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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Nov 04. 2019

두유 노 김치? 아니, 두유 노 빠에야!

그래, 우리 모두 사실은, 인정에 목마른 인간들이니까!

스페인에서는 지난달 25일이 되어서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개봉했다. 칸느 영화제 당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페인 앤 글로리(Dolor y Gloria)’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스페인 언론은 ‘기생충’의 수상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정론지 엘 파이스(El País)의 영화 평론가 Carlos Boyero는 (박평식 평론가처럼 ‘페인 앤 글로리’를 포함한 모든 영화를 뜨뜻미지근하게 보았음에도) ‘봉준호 감독이 페드로 알모도바르로부터 황금종려상을 낚아챘다’고 표현할 정도였다(관련 기사​).


“... 그리고 모든 전망은 이 한국 감독이 페드로 알모도바르로부터 큰 케이크 조각(황금종려상)을 낚아채며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Y todos los pronósticos se han ido al infierno al arrebatarle el coreano el gran pastel a Pedro Almodóvar,


그리고 난 뒤, 기생충 와이드 릴리즈 개봉을 앞두고 신기한 기사를 발견했다. 엘 파이스의 다른 영화 평론가 그레고리오 벨린촌(Gregorio Belinchón)이 이번 칸느 영화제 당시 봉 감독과의 인터뷰를 인용한 것인데.


“스페인에 대해 잘 아는 것 아시죠? 산 세바스티안 영화제의 산물이기도 하고 바야돌리드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았었죠...... 제가 좋아하는 감독 중에는 파코 플라사(Paco Plaza)와 카를로스 사우라(Carlos Saura)도 있고...”
“Sabes bien que conozco tu tierra. Soy fruto del festival de San Sebastián, recibí un homenaje en el de Valladolid..... entre mis directores favoritos están  Paco Plaza  y  Carlos Saura....”


... 영화 ‘괴물’에서 산 페르민 축제의 엔시에로(encierro)가 레퍼런스로 작용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Por no hablar de que para las persecuciones del monstruo de ‘The Host’ usó como referencia los encierros de los sanfermines.
기사를 계속 읽으며 든 생각은 이거였다.
“우리나라만 국뽕에 환장한 게 아니구나!”


스페인은 여타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상당히 자랑스러워하는 편이다. 특히 다양한 자치주가 공존하고 중남미 출신 이주민과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모습들을 통해 ‘유럽 내 좌파 이데올로기의 보루’ 같은 이미지를 열심히 포장하고 있다.

카탈루냐 독립과 극우파의 부상으로 역효과가 나는 것도 같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스페인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해서 여름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스페인 황금 세기 희곡을 상연하는 축제(Festival del Teatro Clásico)들이 개최된다.


또한 전국의 영화제들도 주로 스페인 작가들의 작품을 핵심으로 해서 유럽 작품들이 주로 상연되는 편이거니와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스페인어로 더빙되거나 번역되어 출시/출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에서 스페인의 위상이 높지 않다는 것은 이들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몇몇의 사건들에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걸 보며 안쓰러워질 때가 간간히 있다.

단적인 예가 위의 칸느영화제 당시의 보도들이었고, 다른 예는 지난 EU 정부 구성 당시 EU 외무부 장관으로 뽑힌 스페인 (현 임시) 정부 외무부 장관인 조셉 보렐(Josep Borrell)을 두고 ‘프랑스/독일 위주의 EU 정부에서 스페인의 존재감을 드높였다(Presencia española en UE franca-alemana)’고 앞다투어 보도한 언론들이었다.

보다 더 넓게 국제적인 스케일로는 올해 8월, 스페인 음악계를 뒤흔든 사건을 예로 들 수 있다. 바로 팝 가수 로살리아(Rosalía)가 스페인 아티스트 최초로 엠티비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수상한 것(관련 기사​).

스페인을 보면, 1) 유럽 내에서는 프랑스/독일과 영국에 밀려 변방으로 밀려난 신세이고, 2) 국제 사회에서는 미국/중국의 큰 축 사이에서 휘둘리며 중국 자본의 침투에 허덕이는 중이며, 3) 이베로 아메리카의 헤게모니에서도 중남미 문화에 역 침략당한 형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황금 세기 희곡과 플라멩코, 사르수엘라를 찬양하고 ‘Viva España’를 외치는 이들을 보자면, 닫힌 문 안에서 파티를 벌이며 ‘우리들이 선택된 1%’라고 애써 자기기만을 계속하는 사람들인 것 같이도 느껴진다.


안쓰러워짐과 동시에, ‘그래, 우리나라만 두 유 노 김치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왠지 모를 마음의 위안이 생기기도 하고.


‘황금 세기 문학’이란, 스페인이 쇠퇴하기 직전의 문예부흥기였던 16-17세기의 작품들.
어떻게 보면 아직까지도 중남미를 주름잡던 식민지 시대의 예술을 놓지 못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죽은 자식 나이 세기’란 말이 생각나기까지 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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