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요리법이 아니라 먹는 법이다
일주일에 한 편씩은 기고해야지 다짐했는데, 예정에 없던 인사발령으로 갑자기 과를 옮기게 되면서 한동안 브런치 글을 올리기 어려웠다. 운좋게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고 싶어 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으나 인기가 있는 만큼 현안도 많은 곳이라 밀려오는 현안 쳐내랴 업무 파악하랴 밤낮으로 정신이 없었다. (끊임없이 꼬이는 날벌레를 걷어내며 음식을 먹었던 베트남의 길거리 음식점과 비슷하달까..)
아직 여름휴가를 가지 못했는데 이번 광복절 연휴에도 어디론가 떠나지 못했으니 아무래도 9월이 되어야 잠시라도 쉴 수 있을 것 같다.
이유야 무엇이든 한동안 연재를 쉬게 되면서 이 글의 연재 계획에 대해서도 다시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PSAT 전반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동안 제법 풀어놓아, 이제 총론에 대해서는 크게 짚을 것이 없다. 총론을 마무리하는 대로 과목별 접근법에 대해 각 1~2편 정도의 분량으로 이야기하고, 수험생들과의 QnA를 정리할 예정이다. 이후에는 기출문제 풀이과정을 연재하여 어떻게 접근하고 푸는지 직접 보일 계획으로, 최근 기출문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일주일에 최소 1개년도 1과목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업무와 병행하느라 속도를 내긴 어렵겠지만 성실히 쌓아 가다 보면 기출문제 전반에 대한 아카이브(거창해;;)를 구축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수험생 여러분들이 '스스로 훈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므로, 추상적인 설명들을 길게 늘여 빼는 것보다는 '실제로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중간중간 번외 편으로 하고 싶은 얘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세종 라이프라든지 등을 끄적이면서) 연재하다 보면 내년 5급 공채 1차 시험(아마 3월 첫 주 즈음이겠지?) 전에는 최근 5개년 시험(행시, 민경채, 7급)의 기출문제를 한 번씩은 짚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시중에 넘쳐나는 해설서를 쓰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내가 푸는 방식'을 보여줄 예정이다. 풀지 말아야 할 문제(넘겨야 할 문제)는 실제로 넘길 것이고, 혹시라도 수험생 여러분이 풀고야 말겠다는 (쓸데없는) 용기를 부리게 될까 봐 해설도 안 할 거다. 추후 내 풀이를 보면서 '아 이렇게 해도 괜찮구나, 생각보다 멋없는데..? 이딴 식으로(엌ㅋ) 풀어도 붙는구나'하는 인사이트를 얻길 바란다.
궁극적인 목표는 이 글들을 엮어 하나의 훈련 교본을 완성하는 것인데, 조금 욕심을 부려보자면 강의를 들을까 말까 고민하던 누군가가 이 글을 통해 훈련법을 익혀 강의를 듣지 않고도 합격하게 해주고 싶다.
오늘은 PSAT의 문제 유형대로 풀이법을 정리하는 방식의 문제점에 대해 짚어보려 한다. 문제를 짚기에 앞서 PSAT에는 얼마나 다양한 문제 유형이 있는지 알아보자.
PSAT 출제위원으로 선정되면, 우편으로 밀봉된 문서를 받게 되는데 그 안에는 PSAT 출제 지침과 내가 만들어야 할 문제 유형이 적혀있다. 그 지침 내에는 최소한 30가지 이상의 문제 유형이 분류되어 있다. 크게 5~6가지로 문제 유형을 분류한 뒤, 각 유형별로 세부 유형을 5~6개로 다시 구분해두었다. 사실 과목별로 정확히 몇 개의 유형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 출제위원의 창의력에 따라 기존 유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신유형' 문제가 종종 탄생하며(실제 분류할 때 '신유형'이라고 한다), 인사혁신처에서도 이를 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PSAT 문제 유형은 과목별로 30가지, 세 과목을 합치면 90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 PSAT 문제를 푸는 방법도 90여 가지에 달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문제 유형별로 세세하게 풀이법을 나누어 가르치는 강사나 교재가 있다면, 그건 강의 수를 늘리고 책의 두께를 늘리고자 하는 상술일 뿐이다.
뷔페에 갔을 때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정신없이 먹는 모습이 떠오르겠지만 그거 말고(;;), 우리 자리에 놓여있던 것들을 떠올려 보자. 보통 수저와 커트러리 세트가 있고, 접시와 냅킨 정도가 있다. 만일 뷔페의 요리 가짓수만큼이나 도구가 필요했다면, 우리는 가제트 형사처럼 버버리 코트 안에 온갖 종류의 포크와 나이프를 꽂은 채 완전무장(?)하고 뷔페에 가야 했을 것이다.
PSAT도 마찬가지다. 언어논리, 자료해석, 상황판단 세 과목에 등장하는 문제 유형을 세세하게 분류하다 보면 뷔페처럼 수십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각 세부유형마다 푸는 방법이 다 다를까? 결코 아니다. 요리가 무엇이든 수저, 포크, 손 등 먹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다.
요리마다 재료와 조리법이 무엇인지는 요리사가 파악해야 할 부분이지, 먹는 사람들이 파악할 것이 아닌 것처럼, PSAT 문제 유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건 출제위원의 역할이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우린 그저 우리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흘리지 않고 잘 먹으면 될 뿐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학원가에서는 PSAT의 수십 가지 유형을 가르친다. 강사 입장에서는 유형을 분류하지 않으면 가르치기 어렵기 때문에 (PSAT 시험이 폐지될지언정) 이런 강의 방식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유형을 세세히 분류하는 행위는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학원 입장에서는 숙명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지만 교재나 강의에서 유형을 세분화했다고 해서 우리가 이대로 익혀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것(음식을 알맞은 도구로 흘리지 않고 먹는 것) 임을 잊지 말자.
학원가에서는 문제를 해설해야 하므로, 문제 유형을 나누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문제 유형을 그렇게까지 세분화할 필요가 없다. 뷔페에 가기 전 요리책을 본다고 해서 음식을 더 잘 먹게 되는 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세한 유형들을 관통하는 몇 가지의 풀이 전략과 어떤 문제를 먼저(혹은 나중에) 풀지 결정하는 판단력이다. (뷔페에서도 샐러드-메인-디저트 순으로 먹어야지, 무턱대고 케이크부터 먹거나 목마르다고 음료수부터 들이키기 시작했다가는 얼마 못먹고 헛배만 부를 수 있다)
앞선 글에서 풀 문제, 풀지 말아야 할 문제를 구분하는 선구안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선구안은 눈앞의 요리를 먹을지 말지 결정하는 것과 같다. 사람마다 알레르기 있는 음식이 다른 것처럼, PSAT도 사람마다 취약한 문제 유형이 다르고, 자신 있어하는 과목이 다르다.
첫째로, 내가 어떤 음식(유형)을 먹지 못하는지 파악하자. PSAT은 100점을 목표로 하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에, 애써 안 풀리는 문제까지 풀고자 노력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나는 언어논리의 논리 명제 문제는 조금만 어려워도 풀지 않았다. 2~4문제 정도 출제되는데 절반은 넘겼다.) 이는 기출문제를 푸는 훈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먹어보면 알레르기 여부를 바로 알듯, 풀어보면 몇 가지 유형에 대해서는 본능적(우욱..)거부감이 들 것이다.
둘째로는 식탁 위 도구(풀이 전략)가 몇 가지나 되는지 파악해야 한다. 문제 유형에 따라 푸는 방식에도 차이가 존재하지만, 문제 유형처럼 수십 가지로 나뉘지는 않는다. 불과 4~5가지의 방식만으로도 대부분의 문제를 풀 수 있고, 그것이 효과적이다. 내게 필요한 도구가 몇 개인지,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몇 개인지 파악하자. 사람마다 사용하는 도구는 제각각이라서 남들이 보기엔 기상천외해 보이는 방법일지라도 내게는 유용할 수 있고, 남들이 쉽게 활용하는 방법이라도 내게는 도통 손에 익지 않을 수 있다. 나의 경우엔 기출문제를 풀면서 자연스럽게 풀이법을 체득했고, 논리학에서의 명제 활용이나 자료해석에서 이름부터 멋져보이는 계산법칙 활용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 체득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것들을 알아야 붙는 시험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강의를 듣더라도 비슷한 도구들을 발견할 수 있지만, 시작부터 남들이 사용하던 도구를 건네받으면 내게 잘 맞는 도구(풀이 전략)가 무엇인지 발견하는 과정이 생략되어 결과적으로 나만의 방법을 찾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강의를 정 듣겠다 하더라도 기출문제를 한 바퀴라도 풀어본 뒤 듣자.
셋째로, 도구(풀이 전략)를 갖춘 이후에는 각각의 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이는 수저, 커트러리 등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젓가락질을 잘하려면 시간을 두고 훈련해야 하고, 하물며 포크/나이프도 쥐는 법, 고기를 써는 법이 다 정해져 있다. 마찬가지로 PSAT 문제를 풀 때, 그 풀이법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훈련은 필요하다. 젓가락질을 못해도 음식을 먹을 수는 있지만 제대로 배운 사람만큼 빠르고 깨끗하게 먹기는 힘들다. (이렇게 말하면,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젓가락을 쥔채 콩 빨리 집어먹기 같은 묘기(?)를 보여주는 사람 꼭 있다. 그러다 꼭 옷에 흘리더라) 음식을 흘리면 옷 한 벌 버릴 뿐이지만, PSAT에서 실수하면 인생 1년이 날아갈 수도 있다. 옷이야 세탁하면 그만이지만 흘러간 시간은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풀이법 훈련은 그 무엇보다 철저해야 한다. 풀이법 훈련도 결국 기출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편의상 첫째-둘째-셋째로 나누어 설명했지만, 사실 기출문제를 푸는 훈련을 통해 이 모든 과정을 동시에 거칠 수 있는 것이다.
설명이 너무 추상적이라 감이 안 올 것 같아 나의 경우를 간략히 소개하겠다. 여기서 소개하는 간략한 내용은 곧 이어질 '각론' 파트에서 과목별 상세한 문제 예시와 함께 재차 언급할 것이다.
언어논리의 경우 통독/발췌독/논리 명제(명제 간의 역/대우 관계를 따지는 건 도통 체득이 안돼서 반례를 따져 문제를 풀곤 했는데, 이는 추후 설명하겠다) 이렇게 세 가지 풀이 전략으로 나누어 접근했다.
자료해석은 더 단순했다. ①본문에 표/그래프가 등장하는 문제, ②선지에 그래프가 등장하는 문제로 나누어 접근했으며 첫 번째 유형은 문두(옳은/옳지 않은 만 판단) → 선지를 보고 → 본문을 분석하는 순서로 풀었고, 두 번째 유형은 다양한 그래프 유형 중 조작이 쉬운 그래프 (예를 들면 막대그래프가 원형 그래프보다 조작이 쉽다. 이유는 원형 그래프는 하나의 수치를 조작하면 다른 영역도 영향을 받는 데 비해, 막대그래프는 각 수치별로 독립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부터 분석하는 식으로 접근했다.
상황판단의 경우, 가장 어려운 문제가 많이 나오는 과목이고 3교시라 체력도 부족할 때여서 선지 분석을 공격적(?)으로 하려고 노력했다. 풀이 전략은 줄글/법조문 문제와 퀴즈로 나누어 각기 다르게 세웠다. 줄글/법조문의 경우 언어논리와 비슷하게 통독/발췌독 둘 중 하나의 접근법을 택했고, 퀴즈의 경우 선지 분석을 필수로 거쳐 한 개의 선지라도 지우고 접근하려 했다. (앞선 글에서 예시로 들었던 등차수열 형태로 구성된 선지, ex: ①3개 ②4개 ③5개 ④6개 ⑤7개 이런 식의 선지에서 ①번과 ⑤번은 답이 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문제를 풀고자 했다)
대부분의 퀴즈가 실상은 경우의 수를 따지는 문제임을 고려할 때 행렬 구조의 표를 그려 경우의 수를 일일이 따지려 했는데, 표를 그려서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들이 있을 땐 (각 판단요소 간에 상호 간섭이 존재해서, 표를 그리다가 계속 지워가며 수정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표를 그리지 않고 선지를 역으로 대입해서(답으로 가정하고) 풀고자 했다. 그리고 푸는 방법은 알겠는데 아무리 빨리 풀어도 2분이 넘게 걸릴 것 같은 문제라면 2분 내에 선지 한 두 개라도 판단하여 문제를 50%라도 풀어두려 했다. (이렇게 해두면 찍을 때 남은 선지가 2~3개에 불과해 정답률이 33%~50%로 올라간다) 물론 감도 안 올 정도로 어렵게 느껴지면 조용히 욕을 읊조리며(오 미췬;) 도망갔다.
내가 고시생이던 시절, 일부 PSAT 강사들이 '문제가 수십 가지 유형 중 어디에 속하는지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적잖이 충격받았고, 일면식도 없는 강사들에게 모종의 분노를 느꼈다. 본인들에게도 문제 풀어보라고 하면 그렇게 안 풀 것이고, 절대 그렇게 못할 텐데 학생들에게 무슨 배짱으로 요구하지?
솔직히 말해 수험생의 불안감을 인질로 삼은 사기와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학원가에서 어떤 식으로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내가 공부하던 시절보다 효율적이고 좋은 방법을 많이 가르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확실히 말해두지만 학원가에서 '문제 유형'별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까지는 문제 되지 않는다. (이건 가르치는 편의상 어쩔 수 없다) 다만 누군가, 유형별 풀이법이 각기 다르므로 수많은 유형을 구분해 낼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거나 특정 문제를 보면서 어떤 유형인지 알겠냐는 둥 묻는다면 거기서부턴 잘못된 것이다. 뷔페식당에서 내 눈앞의 요리의 이름이 무엇인지, 재료는 무엇이고 어떻게 조리한 것인지를 알 필요는 전혀 없다. 혹시 내게 알레르기를 일어킬 재료가 든 것은 아닌지, 포크/수저 중 무엇을 사용해야 하는지 정도만 파악하면 그만이다. 유형을 세분화해서 공부하느라 스트레스받지 말자. 수십수백 가지의 문제 유형이 있더라도, 내게 몇 가지의 풀이 전략(포크, 나이프, 수저 등)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다. 문제 유형이 수십 가지인 것은 출제위원들의 출제 편의를 위한 것이며, 세세하게 분류하는 것 또한 다채로운 문제를 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뿐이다.
실제 PSAT 출제위원들도 위원으로 선정되고 나면 각기 출제해야 하는 문제 유형과 개수를 할당받는다. 그러면 해당 유형의 문제를 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게 되는데, 결국 문제를 완성하고 보면 이 유형인지 저 유형인지 애매한 것들이 많아서, 마지막에 문제 유형을 기입할 때(문제 은행에 문제를 보관하기 전에, 문제별로 어떤 유형인지 라벨을 붙여둔다) '음~ 대충 요런 유형에 속하는 거 같은데?' 정도로 판단해버리곤 한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더더욱 세세한 유형 분류에 목숨 걸 필요가 없다.
총론은 여기까지다. 다음 글부터는 본격적으로 과목별 풀이법을 짚어볼 예정이다. 언어논리, 자료해석, 상황판단을 순서대로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 이야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