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급 공채를 준비하는 분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실 것이고, 7급 공채를 준비하는 분들은 7월에 있을 1차 시험을 조금씩 준비하기 시작할 시기네요. 벚꽃이 여기저기 많이 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면 저는 수험생 때 이 시기가 참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2차 시험은 한참 남은 데다 날씨 때문에 기분은 싱숭생숭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은 조금 다른 어투로,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저는 오랜만에 고시촌에 왔습니다. 둘도 없는 친구가 고시촌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힘을 주고 싶은 마음에 온 것이지만, 고시촌이 그립기도 했어요. 수험생 여러분들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친구와 식사하고 커피를 마신 후에 발걸음을 돌리려다, 아쉬움이 남아 초시생 무렵 자주 들락거렸던 신림 2동의 한 카페에 들어와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카페에는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 분들이 많이 계시네요. 2014년의 저도 몰려오는 졸음을 쫓아가며 커피 한 잔에 의지해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데, 제가 신림을 떠났던 2017년 이후로 5년이 흐른 지금 이 동네도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추억을 되새기기 참 좋았습니다.
"야, 예전이랑 다를 것도 없는 동네를 뭘 그렇게 찍고 있어"
"예전과 그대로니까 찍는 거지 달라졌으면 핸드폰도 안 꺼냈을 걸"
연신 스마트폰으로 거리 곳곳을 찍다가 친구와 나눈 대화입니다. 여러분도 지금은 '여기서 언제 탈출할 수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한 가지 불변의 진리는 매년 누군가는 성공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제 이전, 그리고 이후에도 많은 합격생들이 여러분이 앉아 계신 그 자리를 거쳐갔습니다.
오늘은 제가 공부할 때 자주 갔던 장소를 몇 군데 소개해볼까 합니다. 20대 중반의 제가, 한창 힘들었던 시절 신세를 졌던 고마운 곳들입니다.
신림에 도착한 저는 무심코 이 가게를 향해 걸었습니다. 다부찌, 글쎄요 어떤 연유로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요? 항상 웃으며 반겨주시던 여사장님은 길고 긴 세계 여행을 시작한다며 지금의 사장님에게 가게를 넘기고 훌쩍 떠났습니다.
부대찌개 집이니 모두가 부대찌개를 먹으라며 '다 부찌'라고 지었던 것일까요? 저는 이 가게를 매일같이 드나들다가, 문득 '다 붙지'라는 의미로 지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럴 거라 믿고 있습니다. 이곳은 모두가 붙기 위해 청춘을 바치는 신림동 고시촌이기 때문이죠.
두 명이서 15,000원이면 맛있는 부대찌개를 먹을 수 있습니다. 무한 제공되는 해쉬브라운은 이 집의 별미입니다. 위치도 신림 9동 어디서나 접근하기 좋아서 정말 많이 오갔습니다. 지갑이 얇고 항상 배고픈 수험생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 가게였어요.
이곳은 원래 그냥 카페였습니다. 카페 뉴욕이라는 이름이었고, 지금도 간판 우측에 카페 뉴욕 심볼이 남아있네요. 아마도 지금은 버거를 함께 파는 곳이 된 것 같은데 실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게 이곳은 3순환 기간 오전 영상반을 수강할 때, 아침마다 아메리카노를 사던 곳이었습니다. 오전 8시 이전에 오는 손님들에게는 사장님께서 직접 구운 마들렌을 하나씩 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었습니다. 한 개를 아껴먹다 보면 어느새 한림법학원(지금은 트루엘로 옮겼지만, 예전에는 청년 주택 부지에 한림법학원이 있었습니다)에 도착했던 기억이 납니다.
낮에 공부하다가 피곤할 때, 주말에 복습할 때, 신림 밖에서 친구가 놀러 왔을 때 항상 이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대로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이곳은 제가 정말~ 좋아했던 중국집(?)입니다. 통상의 중국집과 달리 아주 실내가 깔끔했고, 음식 가격도 부담 없었을 뿐 아니라 츤데레 같은 멋진 사장님께서 항상 반겨주시던 곳이었어요. 자주 오는 저를 알아보시고는, 혼자 오는 데도 불구하고 감자튀김을 듬뿍 서비스로 얹어주시곤 했습니다. 그게 그렇게 감사했어요.
아직 가보지 않으셨다면 한 번 가보시기를 권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삼겹살 덮밥 '삼동이'를 공통 메뉴로 해서 고시촌 곳곳에 다른 컨셉의 가게를 운영하고 계시니, 이곳은 이미 꽤나 유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니던 '석률 독서실'(지금은 스터디 카페로 바뀌었더라구요)의 바로 옆이라서, 고시식당에 가기 싫을 때, 또는 뭐 먹을까 고민이 될 때 항상 이곳에 왔습니다.
이곳은 식당은 아닙니다. 나름 유명한 복사집이에요. 간판에도 붙어있듯 저 모양자는, 이 복사집에서 대량 제작을 하면서 고시생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좋은소식자'가 없으면 경제학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할 정도였죠. 저게 있어야 수요공급 곡선을 그릴 수 있고, 무엇보다 예쁘게 무차별곡선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곳 역시 '다부찌'만큼이나 이름이 참 고마웠던 가게입니다. '좋은 소식'이라니 정말 심플하지만 기분 좋아지는 이름 아닌가요? 다른 집보다 값이 몇 백 원 더 나오더라도, 그 이름 덕분에 자주 찾았던 복사집입니다. 이곳의 컴퓨터는 외국의 명소 사진이 바탕화면이었는데, 어느 날 사장님께서 대부분 직접 촬영해온 사진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수험생들에게 간접 경험을 시켜주려는 마음이셨을까요.
이곳은 토요일 밤마다 들렀던 컵닭 집입니다. 컵닭은 사실 다른 동네에서는 먹어본 적도 없어요. 보통 치킨을 자주 시켜먹으니까요. 그런데 늘 혼자 지내는 신림에서는, 컵닭이 즐기기 적합한 야식거리였던 것 같습니다. 매주 토요일 밤, 공부를 마치고 10시 반~11시가 되면 이곳에서 컵닭을 하나 주문했습니다. 금방 담아주시니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어요.
인근 편의점에서 캔맥주 한 개를 사들고 원룸으로 향하면 참 좋았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예능프로그램 '윤식당'을 보면서, 평온한 해외 휴양지의 풍경을 감상하고는 했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저런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 하면서요. (실제로 저는 합격한 이후 무려 12번의 해외여행을 다니며 여한 없이 놀았습니다) 잔잔한 감성의 예능을 보며 토요일 밤을 마무리하면 한 주간 쌓였던 스트레스가 훌쩍 날아가는 기분이었어요. 여러분도 한 번쯤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생각보다 기분 좋은 경험일 거예요.
이곳은 왠지 모르는 분도 많으실 것 같은데, 만두만 맛있는 집이 아닙니다. 여기 만둣국인가? 만두 국밥인가? 그런 메뉴가 있어요. 국밥 한 그릇에 만두 한 접시 시키면, 만원도 나오지 않는 데 정말 든든하게 식사할 수 있습니다. (구)한림법학원 건물 근처여서 저는 학원 수업 끝나고 많이 들렀어요.
사장님 내외분께서 너무도 친절하시고, 항상 최선을 다해 요리해주시는 모습에 더 애착이 갔던 가게입니다. 오늘도 지나가면서 보니 여사장님께서 열심히 만두를 만들고 계시더라고요. 무심코 들어가 인사드릴 뻔했습니다. ^^.. 이곳에서 꼭 한 끼 하시기를 권해요. 아마 즐겨 찾는 가게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곳은 한림법학원 건물 옆에 위치한 약국입니다. 약국 옆에 카페가 함께 붙어있는 신기한 구조인데 사장님께 여쭤보니 약만 팔기는 심심해서 카페까지 열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2014년~2017년 무렵에 많이 다녔는데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 반갑더라고요. 3순환 수업을 듣다가 쉬는 시간에 급히 나와 커피 한 잔을 살 때는 이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하루에 커피를 두세 잔씩 마시던 시절이라 (지금은 나이가 들었나, 두 잔만 마셔도 밤에 잠을 잘 못 잡니다 ^^) 착한 커피 가격에 감사했어요.
항상 밝게 반겨주시던 사장님(약사 선생님) 얼굴이 기억납니다. 가끔 약을 사야 할 때면 원룸에서 멀더라도 굳이 이곳에 왔습니다. 사장님과 안면을 트다 보니, 약을 살 때도 이것저것 여쭤보기 참 좋았어요.
그리고 지금은 여기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2014년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무려 합격선에서 13점 차로 떨어진 해입니다) 이곳에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열심히라기보다는.. 그냥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정도가 맞겠네요. 이제 막 시작하던 시기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막막했던 기억이 납니다.
위층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지치면 아래 카페에서 기분전환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독서실보다 카페에 더 오래 앉아있었던 것 같아요. 신림 2동은 9동에 비해 거주하는 분이 적고, 상가가 적어 비교적 조용한데요. 이 카페가 대로변에 위치해있어 접근성도 좋았고, 탁 트인 개방감이 참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와보니, 그 당시 막 카페에 자리를 잡았던 벵갈 고무나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다른 식물들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당시 그 벵갈고무나무를 보며 '예쁘다~ 나중에 나도 저런 거 키워야지' 생각했던 저는 지금 세종에서 딱 그만한 벵갈고무나무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큰 나무를 키울 공간도 없었고 돈도 없어서, 인터넷으로 오륙천 원 하는 작은 식물 몇 개를 주문해서 원룸에서 키웠어요. 그리고 그 작은 식물 중 한 녀석은 지금까지 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제 키운 지 9년 차가 됐는데, 높이가 제 손바닥 만하던 녀석이 지금은 1미터 가까이 자랐습니다. 언젠가는 잭과 콩나무처럼 천장에 닿을 수도 있을까요?
대선 이후 인수위원회가 들어오면서 업무가 많이 바빠졌습니다. 안 그래도 예산 시즌이라 바쁜데 요즘은 정말 주말 주중,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PSAT에 대한 이야기나 2차 시험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들은 쉽사리 꺼내지지가 않네요. 대신 고시촌에 발걸음 한 기념으로 제 추억을 나누어보았습니다. 노량진에 계시거나 대학에 계시거나 이곳 고시촌의 이야기에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할 분들도 계시겠지만, 지금 계신 그 공간이 나중에는 추억이 될 거예요. 하루가 갑갑하게 느껴지고 주변 모든 것이 따분히 느껴질 때는, 익숙한 독서실 자리와 매일 드나드는 카페를 한 번쯤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시면 어떨까요?
분명, 몇 년 후에는 지금의 일상이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