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공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운 Mar 13. 2022

동생이랑 어떻게 싸워~

JTBC [우아한 친구들]

밥을 먹으면서 앵글이가 묻습니다.


"아빠! 아빠는 왜 엄마랑 안 싸워?"

"에이~ 동생이랑 어떻게 싸워..."

"아빠는 엄마가 동생이라서 안 싸우는 거야?"

"그렇지. 가끔 엄마 같을 때도 있는데 동생이잖아. 그러니까 TV를 깨도 화를 못 내지."


앗! TV가 등장했습니다. 깨진 TV로 동계 올림픽도 시청했고, 요 며칠 드라마 정주행도 하고 있습니다. TV 정중앙이 반으로 갈라져 가끔 드라마를 볼 때 장면이 갈라진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기능상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서 약간의 불편감이 있지만 깨진 채로 잘 살아남고 있는 우리 집 TV입니다.


"ㅋㅋㅋㅋ 뭐야, 아빠... 거기서 TV 얘기가 왜 나와... ㅎㅎㅎㅎ"

"아니, 그렇다는 얘기지."

"아빠는 엄마가 동생 같아?"

"동생 같은 게 아니고 동생 맞잖아. 봐~ 엄마가 아빠한테 오빠라고 부르잖아."

"그러네... 나이로 보면 동생이지."

"그니까... 동생은 아끼고 예뻐해 줘야지 어떻게 싸워."


시사교양, 다큐멘터리, 골프방송을 즐겨보는 남편은 가끔 드라마를 봅니다. 백마 탄 왕자님과 신데렐라가 등장하는 로맨스보다는 '부부의 세계', '밀회'와 같이 현실감 있는 드라마를 즐겨 찾습니다.


"우아한 친구들이라는 드라마가 있다는데 알아?"

"아니?"

"제목이 그게 아니었나?"

"왜? 재밌대??"

"그렇다던데...?"

"그럼 찾아보면 되지."


'아리아'에게 물었습니다.


"아리아, 우아한 친구들 찾아줘."


아리아가 찾아낸  [우아한 친구들]은 작년 7월 방영됐던 JTBC 금, 토 드라마였습니다. 드라마 소개를 읽어보니 그렇고 그런 미스터리 드라마인 것 같습니다.



JTBC [우아한 친구들] 포스터


[우아한 친구들]은 부부관계, 친구관계, 얽히고설킨 불륜과 치정, 그리고 죽음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드라마입니다. 주말드라마인데 내용은 아침 드라마 같습니다. 욕하면서 보게 되는 막장 드라마의 전형입니다.


주말에 완결된 드라마를 정주행 합니다. 식사시간이 겹쳐지면 앵글이도 같이 시청했습니다.


"저거 완전 비혼 권장 드라마네."

"내용이 좀 그렇지?"

"아니, 저렇게 싸울 거면 왜 계속 같이 살지?"

"결혼했는데 같이 살아야지 싸운다고 헤어져?"

"그냥 싸우는 정도가 아니잖아."

"싸우면서 맞춰가고, 맞춰 가다 보면 싸우기도 하고 그런 거지..."

"같이 살려면 사이좋게 살아야지. 죽기 살기로 싸우면 무서워서 어떻게 같이 살아?"

"살아봐... 결혼은 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더 힘든 거야."

"나는 결혼 안 해야겠다..."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고 이 사람 아니면 안 된다고 울고불고 결혼시켜달라고나 하지 마."

"엄마는 내가 그럴 것 같아?"

"응."

"아니거든?"

"네가 나 닮았으면 그럴걸? 봐~ 엄마도 첫눈에 반한 남자랑 같이 살잖아."

"ㅎㅎㅎㅎㅎ 뭐야 그게...ㅎㅎ"


2022-03-13 a.m.09:00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는 일요일 아침

드라마를 보다 보니 몇 편 안 남은 마지막화까지 보느라 어젯밤 자정이 넘도록 TV 앞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조금 늦은 아침 일어나 보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자욱합니다. 우리 동네는 지형적 특성으로 안개가 자주 낍니다. 안개가 끼면 앞이 보이지 않아 운전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2009년 5월 22일.

유치원이 가장 바쁜 5월, 교육청에 제출할 [유치원 교육과정 운영계획] 책자의 마무리 작업을 하느라 밤 11시가 되어서야 퇴근길에 나섰다. 동대문에서 운정까지의 퇴근길 거리는 46km, 매일 왕복 92km를 운전하는 셈이다.


원장실 안에서는 몰랐는데 나와보니 안개가 자욱했다. 내부순환로를 지나 자유로에 들어서니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바로 앞 차도 보이지 않아 비상등을 켜고 거북이걸음을 시작했다. 시속 5km/h의 속도로 움직여도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주변은 안개비가 자욱해서 드라이아이스를 녹여 만든 무대처럼 흰 구름이 자동차 앞유리를 덮쳐왔다. 스산한 기운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연출되는 느낌이 드는 순간,


'자살하기 딱 좋은 날씨네. 물귀신이 잡아 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물귀신이 오늘 여럿 잡아가겠는걸?'


방정맞은 생각이었다. 스치듯 지나간 생각 때문에 무서움은 배가 되었다.


행주대교를 지나면서부터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평소와 같다면 행주대교에서 제2자유로를 타고 운정 집까지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짙은 안개로 제2자유로에 진입조차 할 수 없었고, 그대로 직진하여 감각만으로 차선을 찾아가며 집까지 가야 했다. 온몸에 힘이 바짝 들었고, 곁을 스쳐가는 자동차들에 화들짝 놀라기를 반복했다. 장월 IC에 진입하며 속도를 더 줄였다. 차들이 많은 도로가 아니어서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안개가 은 날은 멀리서 비상등을 깜박이며 길 안내를 해 주는 차 한 대가 소중하다. 어쩌면 내가 그 길안내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15분이면 될 거리를 3시간에 걸쳐 도착했다. 온몸은 경직된 듯 아파왔고,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승강기에 들어서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새벽 3시 30분이었다. 유치원에서 11시에 나왔으니 꼬박 4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


'뭐야... 1박 2일 동안 운전한거야?'


씻을 기운도 없어 대충 세수를 하고 커피 한 잔을 내려 거실 소파에 앉았다. 손끝 하나 까딱하기 귀찮았다. 그나마 코끝을 간질이는 커피 한 잔이 피로한 몸을 깨워주는 것 같았다. 가족들이 잠든 집의 그 고요함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의 안개는 긴장을 풀어주지 못했다. 리모컨으로 24번을 눌렀다. 24시간 방송이 나오는 요즘 세상은 참 편리하다. 적막을 깨고 연신 떠들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스르륵 눈꺼풀이 내려앉을 즈음,


[속보. 노무현 대통령 서거]


라는 자막이 떴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났다.


'어? 잘못 봤나?'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화면을 응시했다.


 [속보. 노무현 대통령 서거]


굵은 고딕체로 또렷하게 쓰여 있었다.


"긴급 속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봉하마을 사저 뒤편 부엉이 바위에서..."


 아나운서의 다급한 음성을 들으며 순간 "멍" 해졌다. 그러고는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여보~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대."

"뭐? 무슨 소리야. 장난하지 말고..."

"일어나 봐. 지금 속보가 나오고 난리가 났어."


안개 낀 도로를 지나며 방정맞은 생각을 한 내 탓 같았다. 누구 하나 죽어나갈 것 같다고 무심히 내뱉던 혼잣말이었을 뿐인데, 대통령을 데려갈 줄이야...


안개가 짙은 날이 되면 그날이 떠오릅니다. 오늘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자욱합니다. 그리고 잊히지 않을 그날, 2009년 5월 23일 새벽 5시 20분의 뉴스 속보가 떠올랐습니다.


우리 모두...

잘하든 못하든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후 감옥에 가는 슬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건강한 국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꿈꿈한 날씨로 가라앉은 마음을 들뜨게 할 노래 선물입니다. *^^*

노노카짱 강아지 경찰아저씨

















매거진의 이전글 주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