는 기름진 라면 냄비 속에 물컵이 섞여 담가져 있고, 가스레인지 주변으로 라면수프가 처참히 흩어져 꾸덕꾸덕 말라비틀어진 채 SOS를 친다. 아들은 컴퓨터와 혼연일체를 이루고,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하며 떠났던 자리가 무색하게 남편은 정말 아이를 보고만 있다. 절대 겉으로 내뱉을 수 없는 속말,


"아오~ 보란다고 그냥 보고만 있냐... 그 보라는 말은 함께 놀아달라는 말입니다요..."


그렇지만 절대! 겉말로 내뱉지 않는다. 왜? 나는 노련한 경력직 전업주부이기 때문이다. 속말은 감추고 겉말로,


"나 없어서 힘들었지... 밥이랑 반찬 해서 넣어뒀는데 라면을 먹었네? 저녁에는 불고기 구워줘야겠다..."


우리 집 풍경은 평화롭다. 누군가 나서서 애써 말 붙이지 않으면 각자의 방에서,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한다. 그러다 어느 한 사람 배가 고파지면, (특히 동글이가 배가 고파지면)


"우리 점심 안 먹어?" 라던가,

"치킨 시켜먹을까?"라는 말로 포문을 연다.


한 마음이 되어 다 같이 모이는 순간이 찾아오면, 배달앱을 열어 먹이 찾기에 진심을 다한다. 꼼꼼하게 배달비가 제일 적은 곳을 찾아내고, 되도록 빨리 도착하는 곳을 찍는다. 배달 앱마다 배달비 차이가 500원 이상씩 나기에 꼭 세 곳 이상의 앱을 견주어보아야 고수다. 그렇게 선택된 메뉴는 치킨 두 마리!



역시 주말에는 치느님이 최고!!


햇살은 따사로운데 미세먼지가 가득 보이는 하늘이 야속하네요.

보이시나요? 미세먼지...


높은 층에 살다 보니 미세먼지가 잘 보입니다. 저 멀리 김포까지 훤히 보이면 맑은 날입니다. 미세먼지가 아니라면 (게으름을 감추기 위한 핑계지만) 호수공원 산책이라도 나갔을 텐데요... 그래도 포근한 날씨 덕분에 기분은 좋습니다.


소리 내어 웃을 일이 많은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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