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다섯 마리가 부두에 앉아 있네. 그러다 한 마리가 딴 데로 날아가겠다고 결심했지. 그럼 몇 마리가 부두에 남아있나?"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답합니다.
"네 마리겠죠."
네 마리지 당연히. 근데 네 마리면 이걸 썼겠어요?
생각이 워낙 많은 요즘. 아이디어만 떠오르면 기록해두고, 이 일, 저 일 계획만 세우기 바쁩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어느덧 3개월. 돌아오기 전이나, 돌아오고 나서나, 머릿속은 온통 생각.생각.생각. 문득 질문이 하나 떠오릅니다. 지난 3개월 동안 내가 그 고된 고민의 시간을 거쳐 이뤄낸 것들은 뭐가 있을까?
별로 없더군요. 생각과 계획의 양은 성과와 결과물의 양과 비례하지 않았습니다. 떠오르면 기록하고, 기록하면 잊혀지고, 또 다시 새로운 게 떠오르고. 끊임없이 순환되는 반복의 고리. 놓치지 않고 정리해둔 아이디어들, 치밀하게 준비해놓은 계획들, 그들중 대부분은 빛도 보지 못한 채 사장되어 있습니다. 모든 과정이 비생산적이었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기대치에 못 미치는 건 사실이었습니다.
그때 또 할아버지가 말합니다.
"틀렸네. 아직 다섯 마리가 있네. 날아가겠다고 결심한 것과 날아간 것은 다르니까."
아...
하...
"잘 듣게. 의도만 있어서는 무용지물이네. 딴 데로 가겠다고 생각하고 결심할 수는 있겠지. 또 멋지게 날면 정말 재밌을 거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작 갈매기가 날개를 펄럭이면서 진짜 날아갈 때까지는 여전히 부두에 있는 거네. 그런 생각을 하는 갈매기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갈매기는 조금도 다르지 않아."
"결국, 다른 식으로 살아보겠다고 생각만 하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눈곱만큼도 하지 않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거지."
시간 많고 할 일 없는 백수가, 유일하게 붙잡고 놓지 않을 수 있는 끈 하나가 바로 독서입니다. 너무 생각이 많거나 혹은 너무 생각이 없거나 할 때, 무엇도 책만큼 제게 시의적절하고 위로가 되는 조언을 해주지 못합니다. 백수가 어디에서 이렇게 훌륭하고 재치있는 할아버지를 또 만날 수 있겠어요.
우리는 남들은 행동으로 판단하면서, 자신은 의도만으로 판단하는 습관이 있다고 하네요. 할아버지 말씀에 따르면요. 생각과 계획에서만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 결과물로 나올 수 있게 좀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3개월 전의 나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삶을 살게 될 테니까요. 운 좋게 주워들은 할아버지의 조언을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