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3년 만에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멈춰버린 일상에 초록불이 들어오니 생기가 넘칩니다. 아직도 곳곳에서 감염자가 발생되고, 독감이 찾아오는 계절이 되었지만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비록 참관인원은 1인으로 제한되었지만 한껏 멋을 낸 학부모들의 발걸음은 흥겹습니다.
조금 쑥스럽지만 아이들은 즐겁게 수업에 참여했고, 가끔씩 웃음소리가 교실 문을 넘나드는 평범한 일상이 참 소중하다 여겨집니다.
동글이의 4학년 교실
참여수업을 마치고 방향이 같은 학부모님과 함께 길을 걷다가 TV조선 주말 드라마 [엉클]을 소개받았습니다. 요즘 TV 볼 여유가 통 없던 터라 종영된 지 꽤 됐지만 시청하지 않았던 드라마입니다. 몰아보기의 묘미는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멈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틀을 투자해서 잠을 쪼개어가며 시청했습니다. 엉클 14회 2부를 보고 있는데 앵글이가 다가옵니다.
"아직도 다 못 봤어? 그거 예전에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고 마지막 회 조금 보다가 말았던 드라마 아니야?"
역시 앵글이입니다. 신통방통하게도 스치듯 한 장면만 보고도 어떤 드라마인지 척척 맞춥니다. 시청하지 않고도 등장인물과 줄거리까지 꿰고 있는 앵글이가 늘 신기합니다.
"거의 끝나가. 그런데 이거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나도 몰라."
"그런데 엄마, 저런 장면(주인공 왕준혁 납치) 볼 때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뭐?"
"아니, 주인공이 며칠씩 팔, 다리가 묶여서 감금되어 있잖아. 실제 상황이라면 화장실은 어떡하지?"
TV를 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의문입니다. 듣고 보니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러게..."
"아니, 저 내용 상 보면 물 한 모금도 안 주고 가둬둔 거잖아. 밖에 사람이 지키는 것도 아니고... 먹는 건 그렇다 치지만 소대변은 어떻게 보나... 그런 생각이 드네? 엄마는 궁금한 적 없어?"
"궁금했던 적은 없는데 지금 생각하려니... 우욱... 엄청 더러워..."
이후의 대화 내용은 차마 글로 옮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아찔했던 순간"에 대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10월 넷째 주 보글보글 "아찔한 순간"
명절 귀성길, 여름휴가 피크 주간 고속도로는 시간 예측을 하기 어렵다. 친가, 외가가 모두 서울이라 명절 귀성길에 대한 경험은 없다. 여름휴가 피크 주간에 휴가를 떠난 적도 없어서 꽉 막힌 도로를 오간 경험도 드물다. 그래서였을게다. 별 다른 준비와 대책 없이 고속도로에 오른 것 말이다.
구정을 보내고 봄맞이가 시작될 무렵, 친척 결혼식이 잡혔다. 15개월 된 딸아이를 데리고 대전까지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분주했다. 아기 짐 만으로도 한 보따리다. '꼭 한복을 입어야 한다' 하시니 갈아입을 옷까지 챙기느라 출발 전부터 짜증이 났다. 다행히 내려가는 길은 막힘 없이 괜찮았다. 여유 있게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친인척들께 인사를 하며 눈도장 콱콱 찍었다. 여기까지는 순조로웠다.
결혼식을 마치고 서울행 고속도로에 오르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때 지난 눈이라 조금 내리다 말 것이라 생각했지만 서서히 눈발이 굵어지더니 이내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위 당황한 차들은 서행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천천히 이동해도 세 시간이면 도착하리라 생각했던 예상을 뒤엎고 언제 도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졌다.
"여보, 어떡해..."
"왜?"
"화장실 가고 싶어."
"어?? 어떡하지? 휴게소가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았는데... 참을 수 있겠어?"
"참아야지 어떡해..."
아직 한참 남았다는 말에 마음이 급해져서일까? 온몸이 물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딸아이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고 아랫배는 묵직해져 왔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는 허벅지 위에서 동동거리며 모두어 뛰기를 계속하며 놀아달라 보채는데 아이의 발길질에 방광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여보, 아직 멀었어?"
"차가 꼼짝을 안 하잖아. 이 상태면 언제 도착할 수 있을지 예측도 못하겠는걸."
"그럼 어떡해. 도저히 못 참겠어."
"갓길에 세워줄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어떻게 갓길에서 볼일을 봐. 멈춰 선 차들에서 다 보일걸?"
"내가 앵글이 이불로 가려줄게."
"안돼!"
참다 참다 이가 아리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고 갓길에 세우고 볼일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도로 빠지는 길이라도 나오길 바라봤지만 어불성설이다.
"그러지 말고 그냥 갓길에서 봐."
"어떻게 그래... ㅠ.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너 지금 얼굴이 하얗다 못해 파래졌어. 어차피 누가 본대도 스쳐 지나갈 사람들 아냐?"
대답할 기운도 없었다. 의식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갑자기 정신이 번쩍 났다.
"여보, 좋은 생각이 났어."
"뭔데?"
"앵글이 기저귀에 보면 어떨까?"
"뭐?? 그게 가능해??"
"아니, 아기도 기저귀에 소변을 보잖아. 지금은 그 방법이 최선인 것 같은데?"
"가능하면 그렇게 해야지. 기저귀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날 앵글이 기저귀는 신의 한 수였다. 제 몫을 다해주었고, 온몸이 저리도록 고통스러웠던 방광을 해방시켜주었다.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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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소변을 오래 참으면 뇌출혈에 걸릴 수 있습니다."
지난 6월, 작은 아버지께서 길을 걷다가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찾는데 압구정 상가들의 화장실이 모두 잠겨있어 오랜 시간 소변을 참다가 뇌출혈이 되어 긴급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119 구급대원의 전화를 받은 사촌 동생이 뇌출혈 증상임을 감지하고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이동을 부탁드린 덕분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수술을 받으실 수 있었습니다.
작은아버지께 보인 전조증상은,
평소와 다르게 말이 어눌해지고,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며, 횡설수설하고, 발음이 이상해졌다고 합니다.
소변을 참다가 갑작스레 이와 비슷한 증후를 보이게 되면 뇌출혈을 의심하고 병원으로 빠르게 이송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