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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피로스 Aug 19. 2020

Ep15. 웰컴투코리아, 재회, 결혼식 사회

호주 워킹홀리데이 일지 15화(2019.8)


2019년 8월

호주에 온 지 1년 반 만에

한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사실 비행기값도 비싸고

일도 쉬어야 하기 때문에

비자가 끝날 때까지는 귀국 계획이 없었지만

한국에서 아주 중요한 행사가 하나 있었거든요.

절대 빠질 수 없는 일이라

큰 맘먹고 2주간 한국으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그건 바로

제일 친한 친구의 결혼식 사회.

여러모로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1년 만에 만나는

시드니 친구들


한국으로 가기 위해선

제가 사는 더보(Dubbo)에서

5시간 거리의 시드니 공항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프랑스 친구 리야드(Riyad), 일본 친구 에리(Eri), 태국 친구 핑키(Pinky)


1년 만에 시드니를 다시 찾은 감회가 나름 새롭더군요.

출국 전날 하우스 매니저였던 친구의 도움으로

쉐어하우스에서 공짜로 하루를 묵고

잠깐 동안이었지만

보고싶었던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는데

참 여러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호주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6개월이나 지났는데

나는 그동안 잘 해왔던 걸까.

뭐 그런 저런 생각들.

그 시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파란 하늘과 바다 사이의 어느 중간에서

유유히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내내

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 사이의 어느 중간을

유유히 거닐며 생각에 잠겼던 것 같습니다.




웰컴 투 코리아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

제일 행복했던 시간은

보고싶었던 가족을 만난 거였습니다.


그리웠던 아부지 어무니.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토록이나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구나 싶었죠.


그렇게나 먹고 싶었던

엄마가 만들어준 맛있는 한국음식을 실컷 먹고

그렇게나 마시고 싶었던

아버지와의 소주 한잔을 실컷 들이키고

그렇게 다음날 뻗고


집에 돌아온 순간

이루 말할 수 없이 커다란

재충전의 활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왼쪽 : 대학교 친구들 / 오른쪽 : 친척들

얼마 안 되는 주어진 시간 동안

참 많이 보고싶었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대학교 친구들, 친척들.


내 주변에 이렇게나 소중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걸

그들과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지낸 후에야

알 수 있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얼굴 반쪽만 나온 저놈이 예비신랑, 왼쪽 한명뿐인 여자분이 예비신부


그리웠던 동네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마냥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은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다들 재밌고, 못생기고, 까불까불해요.

변한 건 없었습니다.

한놈이 장가를 간다는 사실 빼고는.


결혼하는 친구놈의 새집에 집들이를 갔습니다.

식을 올린 후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집들이를 먼저 했습니다.

이 친구 결혼식 때문에

미국에서 날아온 놈도 있었거든요ㅎ


친구의 와이프분이 될 사람을 만났습니다.

참 사람 좋아 보이더라고요.

성격도 정말 좋고, 인상도 매력적이고

친구가 여자를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혀 그러지 못할 것 같았는데

한편으로 놀라기도 했지만 장하기도 했습니다.

둘을 직접 만나보니 마음이 한결 놓이더군요.

왠지 둘이 알콩달콩 잘 살 것 같았습니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기억이 된

친구의 결혼식 사회


비싼 옷을 입어도 참 없어 보이네요.


집에 좋은 양복이 없어서

꽤 비싼 양복을 하루 렌탈해서 갔습니다.

제일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니 만큼

뭔가 나름의 성의있는 준비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한껏 들떴지만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돼지가 된 친구도 있고, 더 늙은 놈도 있고, 세월이 야속해


결혼식장에 들어서니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10년 동안

얼굴 한번 못 본 동창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동창회가 된 예식장에서 친구들을 마주하니

마치 고딩이었던 10년 전의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더군요.



"신부 입장"

"신랑 입장"


식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참 이상했습니다.


'와 진짜 가는구나.'


동네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친구놈이

대견하면서도, 신기하면서도, 멋져 보였습니다.

살면서 이때만큼 누군가의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진심으로 기원하고 축복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사회를 봤습니다.

지금도 이때만 생각하면

하아^^...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본다는 게 제겐 어떤 의미이고

막상 해보기 전까지는

그게 얼마나 긴장되는 일인 줄

제대로 몰랐던 것 같습니다.


대학시절부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아본 경험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한 때는 운 좋게 찾아온 기회로

방송국에서 여러 카메라들을 마주하고도

긴장하지 않고 말을 해볼 수 있던 경험도 있었죠.


이때까지는 제가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긴장하지 않고

이야기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인생에 단 한번뿐인 시간인 만큼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사회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봤자

그래도 별다른 대단한 건 없지만

적어도 식장의 분위기를 좀 더 즐겁고

재미있게 만들어주고 싶었지요.


그런데

잘 안되더라고요

^^^^^^^^^^^^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말았습니다.

분명히 준비해둔 대본에는

신랑 신부의 이름이 또렷하게 잘 쓰여 있었지요.

그런데 식이 시작되자마자

신부의 성을 잘못 부르고 말았습니다.

(슬기씨 미안)

이때부터 뭔가 삐그덕거리기 시작합니다.


진지함과 엄숙함이 자리 잡은 식장의 분위기는

좀처럼 변하지 않더군요.

뭔가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는다는 마음에

조급함이 생기고, 긴장은 배가 되고,

머리가 점점 하얘졌던 것 같습니다.


'이게 아닌데'


그제야 뒤늦게 깨닫습니다.

아...

이제까지 이런 청중들 앞에 서본 적이 없었구나...

20-30대의 젊은 층부터

40-50대가 넘는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선

어느 한마디도 조심스럽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결혼식과 같은 특별한 행사에선 더더욱 말이죠.


바로 앞에 앉아 계셨던

양가 부모님들의 심각한 표정은

그런 저를 더욱 긴장되고 움츠리게 만들었습니다.

무거운 식장의 분위기도 어르신들의 표정도

뭔가를 시도해보려는 제 마음을 움츠리게 하고

입을 꽉 다물게 만들더군요.


결국 그 짧은 20분 동안

친구를 위해 사회자로서 제가 한 거라곤

잔뜩 긴장해서 겨우겨우 준비해 온 콘티를 읽고

신랑 신부를 얼른 식장에서 내보내 주는 일뿐이었어요.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발악을 한번 해봤던 것 같습니다.

이대로 신랑 신부를 내보낼 수는 없다.

퇴장만을 남겨둔 신랑신부에게

그래도 결혼식인데 이건 해야지.

라고 떠오른 즉흥적인 아이디어를 시켜봤습니다.


"아, 그래도 인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이대로 신랑 신부를 그냥 보낼 순 없죠."

"뽀뽀해~ 뽀뽀해~"


재미도 호응도 없었나 봅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식장의 분위기가 묘해졌습니다.

기대했던 반응은 아니었습니다.

애매한 호응과 미세한 웃음소리들이 뒤섞인

처음 겪어보는 당황스러운 반응.


'이건 아닌데.'


미안하다 친구야.

미안해요 슬기씨.

이 날 식은땀 참 많이 흘렸습니다.


호주에 귀국 후 한참 시간이 지나서도

이 때의 경험을 두고두고 회상하며

이불을 차댔던 기억이 납니다.


참 여러모로 제겐

잊지 못할 친구의 결혼식이었습니다.




에필로그


호주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귀국한 뒤

다시 한번 결혼한 친구집에 놀러 갔습니다.

결혼한 두 남녀는

두 번째 신혼집으로 이사도 가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친구들은 술을 마시며

그때의 제 민망함을 안주삼아

절 겁나게 놀려댔습니다.

웃으며 넘겼지만 씁쓸하긴 했죠.

ㅋㅋ...


신랑 신부 당사자들은

이때의 시간을, 사회를 본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둘은 그저 괜찮다고, 잘했다고 얘기해줬지만

나도 알아. 너네도 좀 짜증 났지?

ㅋㅋ...


무튼

앞으로 전 이 시간을

두고두고 친구들에게 놀림받으며

안주거리로 회자되는 삶을 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이 시간은 저에게나 두 신랑신부에게나

어차피 잊지 못할 추억으로

서로에게 남게 될 테니까.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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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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