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론] 자료해석 두 번째 이야기 : 눈대중 문제 푸는 법
벌써 연말이다. 시간이 무섭게 간다. 고시생일 때는 하루는 더디고, 일주일은 빠르고, 또 일 년은 느린 그런 삶이었는데, 직장에 오니 하루도 빠르고 일주일도 빠르고 한 달도 빠르고 세월이 너무 빨라서 불어난 급류에 휩쓸려 가는 기분이다.
오늘은 본론을 시작하기에 앞서 독자 여러분께 특별히 감사 말씀을 전하고 싶다. 짬을 내 틈틈이 쓰느라 탈고할 때까지 수정도 많이 못하는 데다 연재도 정기적이지 않아 마음 한편이 무거울 때가 있는데, 항상 적극적으로 피드백해주시고 응원과 감사인사를 남겨주시는 덕에 계속 글을 쓸 힘이 난다. 그저 황송(?)할 따름이다.
참고로 6번 글에 다소 수정된 내용이 있으니, 시간이 되시는 분은 다시 읽어보면 좋겠다.
앞서 자료해석의 문제 유형에 대해 설명했으니 이번에는 세부 유형별로 어떤 특징을 갖는지, 그리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모든 유형에 대한 설명을 마친 후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고 훈련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종합해서 정리하며 자료해석 각론을 마칠 예정이다.
자료해석 문제를 풀 때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사고 과정을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다.
나는 자료해석 문제를 풀 때, 문두(문제 제목)를 읽은 후 곧바로 선지를 흘깃 살폈다. 선지가 숫자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1차원적인 계산 문제임을 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다른 생각하지 않고 빠르게 문제를 읽고 계산에 돌입했다. (자료해석에 계산문제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했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선지가 숫자로 주어졌다면 어림산이 아니라 아주 정확한 값을 도출해야 하는 계산문제다)
위와 같은 문제들이 전형적인 계산 문제다. 그러나 자료해석 문제의 대부분은 위와 같은 구조가 아니다. 선지 5개에 대해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거나 ㄱ~ㄹ까지 주어진 네 개의 보기를 판단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경우 문제의 생김새만 보고는 계산이 필요한지 아닌지 알 수가 없으며, 각 선지/보기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 문제 안에서도 어떤 선지는 계산이 필요한 반면 어떤 선지는 눈대중만으로도 풀 수 있다.
즉, 생김새만 보고 접근법을 알 수 있는 문제는 극히 제한적이기에 실제 풀이과정에서는 위 알고리즘과 같은 사고를 거치는 게 효과적이다. 누차 강조하지만 문제 유형을 나 스스로가 활용할 수 없는 수준으로 세분화하지 말자. (7가지, 10가지, 혹은 그 이상으로 구분하면 대체 어디에 쓸 것인가? PSAT 강사라도 할 텐가?) 그렇게 구분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 분류는 단순할수록 좋다. 우리의 풀이 전략은 오직 셋 중 하나, 눈대중으로 풀 것이냐, 어림산/암산을 할 것이냐, 계산을 할 것이냐. 그뿐이다.
내가 이번 글에서 설명할 '눈대중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란, 선지(①~⑤) 또는 보기(ㄱ~ㄹ) 중 전부/대다수가 눈대중만으로 해결이 가능하여 계산/어림산을 굳이 하지 않고도 답을 도출할 수 있는 문제를 의미한다.
내가 자료해석 각론에서 눈대중 문제의 존재를 강조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무턱대고 계산에 돌입하는 풀이 전략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전하고 싶어서다. 이렇게 말해도 '누구보다 빠르게 난 남들과는 다르게'라는 생각으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는 수험생이 있음을 안다. 그래서 내 경험 하나를 전하고 시작하려 한다.
나도 무턱대고 계산했던 시절이 있다. (PSAT계의 아웃사이더;;) 주변에서 그 방법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말려도 나는 내가 계산 기계가 되어 남들보다 더 빠르게 계산해서 풀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고집을 부렸다. (PSAT계의 아웃사이더가 될 셈이었나)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끈질기게 붙잡고 있던 고집을 내려놓은 시점에 비로소 합격할 자격을 갖췄던 것 같다.
고집을 부리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면서 공부 전략을 많이 수정했다. PSAT 자료해석에서는 '무조건 계산'하는 전략에서 '되도록 계산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꾸었고,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다. 2차 과목 또한 어려운 문제만 많이 풀던 기존 방식 대신 (합격수기마다 클리셰처럼 소개하는 공부법인) 기본서부터 차근차근 다시 곱씹는 전략으로 선회한 결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2차 시험의 평균이 1년 새에 무려 13점이나 올랐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고집부려 좋을 것이 없었다. 고시는 1년에 한 번 보는 시험이라서 굉장히 텀이 긴 편에 속한다. (이보다 더 주기가 긴 시험은 조선시대 과거 시험뿐이 아닐지.. 3년에 한 번이라 3수하면 9년 훌쩍 간다 내 청춘;;) 다른 이들이 제안하는 공부법을 적용해보고 안 맞으면 원래 방식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구태여 고집부릴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나는 5급, 7급을 비롯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여러 의견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고 보완해 나갈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가진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것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보고 정책결정을 하는 것이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바람직한 자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존심을 세우고 고집을 부리기보다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먼저 걸은 사람들의 말을 편견 없이 수용해보자.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때 가서 버려도 늦지 않으니.
노파심에 딴 소리가 길어졌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눈대중으로 푸는 문제란 어떤 것인지 예시를 통해 살펴보자. 눈대중 문제에도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애초에 눈대중만으로 풀도록 설계된 문제(시력 테스트 문제, 대체로 난도가 낮다)와, 계산/어림산 보기가 섞여있지만 요리조리 피해서 눈대중만으로 풀어버릴 수 있는 문제. 눈대중만으로 풀도록 설계된 문제부터 살펴보자.
위 문제의 문두부터 보자. 문두의 핵심은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은 것은?"이다. 사용하지 않은 한 개를 찾으면 된다니, 너무 쉽다.
이 문제는 지문을 한 문단 읽고 선지를 체크하고, 그다음 지문을 읽고 또 선지 한 번 체크하고, 또 한 문단 읽고 체크하는 식으로 지문→선지→지문→선지→지문으로 오가며 풀면 된다. 그렇게 풀어보면 ②번 선지가 글의 내용 어디에서도 쓰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풀면서 계산이나 어림산이 필요했나? 아니다. 그냥 정신만 차리면 된다. 이처럼 자료해석에는 착각이나 실수만 하지 않아도 맞출 수 있는 문제가 꽤 된다. 한 문제 더 살펴보자
18번 문제를 보자. (지금부터 2분간 풀고 설명을 읽을 것을 권한다)
문두도 길고, 각주도 세 개나 붙어 있는데 쫄 필요 없다. 잘 읽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래프만 이해하면 문제는 쉽게 풀 수 있는데, 그래프를 눈대중으로 판단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내 경험상 문제가 험상궂게 생긴 경우(문제가 길고 각주가 많이 달린 경우) 생각보다 허무하게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진데, 무섭게 생긴 친구들은 대체로 착했다.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아서 화를 내는 기능이 퇴화한 것 같기는 하다..) 출제위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지문이 길고 각주가 많이 달린 문제의 경우 읽는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이미 난도가 어느 정도 높아졌다고 판단하게 되고, <보기>나 선지를 쉽게 구성해주고 싶은 인류애적 마음이 들곤 한다.
18번 문제의 <보기>를 하나씩 풀어보자.
ㄱ. 인문계열을 제외하고 계열별 월평균상대소득지수의 최댓값이 네 번째로 큰 계열은 남성과 여성이 같다. → 남/녀 계열별 월평균상대소득지수 그래프에서 각 계열별 최댓값이 어디까지 솟았나 순서를 세면 된다. 남자의 경우 의약-교육-공학-예체능, 여자의 경우 의약-교육-예체능-자연이다. ㄱ은 틀렸다.
ㄴ. 교육계열 월평균상대소득지수의 최댓값과 최솟값의 차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크다. → 잘 보자. 남녀 계열별 월평균상대소득지수 그래프의 좌측 수치 구간이 다르다. 교육계열의 경우 남자는 최댓값과 최솟값의 차이가 20 이상, 여자는 20 이하다. (단순히 그래프 길이만 보고 풀었다면 반성, 또 반성하자. 표/그래프에서 가장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은 축의 내용 또는 기준값이다)
ㄷ. 취업률이 인문계열 평균 취업률과 차이가 가장 큰 학과가 소속된 계열은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 → 인문계열의 평균 취업률은 각 그래프에 그어진 기준선(실선, 0%p)임을 각주를 통해 파악해야 한다. 이후 취업률의 최댓값이 인문계열 평균 취업률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계열을 찾아야 한다. 남자의 경우 교육계열에서 30%p이상 차이가 나고, 여성의 경우 의약계열에서 거의 40%p에 육박하는 차이가 난다. 따라서 ㄷ은 옳다.
ㄹ. 취업률이 인문계열 평균 취업률보다 낮은 학과가 소속된 계열의 개수는 남성과 여성이 같다. → 취업률 지수에서 0%p 지점의 실선보다 최솟값이 밑으로 내려간 계열을 세면 된다. 남성의 경우 교육, 예체능이 해당되고, 여성의 경우 공학과 예체능이 해당한다. 따라서 ㄹ은 옳다.
18번 문제를 푸는 과정 그 어디에서도 계산은 필요치 않다. 이렇게 태생부터 풀이과정에 계산이 불필요한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들은 대체로 쉬운 편이고 실수하지 않도록 집중만 잘하면 맞출 수 있다. (실수가 반복된다면? 앞서 말했듯 문제 개수를 줄여 집중력 훈련을 해야 한다) 관건은 이런 쉬운 문제 말고, 계산이 필요한 선지가 섞여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계산하지 않고 잘 푸느냐에 달려있다.
PSAT은 5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으로 다섯 개의 선지 중 한 개의 답을 찾으면 되는데, 잘 생각해보면 5개의 선지 중에 4개만 판단하면 반드시 답을 찾을 수 있는 구조다. 요즘은 4개의 보기(ㄱ~ㄹ)가 주어지는 문제도 많아서 선지 구성에 따라 보기 중 3개만 판단하고도 답을 도출할 수 있다.
많은 수험생들은 모든 선지를 다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데, 이 사실 덕에 어려운 선지를 회피할 여지가 생긴다는 점에서 이를 인지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PSAT 문제를 푸는 것은 계곡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과 비슷하다. 계곡 건너편까지 물에 빠지지 않고 건너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고, 5개의 돌(선지)이 징검다리를 이루고 있다. 이때 징검다리의 돌들은 모양이 다 달라서, 어떤 것은 흔들리지 않고 평평해서 디디기 쉽지만 어떤 것은 흔들거리거나 미끄러워서 잘못 디뎠다간 물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때 어떤 돌을 딛고 계곡을 건너야 할까? 당연히 안전한 돌을 골라 디뎌야 한다.
지금까지 학원가에서는 (믿기 어렵지만 놀랍게도) 흔들리는 돌을 디디는 법과 미끄러운 돌 위에서도 미끄러지지 않는 법을 가르쳐왔다. 마치 자신이 얼마나 어려운 돌도 잘 디디는지 자랑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목표는 계곡을 건너는 것(문제를 맞히는 것)이지 징검다리 위 모든 돌을 디디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갖춰야 할 능력은 디디기 어려운 돌 위에서도 물에 빠지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돌이 흔들리고 미끄러운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 바로 선구안(9번 글을 참고하자)이다.
실제 징검다리를 건널 때, 우린 다음 돌을 디디기 전에 한쪽 발을 슬쩍 내밀어 살짝 디뎌본다. 그리고 흔들거린다 싶으면 그 돌이 아닌 다른 돌을 택한다. PSAT도 마찬가지다. 선지/보기를 풀 때, 요구하는 정보량이 너무 많거나 너무 디테일한 계산을 요해서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느껴지는 경우 다른 선지/보기를 대신 푸는 것이 현명하다. PSAT을 잘 풀어내는 사람들은 이처럼 선택적으로 쉬운 선지부터 풀어나가는 능력을 갖고 있다. PSAT이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면 ①어려운 문제를 판단해내는 선구안과 ②쉬운 선지부터 풀겠다는 전략이 없는 경우일 수 있다.
PSAT 자료해석 문제 중 눈대중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우리가 반드시 맞혀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눈대중 문제들은 집중만 하면 맞출 수 있어 난도가 낮기 때문이다. 선구안만 잘 발휘하면, 까다로운 선지/보기들을 뒤로 제쳐두고 쉬운 녀석들만 분석함으로써 답을 보다 수월하게 찾을 수 있다. (똑같은 문제도 누군가는 낑낑대며 풀고, 누군가는 쉽게 푸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시를 통해 어떤 문제에서 이런 역량 차가 나타날 수 있는지 알아보자.
위 문제를 대충 봐서는 이 문제가 눈대중으로 풀 수 있는 문제인지, 계산이 필요한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게 정상이다) 눈대중으로 풀 수 있는지 없는지는 직접 문제를 풀면서 (징검다리를 슬쩍 디뎌보면서) 깨달아야 한다. 그럼 한 번 풀어보자. 이번엔 문제 푸는 과정을 생각의 흐름대로 설명해보겠다.
먼저 문두를 읽는다. (~옳은 것만을~) 아, 옳은 것을 찾는 것이구나. 그럼 선지로 넘어가야지. 혹시 <보기> 중 선지에 4개 포함된 것은 없는지 살펴보자. 애석하게도 다 3개씩 고르게 넣어두었네? (요즘 출제자들 인색하네 ^-^..) 이제 <표>의 축을 읽자. 조사 연도로 행을 구분하였고 조선왕조실록/호구총수로 열을 구분했구만? 오케이... 이제 <보기>로 넘어가자. <보기>의 ㄱ부터 봐야지.
ㄱ. '조선왕조실록', '호구총수'에 따른 호당 구는 모든 조사 연도마다 각각 3명 이상이다. → 엥.. '모든 조사 연도마다..?' 이 표 전체를 살펴야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다. 너무 파악해야 하는 정보가 많으니 ㄴ으로 넘어가자. (응안풀어~)
ㄴ. 현종 13년 이후, 직전 조사연도 대비 호 증가율이 가장 큰 조사연도는 '조선왕조실록'과 '호구총수'가 같다 → 현종 13년부터 차례로 살펴볼까? 계산이나 어림산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조선왕조실록/호구총수 모두에서 숙종 19년의 호 증가율이 가장 높음을 알 수 있군! (눈대중 +_+) ㄴ은 맞다.
→ ㄴ이 맞으므로 선지 ①, ③, ⑤번을 제외한 ②, ④번을 삭제한다. 이어서 ㄷ을 보자.
ㄷ. 숙종 원년 대비 숙종 19년 '조선왕조실록'에 따른 구 증가율은 '호구총수'에 따른 구 증가율보다 작다. → 보기ㄱ에 비하면 두 개 연도만 비교해도 된다는 점에서 판단해야 하는 정보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보인다. 풀어도 될 듯?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숙종 원년 대비 숙종 19년의 구는 대략 (천 단위 이하 생략 시) 470에서 718로 늘었다. 이에 비해 호구총수에 따르면 472에서 704로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 470 → 718
호구총수 : 472 → 704
뭐지...? 시력 테스트인가? 계산이나 어림산하지 않아도 '조선왕조실록'에 따른 구 증가율이 더 높음을 알 수 있다. (눈대중 개이득)
→ <보기 ㄷ>이 틀렸으므로 ㄷ이 들어간 선지 ③번과 ⑤번을 삭제한다. 결국 남는 선지는 ①번뿐이다. ㄱ과 ㄹ을 판단하지 않고도 답이 ①번임을 도출할 수 있다.
여기까지다. 바로 이런 문제가 눈대중으로 푸는 문제다. 만일 여기서 <보기 ㄱ>을 넘기지 않고 시간을 허비했다면 풀이 시간이 30초~1분은 더 걸렸을 것이다. 문제 8번에서 우리가 밟지 말았어야 하는 돌은 바로 <보기 ㄱ>이었다.
눈대중으로 풀 수 있는 문제의 존재를 깨닫고, 문제마다 30초~1분의 풀이 시간을 절약하기만 해도 최소 3~4분의 시간은 더 확보할 수 있다. (전체 문제의 약 1/3은 눈대중으로 풀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4분이면 평균 두 문제를 더 풀 수 있는 시간으로, 두 문제를 더 맞히면 자료해석 점수 5점을 높일 수 있다. PSAT 고득점의 핵심은 풀이의 정확성과 효율적 시간 활용에 있다. 정확하게 푼다는 것이 우직하게(라고 쓰긴 하지만 어리석음에 가깝다) 모든 선지/보기를 분석함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늘날 학원가에서 무한한 계산 훈련을 시키고 출제경향과 어긋나는 출처도 알 수 없는 모의고사 문제를 수없이 풀게 하는 것은, 마치 복싱을 배우러 갔더니 상대의 주먹을 피하는 법은 안 가르쳐주고 모든 주먹을 다 맞더라도 쓰러지지 않을 맷집을 키우면 된다며 수백 대씩 패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복싱을 잘하려면 강한 펀치력 만큼이나 상대의 공격을 회피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50승 무패 복서, 메이웨더는 탄탄한 기본기와 놀라운 동체시력을 바탕으로 한 수준 높은 회피 능력으로 유명하다. (너무 잘 피하는 나머지 얍삽하다는 비판은 받을지언정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맞고 버티는 것보다 안 맞는 게 백배 낫다)
앞으로는 눈대중으로 풀 수 있는 문제의 존재를 머리에 새기고 풀이 훈련에 임해보자. 복잡한 보기와 선지를 후순위로 미루고 쉬운 선지/보기만 골라 풀다 보면 어느새 문제가 풀리는 놀라운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다만 푸는 매 순간에 최대한으로 집중하고자 노력하자. (메이웨더도 매 순간 집중하고 있기에 상대의 주먹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누차 말했지만 순간 집중력은 훈련을 통해 향상되며, 눈대중 문제에서 실수를 범하지 않는 정교함은 순간 발휘되는 높은 집중력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