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이해시켜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방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소위 '썰'을 푸는 방식이든, 이메일 혹은 보고문의 형식으로 상대방에게 서면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정제되고 명료하게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다.
B2B, 업체와 업체 사이의 파트너십을 통한 업무는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업계에서 통용되는 용어들도 서로가 이미 알고 있고, 통상적으로 일의 흐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도 익숙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지 않은 경우라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거래는 스팟 거래가 아니라 여러 번에 걸친 장기적인 협력을 지향하기에 소위 한 번 길을 들여놓으면 서로가 금방 적응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거래라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다른 행정 분야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문화 행정 업무를 하면서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며 다듬고자 하는 능력 중 하나는 '모두가 하나의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텍스트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나의 게시글을 발견한 사람도,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벽에 붙은 공고문을 보고 내용을 찾아본 사람도 오해 없이 사업/행사의 의도와 절차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공연 혹은 행사의 예매 및 참가에 대한 공고문은 그나마 쉬운 편이다. 행사가 어떤 내용이고, 날짜/시간, 장소와 함께 티켓을 어느 채널에서 어떻게 구하면 되는지에 대해서만 제시해 주면 되니까. 되려 이런 행사에서 중요한 것은 (물론 정보도 중요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매력적인 행사로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한 디자인적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사람들이 조건에 맞춰 신청을 해서 선택적으로 수혜를 받는 세션 혹은 지원금 사업의 경우는 좀 까다롭다. 신청자가 원하는 내용을 제공하는 것 혹은 신청자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에 맞는지를 신청자가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티켓 예매처럼 단순하게 선형적인 순서로 떠올리며 글을 쓰기보다는 여러 변수나 조건을 다 집어넣은 큰 바다에서 시작해서 줄기를 뻗고, 줄기들을 쳐내서 작은 하나의 줄기로 모으는 과정으로 이해하며 글을 쓰려고 하는 편이다.
언뜻 생각해보면 그게 뭐 그리 힘드냐고 물어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당연한 나의 의도(텍스트)가 읽는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고 해체되는 것을 몇 번 경험하다 보면 의외로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문장 하나를 계속 읽고 부족한 설명을 덧붙이다가 길어진 문장을 쪼개고, 장황하게 길어진 문단을 다시 간결하게 만들어서 읽기 쉽게 만든 뒤 글 전체에서 중복된 내용을 담은 것은 없는지, 앞선 내용과 뒤의 내용이 서로 충돌하는 지점은 없는지를 거치다 보면 시작 지점의 글과는 아예 다른 글이 나오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