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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Nov 06. 2020

3초의 정적

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 그 찰나의 순간

연초를 끊고 전자담배를 2년 정도 피웠습니다.

전자담배는 연초와 다르게

기계 내부의 '코일'이라는 것을

수시로 교체해줘야 합니다.

제 기계는 1-2주 정도에 한 번씩 교체해줘야 하기 때문에

두 달에 한 번씩 코일을 사야 하죠.


지난 주말, 쿠팡에서 코일 한 세트를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이렇게 배송되어 왔죠.


교환신청을 대비해 찍어놓은 사진들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경비 아저씨께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걸

주워와 주셨다고 하더군요.

아마 배송하시는 분께서 실수로

제 물건을 떨어뜨리고 잃어버리신 듯했습니다.


외관 상태가 심각해 보였습니다.

쿠팡을 자주 이용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좀 당황했습니다.

운반 중에 바닥에 떨어져

차가 한번 밟고 지나간 것만 같더군요.


혹시나 코일이 파손되었으면

교환신청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훼손된 물건의 사진을 찍어놨습니다.

귀찮은 일이 하나 늘어난 것 같아

기분이 좀 언짢아지더군요.

하지만 다행히 안에 들어있던

내용물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기에

조금은 찝찝하긴 했지만

그냥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그 뒤로 이런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어젯밤 11시 25분
오늘 아침 8시


아침에 온 문자를 받고 나서

상황이 좀 파악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상대로 배송기사분께서 이동 중에

제 물건을 분실하셨던 것 같고,

다행히 아파트 단지 내에 떨어져 있던 제 물건을

경비아저씨께서 주워오신 듯했습니다.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음... 어차피 물건도 파손된 채로 왔는데
그냥 하나 더 받을까?'


쿠팡 측에선 물건이 분실되었다고 판단한 것 같고

제게 새 물건을 하나 더 보내주기로 한 것 같았습니다.


뭐 그런 생각이 들던 아침 무렵

집안 환기를 시키기 위해 베란다 문을 열었습니다.

그 순간 평소에도 자주 목격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상 1층에선 이른 아침부터

물건을 분류하고 운반하시는 택배 기사분이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시더군요.


매번 정신없이 일을 하시는

택배 기사분들을 볼 때마다

참 고생하시는 것 같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점심 이후에

쿠팡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 다정한 목소리의 상담사분께서

응대를 해주시더군요.


"저 오늘 아침 문자를 받았습니다.
기사분께서 물건을 아파트 근처에서 분실하신 것 같은데
제가 운 좋게 잘 찾아서 수령했거든요.
그러니까 새 상품은 더 보내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새물건을 포기한 것보다

번거롭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는 게

제겐 더 귀찮고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

훗날 매일 마주치는 택배아저씨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조금은 편할 것 같았습니다.


밝은 목소리와 인사로

제게 용무를 여쭤보던

여성 상담사분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아... 고객님 정말 감사합니다.
배송이 늦어져 많이 불편하셨을 텐데
이런 일로 전화까지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제가 뒷 일은 문제없이 잘 처리해드릴 테니
오늘 받으실 물건은 문 앞에만 다시 잘 놓아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택배 아저씨가 번거롭게

저희 집에 2번은 오시지 않으셨으면 했는데

결국 배송은 시작되었고,

새물건은 오늘 도착할 거라고 하시더군요.


3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통화였지만

상담사분께서 진심으로 제게 고마워하는 것 같아서

왠지 모를 뿌듯함과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전화를 좀 더 일찍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택배아저씨...)


그리고 통화를 마치기 위해

마지막 인사를 나눴습니다.


고객님 좋은 일로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상담사님도 오늘 좋은 하루 되세요.


... ... ...



3초간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아마 3초가 좀 더 넘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무덤덤하게 전했던

'좋은 하루 되세요'란 말 한마디가

상담사분과 제 사이의

커다란 공백을 만들어냈습니다.

제가 당황스럽더군요.

저기서 한 마디가 얼른 더 나와야

제가 전화를 편히 끊을 수 있었거든요.


그 짧았지만 무거웠던 침묵 뒤에

상담사분께서 떨리는 목소리로

한 마디 더 말씀해주시더군요.


"아... 네... 정말 고맙습니다 고객님.
고객님도 오늘 하루 정말 좋은 하루 되세요."


"네네.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통화가 끝난 뒤

알 수 없는 먹먹함이

제 가슴에 남아있었습니다.


기분 좋은 3분이었습니다.

귀찮고 부담스러웠지만

기꺼이 통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한 제 자신이

작지만 옳은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했고,

너무도 밝게 고마워해주는 상담사님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동시에 마음이 좀 아픈 3초였습니다.

기분 좋게 통화를 마무리하기 위해

건넸던 제 인사말 한마디가 만들어낸

그 짧지만 무거웠던 찰나의 공백.

내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시한 사람에게

건조하게, 혹은 형식적으로

작게나마 힘이 되고자 했던 그 한 마디는

그녀에게 어떻게 다가갔던 것일까요.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짧은 한 문장에도

저 사람들의 마음은 요동치는구나.

그렇게도 저들의 마음은

저 한마디의 위로와 응원이

말문을 막히게 할 만큼

낯설고 당황스러운 것이었을까.


비대면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저들의 업무환경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몸 담아보지 못한 저로써는

상상해보지 못할 많은 어려움과 고충들이 있겠죠.


별생각 없이 시도했던 전화 한 번에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날입니다.

그렇게 오늘의 글을 적어봅니다.

어쩌다 그 3분의 짧은 전화 한 통이

이렇게 긴 글이 되어버렸네요.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제겐 기억할만한 순간이었습니다.


(맞아요. 나 잘했다고 자랑하려고 쓴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 같이 잘해보자고 쓴 거예요.

ㅋㅋ...)


이 시간에도 수 없이 많은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계실

그리고 밝은 미소로

고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시는

그분들을 위해 이 글을 바칩니다.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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