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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ul 27. 2022

갑자기 맞은 친정엄마 암 진단

어릴 때부터 천식이 있던 나는 사람들의 숨소리에 민감하다. 가족들과 함께 할 때도, 지인들과 함께 만남을 가질 때도 숨소리가 가깝게 들려온다. 오랜 습관 같은 거다. 나에게 습관처럼 찾아오는 천식은 체력이 떨어지거나, 뜻하지 않은 질병이 찾아올 때, 과한 스트레스가 밀려올 때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온다. 반백년을 함께 한 천식은 동반자같이 머문다...


작년부터 엄마의 기침소리가 수상했다. 정기검진차 병원에 가실 때마다 CT를 찍고 오시라 말씀드렸지만 엄마의 바쁜 일정에 밀려 지나갔었다. 3주 전 코로나가 찾아오고 엄마의 숨소리는 더 나빠졌다.


"엄마, 숨소리가 너무 나빠... 오늘은 꼭 CT 찍고 전화 주세요."


다음 날 아침 일찍 전화를 드렸다.


"엄마, CT 결과 어떻게 나왔어요?"

"뭐... 그냥... 그래."

"결과가 나쁘구나? 암이래요?"


느낌이 그랬다. 작년보다 숨소리가 거칠게 들렸고, 코로나를 앓고 난 후 쇳소리가 들려왔기에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1.5cm 정도 되는 게 있다는데... 아이고... 왜 그런 것이 생겨가지고..."


엄마의 목소리에서 절망감이 느껴졌다.


"엄마, 놀라지 말고... CT 사진 봤죠? 종의 모양이 깔끔한 원이었어요? 아니면 파편처럼 지저분했어요?"

"동그랬던 것 같은데?"

"그래요? 다행이네... 보통 악성 종양 같은 경우 경계선이 지저분하게 보이는데 엄마는 동그랗게 보인다니까 육아종 같은 것일 수도 있어요. 걱정 말아요. 아무 일도 아닐 거야..."

"아니 내가 어제 너무 놀래 가지고 다리에 힘이 빠지고 TV 화면이 안보이더라."

"엄마, 암은... 암 때문에 잘못되는 게 아니고, 암 진단을 받고 무너진 마음 때문에 나빠지는 거예요. 아무 일 없을 테니 걱정 말고 엄마 하던 대로 오늘도 즐겁게 엄마 일정 보면서 보내요."


병원에서 트랜스퍼해 주어서 긴급으로 세브란스병원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월요일, 화요일, 이틀 동안 많은 검사들이 진행됐다. 최근 귀가 어두워져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지 못하는 엄마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 드렸다.


엄마는 많이 차분해지셨다. 엄마가 키워낸 딸에게 많이 의지가 되시는 모양이다. 엄마의 놀란 마음도 정돈되었고, 순서에 따라 보다 좋은 치료 방법을 의료진과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엄마가 검사받을 동안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연명의료 결정서를 작성했다. 장기기증과 시신기증 신청도 함께 했다. 의미 있게 살다가 사후에도 의미 있게 쓰이고픈 마음을 담아 기도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가 되어가는 시간까지 각종 검사실에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기다리며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마음도 정돈되고 앞으로의 일을 계획 세우는데 글만 한 게 없다. 그러고 있는데 카톡으로 선물이 들어왔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켠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고마웠던 마음을 전해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봉사하며 살길 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이 가라앉았을 때 전해진 커피 두 잔이 살아야 할 이유 백가지를 전해준 것 같았다. 그래서 고맙고, 그래서 힘이 났다.


엄마는 툴툴 털고 일어나실 거라 믿는다. 생각보다 아무 일도 아닐 테고, 치료도 잘 되리라 믿는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약한 마음을 타고 엄마가 힘을 잃지 않도록 곁에서 친구가 되어주는 것! 그렇게 나는 엄마의 친구가 될 거다.




덧.

병원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글을 읽고 써요.

글이,

글을 쓸 수 있음이 참 고맙네요.


한 동안 글을 많이 읽지 못할 거예요.

댓글도 많이 못쓸지도 몰라요.

글벗님들께서 제게 적어주신 댓글은 힘이 나겠지만,

답글을 못쓸 수도 있어요.

댓글을 읽으면 힘이 날 것 같아 열어둘게요.

걱정은 조금만,

기도는 많이 부탁드려요...


보글보글은 휴재 없이 이어질 거예요.

한 동안 김장훈 작가님께서 일요일 글 소식을 전해주실 거예요.

보글보글 작가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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