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 적에는 밖에만 나가도 세상 온갖 것들이 다 친구가 되어주었습니다. 처음 만난 아이들과도 눈인사 한 번으로 바로 친구가 되어 골목골목을 드나들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번화해졌지만 어릴 적 석촌호수 근처는 땅콩밭이 많았습니다. 땅콩밭 주변으로는 참외도 제법 자랐던 것 같습니다. 동네 언니, 오빠들을 따라 땅콩과 참외 서리를 하던 기억도 슬그머니 떠오르네요. 이런 놀이야말로 요즘에는 꿈도 꿀 수 없는 놀이입니다. 그 시절은 참 겁도 없었습니다. 서리가 놀이가 아닌 절도가 된 세상에 살다 보니 그 시절 어른들은 참 넉넉한 마음으로 온 마을을 지키셨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대여섯 살쯤 어머니는 시장통에서 양장점을 하셨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드물때이고 놀거리가 많았던 것도 아니라서 동네 아이들은 눈만 뜨면 골목을 누비며 놀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늘, 어제보다 더 재밌을 거리를 찾고, 장난칠 궁리를 하나 봅니다. 그렇게 모인 아이들과 함께 '초인종 누르고 도망치기' 놀이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파트 생활을 하는 요즘 아이들은 골목 풍경을 잘 모릅니다. 술래 한 명만 대문으로 다가가 초인종을 누르고 먼발치에 우르르 몰려 술래가 초인종을 누르는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술래와 함께 달아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엉덩이에 해님 반짝 뜨도록 혼쭐이 날 법도 한 장난인데도 그 시절 어른들은 '그럴 수 있지' 생각하며 봐주셨던 것 같습니다. '아이 한 명이 건강히 자라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와닿은 아침입니다.
요즘 동글이는 신이 날 때마다 엉덩이춤을 춥니다. 네박자에 맞춘 엉덩이춤을 찍어 요즘 유행하는 챌린지를 해보고픈 마음이 드는 익살스러운 춤입니다. 동글이의 춤에 맞춰 가족들은 노래를 불러주곤 하는데 가사가 잘 떠오르지 않아 매일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게 됩니다. 어느날은 '아빠! 힘내세요.' 노래를 불러주고 있는데 앵글이가 곁에 있다가 한 마디 거듭니다.
"엄마, 이 노래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아빠가 왜 초인종을 눌러주지?"
"응??"
"요즘에 맞춰서 생각해도 이상하고, 옛날이라고 생각해도 좀 이상하지 않아? 아빠가 손님인가??"
"이십 년 넘게 이 노래를 부르면서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봤네?"
"아빠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겠지. 옛날이라 쳐도 열쇠로 열고 들어오지 않았을까?"
노랫말이 좋아서 상도 받았던 동요인 '아빠, 힘내세요!'는 앵글이를 키우면서도, 동글이를 키우면서도 많이 불러줬던 노래입니다. 특히 후렴구는 남편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율동도 가르쳐줬던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흥얼대던 노래지만 노랫말을 읽어보며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빠는 왜 초인종을 누르고, 대문을 열어주길 기다리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