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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Oct 17. 2021

스페인의 문화는 가을에 기지개를 켠다.

달라도 너무 다른 시즌 주기 사이에서 고통받는 우리들.

스페인에서 가장 큰 두 개의 영화제인 산세바스티안 영화제와 시체스영화제는 각각 9월과 10월에 개최된다. 왜 하필 이 시기에 개최되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고, 개막식 갈라에서도 ‘베를린과 칸느, 심지어 베니스보다도 늦게 열리는 우리는 그저 핀쵸(Pincho)나 먹으러 오는 휴양용 영화제일 뿐’이라고 자조하지만, 이들은 매년 스페인 영화 산업의 새로운 시즌(temporada)을 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산세바스티안 영화제와 시체스영화제에서 선보인 스페인 영화들은 몇 주 뒤 전국 극장에 내걸리고, 12월에서 4월 사이에는 아카데미에서 주목받은 영화 혹은 해외 아트하우스 영화들이 소소하게 빈자리를 채운 뒤 마블 혹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게 여름을 내어주는 식.

스페인의 모든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9월을 분기점으로 시작한다. 
여름/초가일 경이되면 어느 도시든 이런 형태의 '새 시즌 프로그램' 홍보가 나붙는다.

9월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학사제도의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스페인의 모든 문화 기관들은 상반기에 그 해 9월에 시작하는 프로그램의 구성을 확정 짓고 여름휴가를 떠나곤 한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1월-12월로 끊는 우리나라와 협력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내년의 계획을 짜야하는 시기가 9월에서 12월 사이인데, 이 시기에 현지 기관들은 시즌을 시작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에 반해, 스페인 기관들이 시즌을 준비하는 시점에 우리들의 예산은 이미 확정이 되어버린 상황.

결국 이 둘 사이에 끼인 채 중간에서 연계해야 기관이 강제로 유연함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바라볼 때마다 보다 합리적으로 예산을 관리할 수는 없을까 생각해보지만, 딱히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은 결국 예산을 얻어내는 과정에서 설득해야 하는 주체들이 너무 다양하고 많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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