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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eudonysmo May 29. 2022

독립 예술, 영화, 그리고 스트리밍 플랫폼

스페인의 '시청각 법' 개정을 보며 드는 여러 생각.

이 법이 처음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을 당시, 세간의 관심은 지금과는 약간 다른 곳에 있었다.

당시의 쟁점은 카스티야어(Castellano)가 아닌 스페인의 공용어, 즉 카탈루냐, 갈리시아, 그리고 바스크 지방의 언어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대상에서 대형 스트리밍 플랫폼이 제외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래서 이번 주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한) '성적 자유권에 대한 법(Ley libertad sexual)'과 같이 논쟁의 중심에 올랐을 때 기사를 읽고 약간 의아했다.

언론의 관심은 '스페인 독립영화 보호'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번에 도입된 개정안은, 디즈니 플러스와 넷플릭스와 같은 다국적 스트리밍 플랫폼이 스페인에서 벌어들인 매출의 5%를 스페인 프로덕션에 다시 투입하고 그중 일정 부분을 공용어로 된 콘텐츠에 배정하며, 그 5%의 70%인 전체 매출의 3.5%를 '스페인 독립 프로덕션(producciones independientes en castellano u otra lengua cooficial)'에 배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런데, '독립 프로덕션'이 대체 뭐죠?

'독립영화'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다른 설명을 하지만 대략적으로 모두에게 공통되게 그려지는 막연한 이미지가 있다. 화려한 CG도 없고 거대 자본이 투입되지 않은 채 만들어져 적은 수의 상영관에서 근근이 상영된다거나, 감독의 메시지나 연출 의도가 강력하게 반영되어 소위 '작가주의 영화'라고도 불리는 그런 영화라거나. 모두의 마음속에 '예술영화', '아트하우스 영화', '저예산 영화' 등의 다양한 속성이 버무려진 막연한 무언가는 확실히 존재한다. 하지만 법령을 통해  '독립 프로덕션'을 지원한다고 했을 때 이런 막연한 감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관료주의라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지만 결국 주관적인 감상 혹은 의견에 기반한 설명은 다양한 재해석만을 만들어 혼돈을 일으키기만 할 뿐이니까.

스페인의 개정안은 독립영화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 제공자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안정적인 형태로 유지하지 않는 자연인 혹은 법인으로 (...) 해당 자연인/개인의 책임 혹은 주도에 의해 시청각 콘텐츠 혹은 프로그램의 생산에 대한 경제적 리스크, 협력, 그리고 수행을 책임지며 이에 대한 대가로 '앞서 언급한(dicho)'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의 대가를 받는 경우"
“La persona física o jurídica que no está vinculada de forma estable en una estrategia empresarial común con un prestador del servicio de comunicación audiovisual […] y que asume la iniciativa, la coordinación y el riesgo económico de la producción de programas o contenidos audiovisuales, por iniciativa propia o por encargo, y a cambio de una contraprestación los pone a disposición de dicho prestador del servicio de comunicación audiovisual”

언뜻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정의인데, '앞서 언급한(dicho)'이라는 문구 탓에 거대 미디어 그룹 사이의 일감 나눠먹기가 독립 프로덕션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앞에서 언급된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 제공자와 콘텐츠 제공에 대한 대가를 제공하는 제공자가 동일하지 않은 경우에는 저 정의에 해당되지 않는 것. 즉 CJ ENM 소속의 프로덕션이 롯데엔터테인먼트를 위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경우가 위의 법 조항에서는 독립 프로덕션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시청각 예술을 관리하는 법이 문화체육부가 아니라 경제부 소관이라고?

시청각 예술계의 날 선 비판에 대해, 마침 칸느영화제를 맞이해 프랑스를 방문한 스페인의 문화부 장관 '미켈 이세타(Miquel Iceta)'는 개정안의 추진이 문화체육부(Ministerio de Cultura y Deporte)가 아니라 경제 및 디지털 전환부(Ministerio de Asuntos Económicos y Transformación Digital)에 의해 추진되고 있어 직접 개입이 어렵다는 변명과 함께 대답을 피했다. 그리고 경제부는 역시 '경제부' 답게 집권 여당의 핵심 인력이자 제1 부총리인 나비아 칼비뇨(Nadia Calviño)가 이끄는 중.

행정부의 구성과 작동방식은 집권 여당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례로, 문화체육에 더해 관광까지 한 개의 부처가 담당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연 GDP의 거의 15%를 관광 수입이 차지하는 스페인은 관광부를 따로 두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시청각 예술을 유통하는 '스트리밍 플랫폼'에 대한 법 개정안을 경제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스페인 행정부가 시청각 예술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예술적 성취도와 다양성의 가치를 아무리 외쳐도, 그 목표를 뒷받침할 명료하고 정확한 법령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이상적 목표 앞에 경제적, 실리적인 이득이 앞서는 것은 만국 공통 일지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심사를 하는 것, 심사의 판을 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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