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지 D+20 (2020.07.01)
2017년 한 대학생의 일기.
이틀 전 살고 있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내 방엔 가구라고 부를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다. 바로 책꽂이다.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본가에서 나와 잠시 아버지와 함께 2년 정도 자취 생활을 하는 동안, 내 방에 늘어난 짐이라고는 책꽂이에 있는 책들이 전부였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는 휑한 책꽂이였지만 지금은 어느덧 꽤나 많은 책들이 채워져 있다. 차곡차곡 정리하는 동안 늘어난 책들을 보면서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곧이어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이 많은 책들 중 지금까지 내용이 머리와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선명하게 남아 있는 책은 많지 않았다. 그러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이 책들을 왜 읽었을까, 독서란 무엇이지?’
불현듯 떠오른 이 질문은 사실 예전부터 나를 집요하게 괴롭혀온 물음이다. 아직도 난 내 과거와 미래의 독서에 대한 이유와 목적에 관한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긴 여정 동안 내게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준 책이 있었다. 바로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이다.
‘무작정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은 것일까?’ 하는 다독(多讀)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 건 바로 이 책을 만나고 나서부터다. 지난 시절 내 독서는 무작정 한 해 동안 많은 책을 읽는 것이 목표였다. 많은 책을 읽으면 많은 것들이 남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이러한 목적의식과 바쁜 일상생활은 내 독서를 자연스럽게 ‘속독(速讀)’화 시켰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표현에 따르면 ‘속독 콤플렉스’가 생겨, 나도 모르게 책을 빨리 읽어야 한다는 강박과 초조감에 빠지게 되었다. 음식 먹는 걸로 비유하자면 맛있는 음식을 빠르고 많이 먹어야 많이 음미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음식의 고유한 맛조차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한 것이다.
게이치로는 그런 의미에서 바쁜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많은 책을 빠르게 읽는 속독이 아니라 정독(情讀)과 묵독(默讀)이라고 한다. 적은 책을 읽더라도 잘 곱씹으며 제대로 읽는 독서가 필요하단 것이다. 그가 이 실천의 방안으로 제안한 것이 바로 ‘슬로 리딩(Slow Reading)’이다.
그는 ‘슬로 리딩은 오랜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의 깊이를 더해주는 것’이며 ‘무작정 활자를 좇는 빈약한 독서에서, 맛을 음미하고 생각하며 깊이 느끼는 풍요로운 독서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난 이유 없는 다독 강박 때문에 독서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 자연스레 얕게 스며든 책의 지식은 시간이 지나 휘발유처럼 가볍게 증발해버린 것이다. 저자의 말로 ‘읽어야 한다’는 초조감은 ‘독서를 빈곤하게 만들 뿐이며 단순히 정보처리 속도를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무의미’하단다. 깊이 공감했다.
게이치로처럼 책을 천천히 읽어야 한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듯하다. 느리게 읽으면 천천히 그리고 깊게 독서할 수 있다. 진한 맛을 느끼며 오랫동안 그 맛을 잊지 않는다. 작가 유시민은 그의 책에서 ‘1년에 100권 읽기 같은 목표를 절대 세우지 마라’고 내게 직언했다.(그래서 50권으로 줄였다.) 그의 말대로 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맛’인 것 같다. ‘한 권이라도 음미하면서 읽고 행복한 상상을 하는 게 그런 것 없이 100권을 읽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또 '김영란법'으로 잘 알려진 대한민국의 최대 여성 대법관이었던 김영란은 그의 책에서 ‘책을 천천히 읽는 힘이야 말로 어렸을 때 익혀두어야 하는 습관’이라고 말한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참 바쁘다. 하루하루가 정신없는 삶의 연속이다. 이렇게 바쁠수록 무언가를 더 빠르게 해치우려는 욕심 보단 가끔씩 잠시 멈춰 서서 천천히 나를 돌아볼 여유가 더 필요한 것 같다. 이제 난 슬로 리딩을 실천한 지 3개월이 되어간다. 독서에서도 삶에서도 느림의 미학이 왜 필요한지를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내 삶에 자리하고 있는 느림의 미학.
다시금 독서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준
우연의 소중한 선물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