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온 뒤
곧장 할머니를 뵈러 갔습니다.
전라남도 영광.
고속버스로 4시간.
저희 할머니는
연세가 90이 넘으셨지만
아직도 정정하십니다.
욕도 아주 잘하세요.
오랫동안 큰아버지댁에 계시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금은
시골에 내려가 혼자 살고 계시더군요.
최근 친가 쪽 식구들이
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 보입니다.
아직은 제가 모르는
집안의 복잡한 사연과 이야기가 많나 봐요.
그런데 별로 일일이 다 알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한테 할머니는 그냥 할머니거든요.
가운데 아저씨는 모르시는 분
터미널에 마중을 나오셨습니다.
터미널이 있는 시내로 나오기 위해선
힘겹게 몸을 이끌고 버스를 타셔야 하는데
손주가 멀리서 온다고 굳이 나오셨더라구요.
할머니를 만나
근처에 있는 순대국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서울에서 먹는 순대국과는 맛이 오묘하게 다르더군요.
마을버스 배차간격 2시간
터미널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30분 정도를 더 들어가야
할머니집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했던 건
마을버스 한 대를 2시간 기다렸다는 것.
(영광터미널 클라쓰)
오랜만에 보는 시골풍경이 참 예뻤어요.
싱싱하고 맑은 향기가 나는 초록 풍경.
할머니 밥상.
집에 식탁도 없어서 바닥에 차려놓고 드시더라구요.
작은 상이라도 하나 놔드릴까 했는데
할머니는 앉아서 드시는 게 편하시답니다.
더 얘기했다가는 굴비로 한 대 맞을 뻔해서 그만뒀어요.
(굴비는 역시 영광굴비)
할머니가 해준 밥 맛은 묘합니다.
평범한 반찬들이지만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한 특유의 손맛이 있거든요.
똑같은 김치를 먹어도
똑같은 생선구이를 먹어도
이상하게 할머니 음식에선 정겨운 맛이 돋아나요.
할머니는 교회를 다니십니다.
아주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셨어요.
제가 한창 교회를 열심히 다닐 때
얼마나 좋아하셨던지.
지금은 완전한 탕자로 살고 있지만
죽기 전에 언젠간 할머니 소원대로
다시 교회에 돌아가야겠습니다.
전 할머니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습니다.
거리감이 느껴져서 싫거든요.
남들에겐 예의 없고 싸가지 없어 보일지 몰라도
저는 이게 좋거든요. 평생 그렇게 해와서.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냥 이렇게
할머니와는 평생 애기때의 손주처럼
살갑게 철부지처럼 지내고 싶어요.
집 앞 마을버스 정류장
집으로 돌아오는 날
손주를 배웅해주러
또 다시 터미널까지 따라오신 할머니
유독 발걸음이 무거워 보이셨어요.
결국 마지막엔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었던
철없는 나이에 만났던 할머니와
서른이 넘은 손주가 만났던 할머니는 달랐습니다.
할 말도 많고, 들을 말도 많고,
할머니와 보냈던 시간이 꽤나 재밌었어요.
영광을 다녀온 이후로 할머니께서는
제게 매일 한 번씩 전화를 하십니다.
말 그대로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이요.
그래 봤자 3-4분
가벼운 안부를 주고받는 싱거운 통화지만
그래도 귀찮지 않고 좋습니다.
제 마음도 편하고 할머니도 좋아하시고.
이번 기회에
할머니랑 친해지고,
할머니를 조금 더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제게 있어 할머니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한번 영광에 내려갑니다.
할머니 집에 TV를 설치해드려야 하거든요.
할머니 곧 다시 갈게.
TV랑 같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