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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Aug 24. 2020

Ep16. 또 이사, 파견, 반전매력

호주 워킹홀리데이 일지 16화(2019.9-10)


또 다시 새집으로



한 번 더 이사를 가게 됐습니다.

약 6개월 정도 살던 집이었는데

문제가 좀 많았습니다.


집은 아늑하고 깔끔했지만

겨울엔 난방 문제가 있었습니다.

집주인은 전기세 걱정에

전기난로나 전기장판을 못 쓰게 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전기장판 없이는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몰래 쓰곤 했죠.


설상가상으로 오래된 집이라

전기를 너무 많이 쓰게 되면

종종 차단기가 내려가곤 했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냉장고가 고장나면

며칠간 음식도 제대로 보관 못하는

그런 크고 작은 사고들이 비일비재했죠.


같이 사는 다른 친구들도 그렇고

집주인과 이런저런 마찰이 많았습니다.

언제는 요즘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온다며

세입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하소연을 하더군요.

처음엔 이해해주려고 노력했지만

이건 아니다 싶을 때가 많아 여러 번 부딪히곤 했습니다.


장염과 감기에 걸려 3일을 앓아 누웠... 태어나서 저렇게 앓아누워본 적이 없었는데...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평소 모습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이 문제로 여자친구가 참 많이 힘들어했는데

예민해진 성격 탓에 울기도 참 많이 울었죠.


바로 파티...에브리데이 빠리투놔잇 !

같이 사는 친구들 절반이 대만사람이었는데

주말마다 다른 대만인들을 초대해

밤늦게까지 파티를 열곤 했습니다.


저 역시 평일만 근무를 했고 주말은 쉬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고

가끔은 잘 어울려 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주로 평일에 쉬고

주말엔 모두 일을 나갔기 때문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에 지장이 생기는 나날이 반복됐습니다.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로

더 예민해진 여자친구와 저는

같이 사는 친구들과도

크고 작은 마찰 같은 게 생겨났고

결국 집을 옮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쉐어하우스 생활은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지낸다는 점에서

즐겁기도 하지만 참 어렵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름 좋은 친구들이었고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든 곳이었어요.


호주 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머물렀던 마지막 쉐어하우스.
보고싶은 Ash(재). 잿더미 같아서 이름을 '재'라고 지음
보고싶은 Tofu(두부). 하얘서 집주인이 이름을 '두부'라고 지음.

새 집은 다행히 너무 괜찮은 곳이었습니다.

시설도 좋고, 집이 너무 깔끔했어요.

집주인이 한국여자, 호주남자 커플이었는데

아는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곳이라

저희에게 참 친절했습니다.


무엇보다 집주인이 한국사람이라는 게 좋았습니다.

이제껏 제가 만나온 집주인들과는

언어와 문화 차이의 문제로

여러 가지 트러블이 참 많았는데

여기선 그런 게 전혀 없었거든요.

집주인이 저보다 두 살 어린 여동생이었는데

성격도 마음씨도 좋고 진짜 털털했어요.

호주를 떠날 때까지 정말 마음 편히 지냈습니다.


그 친구와는 한국에 온 지금까지도

곧잘 연락하며 지내요ㅎ

특히 여자친구와는 베프가 되었어요.

(고맙다 주희&루크^^^^)




파견


새 파트 Felly. 완전 공장 노동자가 다 되었네.


휴가를 다녀온 뒤

일하는 파트가 바뀌었습니다.

Slaughterer(도축파트)에서

Felly(양털가공)로 이동하게 됐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호주 할아버지인

공장장의 꾀임에 넘어가버렸죠.


제가 일하던 도축파트에선

칼을 쓰는 일이 많았습니다.

보통의 저와 같은 이주근로자들은

비자일수를 채우기 위해 

3개월만 일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은데

저처럼 오래 일한 근로자는 

종종 관리자의 부탁으로 

신입직원들을 가르쳐 줄 기회가 많았죠.


어느 날 그런 저를 지켜보고 있던 공장장이

갑자기 저를 불러내더니 이렇게 묻더군요.


"Pyo. 부탁이 있네.

Felly에서 사람들한테 칼질 좀 가르쳐보겠나?"


펠리(Felly)파트. 공장이 굉장히 컸습니다. 직원수가 500명은 족히 넘는 곳이었어요.
펠리는 이렇게 양털을 가공하는 곳입니다.


슬라우터(Slaughterer)파트는

양의 생살을 가공하고 상품화하는 곳이라면

펠리(Felly)파트는 양모를 가공하는 곳이었습니다.

보통은 펠리에선 칼 쓰는 작업이 거의 없지만,

이번에 칼을 써야 할 작업라인이 추가되었다며

펠리 근로자들에게 칼질을 가르쳐달란 부탁이었죠.


'왜 나한테?'


처음엔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3개월 뒤 복귀 조건으로 승낙했죠.


5년, 10년 이상 근무한

호주 토박이 숙련 근로자도 많은데

왜 하필 나한테 시켰을까

처음엔 의문이 들었죠.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대낮에 섭씨 40도가 넘는 기온에

야외에서 일을 해야 하는 조건을

반기는 사람이 없었나 봐요^^^^^^

(슬라우터는 실내, 펠리는 야외거든요.)


나중에 친한 호주관리자 친구가 이야기해주더군요.


'Pyo. ㅉㅉ 너 당했어 임마'





펠리의 반전매력



처음엔 낯선 근로환경에 적응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지요.

호주의 여름. 대낮의 더위는 살인적이었습니다.

10시간 내내 비 오듯 흐르는 땀에 젖어 있고

온몸의 피부에는 트러블이 안 생기는 날이 없었고

무엇보다 매일이 열사병과의 싸움이었어요.

더위와 사투를 벌이는 매일 10시간 근무 뒤엔

기절하기 직전까지 정말 진이 빠지게 되더군요.

정말 펠리에 가서 첫 한두달 동안엔

하루에 한 시간씩 공장장 욕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응하는 것도 금방이더군요.

새로운 일터엔 새로운 사람들이 있었고

새로운 사람들은 금방 새로운 친구들이 되었습니다.

고된 일을 여러 동료들과 함께 해나가며

힘든 상황에서도 웃으며 일할 수 있는 법을 배웠습니다.


다행히 펠리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이점들이 많았습니다.

우선 이전 파트에 비해 

분위기가 굉장히 프리했습니다.

시끄럽게 농담을 주고받고 웃으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오버타임(초과근무)이 있었죠.

펠리에는 거의 매일 초과근무가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꽤나 짭짤한 수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땐 공장장에게 쪼끔 땡큐였죠.

(나란 놈은 참 간사한 자식)



처음엔 3개월 약속이었지만

이 공장을 떠날 때까지 전 결국

이 파트에 남게 되었습니다.

공장장에게 가서 잘 이야기했죠 :)

(난 초과수당이 좋아 할아버지^^라고)


공장에서 일했던 이 시간은

제 호주생활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강렬한 시간입니다.

그만큼 특별한 경험이었고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죠.


뭐 그렇게 이열치열 살다보니

어느덧 2019년도 다 지나가고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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