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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Jul 07. 2020

스페인 현대사 사상 가장 폭력적인 독립운동의 시작

모비스타+ 제작 드라마, La Línea Invisible

여름을 맞이해 스페인의 스트리밍 서비스인 모비스타+(Movistar+)에서 한 달 가격에 두 달을 스트리밍 할 수 있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길래 냉큼 신청했다. 여러 콘텐츠가 있었고, 심지어 축구 경기까지도 볼 수 있었지만 역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지난 4월 공개되었던 ETA(Euskadi Ta Askatasuna)의 시작을 다룬 드라마인 리네아 인비시블레(La Línea Invisible).

공교롭게도 HBO España에서도 ETA를 주제로 한 드라마(Patria)를 6월에 공개하였는데 아직 보지는 못했다. 비록 HBO의 작품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였기에 더 탄탄한 이야기를 담았으리라 싶지만 Movistar+의 작품이 더 화려한 캐스팅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 큰 관심이 갔다.

총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치기 어린 청년들의 모임이었던 ETA가 본격적인 극단주의 노선을 채택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직접적인 계기는 ETA의 리더였던 차비 에체바리에따(Txabi Etxebarrieta)가 경찰에 의해 총살당하는 사건. 이에 대항해, ETA는 그들의 역사상 최초의 계획 살인을 추진하고, 프랑코 독재 체재 하에서 잔인한 고문을 자행한 것으로 악명 높았던 경찰 멜리톤 만사나스(Melitón Manzanas)가 사망한다.

멜리톤 만사나스(좌)를 연기한 스페인의 유명 배우 안토니오 데 라 또레(Antonio de la Torre) 때문에 큰 관심이 생겼다.

ETA의 폭력적인 테러 기록들만 생각했기에, 격정적이고 뜨거운 저항운동을 담으리라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드라마는 큼지막한 액션 장면들과 독립운동을 둘러싼 격렬한 감정을 욱여넣기보다 이들이 어쩌다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 스페인 현대사 사상 가장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 조직이 되었는지의 시발점을 보여준다. 

내성적이고, 합리적인 동시에 서정적인 심성을 가진 '차비'는 바스크 민족성에 대한 자부심으로 인해 ETA에 참가하고 이미 열성적으로 참가하고 있던 형보다도 더 ETA의 구심점에 빠르게 접근한다. 이건 아마도 바스크 독립운동을 압제에 대한 저항과 같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주장하는 기본적인 권리의 주장으로 접근했던 ETA의 사고방식이 그에게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데올로기는 잠시 왔다 떠나지만,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정체성도 남아있다.
(Las ideologías van y vienen. Los sentimientos permancen. La identidad permanece.)

ETA를 창시하고 시리즈 내내 흑막처럼 존재하는 '영국인'의 지지를 받아 차비는 5차 총회에서 리더가 되기에 이른다. 이 '영국인'이 나중에 차비의 죽음을 '순교'로 포장해 ETA의 테러활동을 촉발, 스페인/바스크 사이에서 끝없는 희생자를 만드는 기폭제로 만드는 것을 보면 기묘한 분노가 들기도.

비록 내가 예상했던 '연기 차력쇼'는 아니었지만, 시리즈의 처음부터 끝까지 플롯의 템포가 꾸준해서 놀라웠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놓았기 때문에 되려 등장인물들의 관계와 행동들의 연쇄작용으로 인해 눈덩이처럼 불어난 ETA의 발화점이 '보이지 않는 선'으로 표현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창한 이념의 정당성을 전시하기보다, 프랑코의 독재 체제와 바스크 독립운동이라는 거대한 움직임 속에서 사람들이 어떠한 고통을 받는지를 묘사하는 데 주력한 셈.


P.S. 드라마와 별개로, 당시 사건과 시대상을 꼼꼼하게 짚은 팟캐스트(링크)도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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