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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Feb 20. 2023

어떤 말을 듣고 싶나요?

보글보글 2월 3주 "내가 듣고 싶은 말"

새 학기가 시작되면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 들뜨기 시작합니다. 올 해는 어떤 아이들이 어떤 눈빛으로 나를 기다릴까, 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말하지 않아도 눈치챌 수 있는 선생님이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지난 5년 동안 봄학기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과 나눴던 프로그램 중 하나가 "듣고 싶은 말"입니다.


A4용지를 나눠주고 반으로 접은 후 두 개의 봉우리를 그려줍니다. 그리고 용지를 펼쳐 양쪽 끝을 맞추어 반원을 그리면 입술 그림이 완성되죠.


듣고싶은 말 활동지


학생들에게 슬플 때와 웃을 때 입술의 모양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봅니다. 슬프고 속상할 때는 입꼬리가 내려가고, 미소 지을 때에는 입꼬리가 올라가죠. 그래서 윗입술에는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아랫입술에는 듣고 싶은 말을 적도록 안내해 주었습니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너 때문에 / 너나 잘해 / 널 어떻게 믿어? / 노력 좀 해 /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와 같이 비교하고, 탓하며,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된 말이었어요.
듣고 싶은 말은,
'사랑해 / 좋아해 / 나는 널 믿어 / 역시 넌 짱 / 예뻐 / 멋져 / 대단해 / 자랑스러워'처럼 인정해 주고, 응원하며, 칭찬하는 말이었죠.


활동 후에는 학생들의 선택에 따라 발표를 합니다. 이때 부정적인 말을 먼저 발표하고, 긍정적인 말을 후에 발표하도록 안내를 해 줍니다. 그리고, 집단 상담이기 때문에 듣고 싶지 않은 말 중 '욕'을 제외한 나머지 말들 중 발표하고 싶은 부분만 이야기하도록 합니다. 쓰면서 이미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되기에 욕은 소리 내어 발표하지 않아도 좋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듣는 이들도 욕을 듣지 않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에요. 대신 풍선 등을 이용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매직으로 적은 후 터트리기, 로켓으로 날려 보내기 등의 사후활동을 하기도 하고,  윗입술 부분을 절취하여 잘게 찢는 방법으로 부정적인 감정 몰아내기 활동을 하기도 해요.


학생들과 이 활동을 하다 보면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이야기할 때는 정말 입꼬리가 내려가고, 때로는 감정이 올라와 눈물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어요. 그런데 듣고 싶은 말을 발표하면서 이내 함박웃음을 짓고 신이 나 이야기하거나, 수줍어하는 학생들도 있죠. 활동의 마무리로 듣고 싶은 말 중 한 가지를 선택하게 한 후 함께 집단에 있던 친구들에게 큰 소리로 응원해 주라고 안내합니다. "로운아! 나는 널 믿어!!"처럼 말이죠.


보글보글 2월 3주 "내가 듣고 싶은 말"


주제를 두고 일주일 동안 나는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할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요. 학생들과 마주 앉아 집단 상담을 하면서 아이들이 생각을 모으느라 고민하던 모습만 바라보다 막상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니 쉽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할까?'


내내 생각했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왜 떠오르지 않을까? 또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망치로 머리를 '꽝' 하고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칭찬받은 경험이 없구나!'


라는 것이었어요. 누군가를 칭찬하고 응원하고 위로해 준 경험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또 생각했어요.


'왜? 왜 그랬을까?'


라고 말이죠. 그랬더니 마음에서 조용히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인정받고 싶었구나.'


글을 쓰기 위해 생각을 했고, 생각을 하며 글감을 찾다 보니, 빈껍데기의 '나'를 마주 볼 수 있었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까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니?'


물어봤어요.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


'인정받아야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신경 쓸 수 있을 만큼의 관계를 맺고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일들을 하며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욕심을 내기

[나로서 충분히 괜찮은 사람 - 김재식] /  북로망스

칭찬을 아끼는 부모에게서 자라, 늘 칭찬이 고팠습니다. 숨이 턱에 차도록 열심히 하는데도 늘 '더! 더! 더!'라고 하셨죠. 지금보다 더 잘해야 칭찬을 듣겠구나 싶으니 더 더 열심히만 살았던 것 같습니다. 끝내 '애썼다, 잘했다, 장하다'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말이죠. 그러다 보니 칭찬은 못 듣더라도 야단은 맞지 말아야겠다 싶었던 것 같습니다.


혼나는 게 왜 그리 무서웠을까요? 딱 그 나이만큼씩만 자라고, 그 나이에 남들 하던 못난 짓도 좀 해보고 그럴걸 말이죠. 혼나지 않으려고 버둥대던 그 노력으로 맘껏 나이만큼 누려볼걸 그랬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칭찬도 욕도 듣지 않고 나이만 훌쩍 먹었지만 말이죠.


듣고 싶은 말이,

'사랑해, 고마워, 덕분이야, 애썼어' 같은 말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마음이 아니라고 알려주는 듯했어요. 그리고,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알 것 같아요.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 그건 바로...


"미안해."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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