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청사 공무원의 삶
내 고향은 서울이다. 일산, 용인, 안양 등 경기도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대학 다닐 때 다시 서울로 돌아와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아니지, 정확히는 부모님 댁(본가)이 서울이고 나는 세종시로 내려온 지 4년째다. 잠시 방문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점점 체류 기간이 늘고 있다. 주소지도 세종이고 투표도 세종에서 하니 영락없는 세종시민이다.
그래도 주말에는 꼬박꼬박 서울로 올라간다. 세종에서는 주말에 할 일이 없기도 하거니와, 머무를 집과, 웃고 떠들 친구, 쌓인 추억이 전부 서울에 있으니 본능적 회귀에 가깝다. 아무 일정이 없어도 우선 서울로 간다.
서울에 머물 곳(부모님 댁)이 없는 친구들이나 세종에서 결혼해 자리 잡은 친구들과는 다르다. 나는 세종에 사는 사람 중에서 가장 자주 서울을 오가는 부류에 속할 것이다. 1년에 족히 100번은 KTX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3일에 한 번 본가에 가는 건 아니다. 주중 서울출장이 많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2022년 한 해간 서울출장은 총 74회에 달했다.
사유는 다양했다.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건 간담회, 협의체 등 각종 회의였다. 내가 주재해야 하는 데다가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서울에 있기 때문에 내가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영상회의는 불가능했다. 2시간 회의의 녹취록이 A4 50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꽤나 격론이 오가는 회의였기 때문이다) 회의만큼이나 국회에도 많이 찾아갔다. 의원실에 설명을 가거나 각종 소위가 열리면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잊을만하면 열리는 여러 행사도 한몫했다. 박람회, 시상식, 축제 등 종류도 다양했다.
이렇게 지하철을 타듯 KTX를 자주 타니 자연스레 코레일 VIP가 됐다. (뭐 VIP가 돼봐야 특실 무료 업그레이드 쿠폰 2장이 전부다.)
개인차가 존재하긴 하지만 세종시 사무관이라면 누구나 오송역을 제집 드나들 듯 다녀야 한다. 당일 오전 10시에 서울에 올라갔다가 오후 4시 차를 타고 내려오는 일도 적지 않고, 이틀 연달아 서울을 다녀오는 일도 간혹 있다.
오송역에서 세종정부청사까지 버스로 20분 정도 더 이동해야 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길에 쏟는 시간과 인력, 자원이 어마어마하다. 이쯤 되면 왜 오송에 역을 만들었는지 책임을 따져야 할 것 같지만, 이제 와 무슨 의미가 있을까. :(
뭐.. 그래도 KTX를 타는 게 개인적으로는 좋은 점도 있다. 사무실을 떠나 리프레쉬도 되고, 격무에서 벗어나 잠시 눈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제법 개운하다.
이번 주말도 서울에 올라왔다. 여느 때처럼 일요일에 점심 먹고 KTX를 타고 세종으로 돌아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