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이 다가오는 나이에도 어린아이인가 보다. 적어도 엄마에게는 그렇다. 미숙하고 부족하고 걱정스러운 아이는 숱한 성장통을 앓고 난 후에도 여전히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이번에 널 보고 깜짝 놀랐어. 네가 날 닮았더라. 주변에 널 도와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네. 마냥 어린애인 줄 알았더니만..."
병원에 오가는 길 엄마의 말이 이어졌다.
"세상 공짜가 없는데 주변에 널 도와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건 네가 열심히 살아왔다는 거겠지. 애썼다... 잘 살았구나..."
엄마의 눈에 딸은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이 불안 투성이었나 보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부모님은 나의 어린 시절 늘 부재중이셨다. 불 꺼진 집, 주말에만 얼굴을 볼 수 있는 가족,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놀이를 하였는지 추억 한 자락 없는 유년기의 나를 떠올리면서 적어도 내 아이는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며 키우리라 다짐했지만 나 역시 내 부모의 삶과 그닥 다를 바가 없다.
"너 6학년 때인가? 그림 그려서 최우수상 받아왔을 때 말야. 네 아빠가 '너네 학교는 인재가 없나 보다. 네게 상을 준 걸 보면...'이라고 했던 거 생각나니? 그때 얼마나 섭섭하고 속상했던지..."
늘 바쁜 부모님과 다섯 학년이나 높던 오빠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던 유년기가 있었다. 상을 꽤 많이 받았지만 칭찬은 거의 없었다. '그때의 기억을 엄마도 하고 있을 줄이야...'
"엄마가 그때를 기억하고 계실 줄 몰랐네... 그때 옆에 있었지만 엄마도 칭찬 안 해줬던 건 기억나실까 몰라... ㅎㅎ"
"그랬어? 나 속상한 것만 기억나고 너한테 칭찬 안해준 건 기억이 안 나네..."
사람의 기억 회로는 모순 덩어리다. 기억하고 싶은 대로, 딱 그만큼만 저장하니 말이다.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가족 외식한 번 해보지 못하고 자랐다. 엄마가 아픈 후 계속해서 과거를 회상하시며 그 시절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아쉬워하시지만 지난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인정 욕구가 강한 나는 칭찬에 늘 목말랐다. 집에서 칭찬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학교나 동네에서라도 칭찬받으려 뭐든 열심히 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인정받기 위해 기를 썼다. 남들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덕분에 이른 나이에 자리 잡았고 같은 일을 20년 넘게 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워킹맘으로 사는 것에 회의가 느껴졌다. 아이를 키우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정작 내 아이는 늘 외롭고 엄마의 부재로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녀야 했다.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고 나의 전업주부 인생이 시작되었다.
좋은 걸 보면 나눠줘야 직성이 풀렸다. 바리바리 쌓고 쟁이고 나눴다. 덕분에 동네 오지랖 아줌마로 잘 산다. 엉덩이가 가볍고 일을 겁내지 않는 성향이라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다 요청하면 슈퍼우먼으로의 변신도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동네 아줌마 친구들이 많다.
"주연아, 앵글이가 열이나. 병원에 가야 하는데 동글이 좀 부탁해."
"희연아, 동글이가 놀이터에 나갔는데 연락이 안돼. 마주치면 전화하라고 전해줘."
"은정아, 요즘 마음이 어수선한데 나랑 산책하지 않을래?"
"경미야, 어머니께 OO약이 필요한데 너희 병원에서 처방 가능한 약이야?"
"혜정아, 네 친구가 운영하는 요양병원에 어머니 입원 가능한지 여쭤봐 줄래?"
"양혜야, 마을공동체 수업 준비해야 하는데 패키지 작업 부탁해."
멀리 있는 가족들보다 가까운 이웃의 도움이 절실하고 고마울 때가 더 많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아이를 키우면서 함께 품앗이하는 동네 친구들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 도움을 청할 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뻗어준 이웃이 있어서 매일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물론 나 역시 같은 마음으로 이웃의 손을 잡아준다. 덕분에 세상 사는 맛은 달큼하다.
경황없는 요즘, 동네 친구들의 보살핌이 더해져 그래도 살 만하다. 혜경이는 아버지께서 농사지으신 포도박스를 가져다주고, 서울로 이사 간 은정이는 간병으로 지쳤을 나를 위해 2시간 거리지만 기꺼이 달려와 함께 점심을 먹어준다. 요양병원을 소개해 준 혜정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엄마의 안부를 묻고 위로를 건네며, 수진이는 엄마 손길이 아직은 많이 필요한 동글이를 데려다 밥도 주고 숙제도 봐준다.
함께 할 이웃이 있고, 정을 나눌 수 있는 동네가 나를 살맛 나게 만든다. 그래서 참 고맙다. 누군가는 세상이 점점 메마르고 각박해진다고 하는데 내가 사는 세상은 아직 충분히 살 만하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이곳! 브런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