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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Nov 04. 2022

아빠랑 노는 게 제일 재밌어!!

11살 아들은 최근 아빠 사랑에 푹 빠졌다. 한시도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던 아들의 긍정적인 배신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찰떡같이 붙어 있던 아들의 홀로서기는 두 손들고 응원할 만큼 대환영이다.


올봄, 남편은 집에서 한 정거장쯤 떨어진 거리에 작업실을 얻었다. 사무실에서도 집에서도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 찾기가 어렵다는 이유와 고3 딸아이가 집에서 공부를 선택해서였다.


아빠의 들쭉날쭉한 일과는 의외의 곳에서 상승효과를 발휘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남의 집 방문이 조심스러워져 초등 시절의 꽃인 파자마 파티를 할 수 없던 동글이는 늘 아쉬워했었다. 어릴 적 누나의 친구들이 삼삼오오 찾아와 밤새 북적이던 모습을 기억하는 동글이가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한 거다.


"엄마는 왜 누나 친구 엄마만 친구로 사귀어?"

"엄마가 내 친구 엄마를 사귀지 않으니까 나는 친구 집에서 놀 수가 없잖아."

"엄마, 올해 내 생일에는 파자마 파티하면 안 돼?"


동글이를 늦둥이로 낳다 보니 동글이 친구의 엄마를 친구로 두긴 참 어렵다. 누구를 만나도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다 보니 조심스럽고 그들도 역시 내가 조심스러울 것 같아서다. 설상가상 코로나로 2년 동안 가정학습을 했던 터라 초등 저학년 때 사귀어 인연을 이어가는 '동네 친구 엄마' 무리를 만들기 어려웠다.


어느 주말 아침, 전해줄 것이 있어 동글이와 함께 남편의 작업실을 찾았다. 동글이의 시선에 비친 아빠의 작업실은 신세계였나 보다. 컴퓨터 2대, 모니터 4대가 갖춰진 작업공간과 9평 남짓 한 오피스텔의 작은 규모도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오~ 여기 생각보다 괜찮은데?"

"생각보다 괜찮은 건 또 뭐야... 생각을 어떻게 했길래....ㅎㅎㅎ"

"음... 어쨌든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맘에 들어."

"아빠 작업실인데 왜 네가 맘에 드네 마네 평가를 해?"


아빠의 반문에도 아랑곳 않고,


"아빠, 나 여기서 놀아도 돼?"

"뭐하고?"

"컴퓨터만 있음 되지. 난 컴퓨터만 있으면 얼마든지 놀 수 있어."

"종일 게임만 하려고?"

"게임도 하고 아빠랑 같이 놀기도 하면 좋잖아."


한참 실랑이하는 두 남자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이 없는 집은 정적 그 자체다. 앵글이는 집에 있어도 없어도 소리를 내지 않으니 마치 홀로 남겨진 듯했다.


이후 동글이는 주말에 가끔씩 아빠와 함께 작업실에서 잠을 잔다. NO가 없는 아빠 덕분에 맘껏 게임을 하고, 좋아하는 자장면과 옛날 통닭을 모니터 앞에서 먹을 수 있는 사치를 누릴 수 있어 더 좋은 듯하다.


이른 아침 눈 뜨자마자 작업실 풍경
동긍이의 먹방


작업실에 가서 무얼 하고 놀지 계획을 세우며 한껏 신이 난 동글이를 보니 방학에 시골 외가나 친척집에 머물며 놀던 어릴 적 생각이 났다. 어쩌면 동글이에게 주말 작업실 외박은 친척집을 방문하는 느낌 같은 건가 보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반팔을 입고 작업실 앞 공원에서 종이배를 띄우며 놀 수 있었는데...

동글이와 남편이 책상에 앉아 그림 그리기 내기를 했다. 누가 더 잘 그렸는지 평가해달라며 시작한 '얼굴 바꿔 그리기'였다. 당당히 동글이 압승이었다. 간결한 동글이의 선에서 아빠에 대한 사랑이 물씬 풍겨 나왔다. 동글이에게 아빠는 든든한 버팀목이고 무엇이든 해결해주는 키다리 아저씨이며 세상 어디에도 없는 친구인가 보다.


동글이가 그린 아빠, 아빠가 그린 동글이


동글이의 아빠 사랑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사춘기를 보내며 아빠와 함께 성장통을 겪어내면 얼마나 좋을까? 아빠를 좋아하는 아들과 아들이 좋아해 줘서 신이 난다는 아빠의 오늘이 있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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