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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Sep 08. 2020

OTT는 과연 다양한 문화적 시도의 장일까?

큐레이션 알고리즘이 능사는 아닐지도 모른다

지난 7월 중순, 블룸버그(Bloomberg)에서는 '사용자들이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오리지널 영화 Top 10'을 공개했다(관련 기사). 넷플릭스는 그동안 자사가 보유한 사용자 관련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넷플릭스가 공개한 자료들은 그들의 매출/수익 정도였으며 자체 콘텐츠의 사용 추이에 대한 분석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

우선, 버드 박스(Bird Box)를 제외하고는 모두 2019년과 2020년에 공개된 작품들이다. 대체적으로 1)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을 앞세웠거나 2) 액션이나 코미디 장르의 영화가 강세인 것을 볼 수 있다. 이 추세에서 벗어난 작품은 9위에 위치한 스페인 영화 '더 플랫폼(El Hoyo)'이 유일하다. 목록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드는 의문.

그렇게 오스카 캠페인을 벌이던 '결혼 이야기'와 '두 교황'은 어디로?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메인 카테고리에서 후보 지명을 받았던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ón) 감독의 '로마(Roma, 2018)'도 이 명단에는 없다.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아온 작가들이 넷플릭스를 선택하며 만들어낸 언론의 하이프(hype),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이룬 작품의 성취에 비해 실제 관객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 물론 로튼토마토 등지에서 간간히 나타나는 평단과 관객의 괴리와 같이, 넷플릭스에서도 대중이 선호하는 작품과 평단이 선호하는 작품 사이의 차이가 자연스럽게 발생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이 Top 10 명단이 넷플릭스가 작가들에게 충분한 제작비와 최종 편집권을 주고 그들의 비전을 실현하고, 전 세계적으로 이를 공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우리가 영화의 새로운 희망'이라고 포지셔닝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탓이다.

큐레이션 알고리즘, 양날의 검?

Top 10 목록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다 문득 유튜브 첫 화면을 떠올렸다. 사용자가 시청한 기존의 영상을 기반으로 관련된 자료들을 계속해서 추천해주는 알고리즘. 이건 넷플릭스에서도 사용되고 왓챠에서도 사용되며 심지어 그들이 강점으로 내세우는 서비스이다.

소비자의 취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상품을 추천받는 것은 매우 편리한 경험임이 분명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취향 속으로 더욱더 깊은 구덩이를 파고 내려가며 다양한 콘텐츠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점차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에서 볼 작품을 고르는 데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이유도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되는 나에게 친숙했던 스타일의 작품들 사이에서 '신선한 무엇'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넷플릭스는 구독료를 세계적 스케일로 모아서 다양한 시도를 이룰  있는 풀을 만들어낼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온라인 독점 공개, 몰아서 보기(binge-watching) 등 다양한 콘텐츠 유통/소비 행태를 만들어내며 주목을 받았고, 워쇼스키 남매를 필두로 수많은 창작자들이 색다른 아이디어들을 들고 모였다. 그러나 OTT 시장은 거대 플레이어들의 진입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그 활력을 잃어버렸고, 넷플릭스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던 샛별 같은 시리즈들을 계속해서 캔슬하고 있다.

물론 나름의 대응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넷플릭스가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론칭하는 새로운 시리즈들이 도리어 그들이 자랑하는 큐레이션 알고리즘에 의해 파묻히는 것은 아닐까?

넷플릭스가 약속하는 장밋빛 비전이 아니더라도, 판데믹으로 자신의 작품들을 공개할 수 있는 장을 잃어버린 인디 창작자들에게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은 거절할 수 없는 매력적인 옵션이다. 자신의 작품을 프리미어 할 수 있는 물리적 영화제가 사라진 상황에서, 소규모 자본으로 만들어져 차선책을 고려할 사치마저 없는 작가들은 불법복제의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온라인 공개를 선택하고 있다(관련 기사).

창작자의 큰 무기인 프리미어 권을 포기하면서 선택한 플랫폼에서도 알고리즘에 묻혀 예상한 만큼의 관객을 만나지 못한다면, 과연 그 플랫폼이 기대한 만큼의 문화적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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