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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Apr 15. 2022

넌 돈 벌어다 주는 남편 있어 좋겠다!

호의호식? 그냥 호식 중

남편은 새벽 6시가 되면 아파트 커뮤니티로 운동을 갑니다. 앵글이는 같은 시간 일어나 혼자 아침을 챙겨 먹습니다. (앗! 오해하시면 아니 아니 아니되옵니다...) 앵글이는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먹고 싶은 메뉴로 챙겨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엄마가 챙겨야 할 것은 앵글이가 아침으로 선택할 식재료를 채워 넣는 일입니다.

 

앵글이는 시간이 여유로울 때에는 밥+간장게장, 밥+낚지 젓갈, 밥+스크램블 에그+후리가케를, 조금 여유로울 때에는 빵+크림치즈+블루베리/딸기잼을, 시간이 없을 때에는 비요뜨나 요플레 클래식, 바나나를 아침으로 먹습니다. 여기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선택 메뉴와 상관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함께 곁들이는 것이죠.


앵글이가 좋아하는 딸기, 요플레클래식, 비요뜨
우리동네 섬마을 게장님 간장게장 / 낚지젖갈
필라델피아크림치즈, 치아바타, 샹달프잼
식빵, 버츠오 캡슐 커피


앵글이가 식탁에서 벗어나면 동글이의 아침 준비를 합니다. 앵글이와 달리 밥돌이인 동글이는 아침에 눈을 뜨며 그날의 아침메뉴를 정해줍니다. 동글이가 좋아하는 메뉴는 탕국+밥, 떡국, 찜기에서 찐만두, 김치볶음밥 등을 주로 선택합니다. 동글이의 아침을 준비하며 남편의 식사도 함께 만듭니다. 남편은 덤으로 얹어가는 듯 하지만 동글이와 남편의 식성이 거의 같아서 저는 남편 식사에 동글이가 얹어가는 것이라고 당당히 외칩니다.


분주한 아침식사와 아이들 등교를 마치고 나면 운동 갔다 돌아온 남편의 식탁을 준비합니다. 오전 미팅이 없을 때에는 아침을 먹고 출근하지만 미팅이 있을 때에는 도시락을 챙겨갑니다.


아침상을 물린 후 남편의 재택근무가 있는 오전 9시, 컴퓨터를 켜며 남편이 이야기합니다.


"오늘은 점심 삼겹살 어때?"

"좋죠."

"동글이는 왜 삼겹살을 안 먹을까?"

"비계가 씹히는 느낌도 싫고, 느끼하고, 육질이 단단해서 싫다네요."

"녀석... 삼겹살이 얼마나 맛있는데..."

"우리 둘이 삼겹살 먹으러 가요. 난 당신이 밥 사주면 너무 좋지. ㅎㅎㅎ"


재택근무 중인 남편의 오전 업무가 마쳐지고 11시가 좀 넘은 시간, 함께 우리 동네 삼겹살 맛집 '화포 식당'으로 갔습니다. 화포 식당의 좋은 점은 고기를 쥔장이 직접 구워주는 거랍니다. 고깃집에 가면 늘 굽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한바탕 가족들 고기를 구워주다 보면 연기와 냄새로 먹지 않아도 먹은 것과 진배없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화포 식당에서는 고기를 구워주니 참 좋습니다. 대접받은 느낌도 나고, 직접 굽지 않으니 더 맛나게 느껴집니다.



둘이 3인분을 시켜 고기로 실컷 배를 채우고 식당을 나서는데 쥔장이 미리 준비해 둔 간식을 선물로 챙겨주셨습니다. 단골손님이라고 아이 둘 몫까지 4개를 챙겨주신 사장님, 센스 만점이십니다.


"당신은 돈 벌어다 주는 남편 있어 좋겠다!"

"좋지."

"나도 돈 벌어다 주는 남편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태어나도 남자로 태어날 거잖아."

"그렇지. 남자가 더 낫지."

"그럴 거면서 뭘... 돈 벌어다 주는 남편은 못 얻겠네."

"근데, 다시 안 태어나려고..."

"왜?"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뭐가 힘든데?"

"먹고, 자고, 싸고, 일하고... 다음 끼니가 면 또 먹고, 자고... 끝이 없어. 끼니마다 챙겨 먹는 것도 너무 힘들어."

"ㅎㅎㅎㅎㅎ 그게 뭐야..."

"사는 게... 먹을 것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는 것도 큰 복이야. 그러니까 당신은 엄청 복 있는 여자인 거지."

"맞아. 당신 덕분이야."

"당신이 뭔 걱정이 있어. 남편이 속을 썩여, 바람을 피워, 도박을 해, 애들이 속을 썩여..."

"나도 뭐... 속 안 썩이지, 바람 안 피지, 도박 안 하지... 나도 당신 속 안 썩이는 건 똑같거든?"

"그러니까... 이 정도면 엄청 잘 사는 거라고..."


남편도 저와 함께 나이 들어갑니다. 갱년기 증후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할 것 없이 거쳐가고, 남편은 반백을 넘어서며 자상함이 더해갑니다. 예전보다 섭섭함도 함께 더해가는 게 함정이지만요... ㅎㅎ 투박한 음색으로 이야기해도 섭섭해하고, 아이들만 챙긴다며 관심받고 싶어 합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나이의 많고 적음 상관없이 모두에게 있는 욕구인데, 손가는 일 많은 아이들 위주로 살게 돼서 가끔은 남편도 관심받고 싶어 함을 잊기도 합니다. 둘이 죽고 못살아 함께 살게 된 거면서도 말이죠.


"애들 열심히 챙겨봐야 소용없어. 결국은 우리 둘만 남는 거야. 우리 둘이 서로 잘 챙기고 아껴주는 게 최고라니까?"


남편이 가끔 서운함을 뒤로 감추고 하는 말입니다.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고,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게 되면 다시 신혼의 그때처럼 둘이 남겠죠. 그래서 요즘은 생각합니다. 섭섭함이 있어도, 가끔은 화가 나도, 상처 주지 말고 잘 보듬고 아껴줘야겠다고 말이죠. 둘이 남았을 때 신혼 때보다 더 애틋한 사랑으로 두 손 꼭 잡고 알콩달콩 예쁘고 끈끈하게 해로하기 위해 품을 팔아야 하니까요.


산책길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백발이 된 노부부가 두 손을 맞잡고 거닐거나, 공원 옆 벤치에 앉아 챙겨 온 간식과 차를 나눠 마시며 오손도손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장면이 있을까 싶습니다. 젊은 날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으로 딱지가 덕지덕지 앉도록 하면 서로 더 많이 의지하고 보듬어야 할 노년에 거친 말로 투닥거릴 일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젊고, 조금 더 힘이 있을 때 품을 열심히 팔아 서로 힘이 떨어져 서로가 맞대어 '사람 '자를 바로 써야 할 때 도닥이며 아름다운 노후를 살아가고 싶습니다.


남편이 로또보다 낫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로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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