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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ign Jul 15. 2016

공간에 대한 재해석

소파가 꼭 필요한가

밀라노엔 오래된 아파트들이 많다. 시내에는 새로운 건물보다 오랜 세월을 꿋꿋이 지켜낸 건물들이 더 많다. 옛날 건물들의 외관은 역시 멋있다. 실내로 들어가면 높은 천장 덕분에 방이 더 커 보이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건물이 오래되어 거주에 불편한 부분도 있다. 특히 거실 바닥은 대리석으로 돼있는 경우가 많아 날씨가 뜨거우면 덩달아 뜨겁게 달궈져 에어컨이 없으면 말 그대로 찜질방으로 변한다. 내가 예전에 살던 곳도 1960년에 지어진 대리석 거실 바닥을 가진 아파트였다. 에어컨이 없는 아파트들이 많고 여름이라 해도 참을 만큼 더웠는데, 3년 전 여름은 39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거기다 방음시설은 얼마나 꽝이었는지. 한 방은 옆집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가 너무 적나라게 들려 침실로는 쓸 수 없었고, 식사하는 곳으로만 써야 했다. 밀라노 거주가 5년이 넘어가며, 더 이상은 월세를 낼 수 없다 판단한 우리는, 해외에서 집을 구매한다는 우리로서는 나름 큰 모험을 감행했고, 다시 한번 뜨거워진 올해 여름은 다행히도 시원한 곳에서 다인이와 쾌적한 여름을 나고 있다.


집 1. 

중국에서 공부하고 일 하면서 집에 대한 애착은 없었다. 북경은 전세가 없고 전부 월세여서 깨끗하면서 월세가 적당한 곳이 최고였다. 투자의 개념으로 오피스텔을 샀었다. 내 소유였지만 사고팔 때 외엔 관리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어 마음의 애착이 가진 않았다. 물론 나중엔 흐뭇한 결실을 내게 안겨주고 간 효자 건물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때와 달리 밀라노에선 가정을 꾸리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집에 대한 아쉬움이 커져갔다. 아이가 생기니 더더욱 내 집이 있고 싶어 졌다. 월세라도 잘 꾸미고 살면 되지 않나 싶을지 모르지만 막상 살게 되면 침대 하나 바꾸기 싫어진다. 굳이 침대를 꼭 집어서 이야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밀라노의 옛 건물들은 엘리베이터가 작다. 그래서 더블 매트리스나 투 도어 냉장고 등 한국에선 아무 문제없이 엘리베이터에 실을 수 있는 녀석들이 이 곳에선 문제가 된다. 심지어 유모차 바퀴가 좀 크다고 엘리베이터에 맞지 않아 유모차도 바꿔야 했다. 창을 통해 도르래를 이용해 큰 물건들을 실으려 하면 그 비용이 크다. 월세 당시 우리가 사용한 침대는 싱글 매트리스가 한 침대 프래임에 두 개 놓여있어 오래 쓰다 보면 중간이 파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싫었다. 거기다 삐그덕 거리는 침대 프래임. 잠의 퀄리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돈이 아까워 바꾸지 못했다. 또 나는 음식물을 쟁여놓는 스타일인데, 냉장고가 너무 작았다. 아는 언니가 냉동고를 주었을 때,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아 5층까지 이고 올라갔다. 너무나 끔찍했다. 천장이 높고 좋은 재질로 건물을 만든 것은 인정하겠으나 옛 건물과는 이별을 고하고 싶었다. 우리는 2010년도에 지어진, 나름 이 곳에선 아주 쌔삥한 신식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집 2. 

우리 가족이 거주할 공간. 처음으로 내 소유의 집에서 투자의 개념이 아닌 삶의 공간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공간을 연출하고 싶었다. 언젠가 한국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 외국인이 이야기한 것이 생각났다. 한국 사람들의 집 실내 인테리어는 다 비슷하다. 거실에 큰 소파가 있고 그 앞에 텔레비전이 있다. 그리고 손님이 오면 다들 바닥에 앉아 간식을 먹는다. 공감이 가는 대목이었다. 내 머릿속에도 그대로 그려지니 말이다. 거실에 큰 소파, 텔레비전 그리고 아일랜드 식탁이 있는 오픈 주방 등등... 그런 스탠더드에 따라가지 않고 우리만의 공간을 창조하고 싶었다. 남편과 인테리어를 하며 가장 신경 쓴 곳은 조명, 바닥, 화장실, 부엌 그리고 거실이었다. 무엇보다도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다. 마룻바닥은 돈이 좀 들더라도 좋은 것으로 깔기로 했다. 가구들이야 나중에 돈 모으면 천천히 사도 되지만 기초 공사는 뒤로 미루는 나중에 더 큰 비용과 시간이 든다고 판단해서였다. 또 우리 집은 집의 크기에 비해 주방 크기가 넉넉지 않아 효율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작아 보이던 공간이 투 도어 냉장고와 식기세척기, 인덕션, 전자레인지 그리고 충분한 수납공간까지 구비된 곳으로 태어났다. 쓸 때마다 만족스럽다. 화장실은 두 개인데 한 화장실은 샤워 부스를 꼭 넣고 싶었다. 두 곳 다 욕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를 쓰게 된 이유인 거실. 우리 집은 거실과 테라스가 넓다. 이 공간을 어떻게 채울까를 고민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굳이 채워야 하나...' 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기고 걷고 하기엔 넓은 공간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과감히 결정했다. 소파를 들이지 않기로.


가장 많이 생활하는 거실 공간. 먹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나는 식탁에 가장 큰 공간을 주었다. 소파를 포기한 대신 텔레비전 앞에 두 개의 암체어를 놓았다. 다인이가 조금 더 크면 작은 암체어가 하나 더 생길 예정이다. ^^ 

그런데 공간이 바뀌니 새로운 일이 생겨났다. 소파는 무게가 커서 나란히 앉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암체어는 쉽게 쉽게 위치를 바꿀 수 있다 보니 서로 바라보며 앉을 수 있다. 서로 바라보며 앉게 되니 자연스레 이야기를 더 하게 되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소파에 앉아 말없이 텔레비전을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음악을 듣고 얼굴을 바라보며 서로 발마사지도 해주고 이야기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긍정적인 변화인 것 같다. 

우리 집을 방문한 친구들은 손님 대접에 소파가 없으니 이상하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들도 적응했다. 어차피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 하나 식탁에 앉아서 이야기 하나 같은 것 아닌가? 오히려 아가들이 있는 또래 친구들에겐 물건이 적고 아기들이 기어 다닐 바닥이 충분히 넓은 우리 집이 더 편한 듯 보였다. 

그러나 우리 집의 가장 큰 장점은 집 밑에 바로 asilo nido라 불리는 보육원과 호수가 세 개 있는 큰 공원이 있다는 것이다. 밤 9시까지도 밝은 유럽의 여름. 저녁 식사 후 사랑하는 가족과 같이 걸을 산책로가 집 아래 있는 것은 축복처럼 느껴질 정도다. 비록 전에 살던 곳보단 교통면에서 떨어지지만 곧 직장을 나가야 하는 엄마로서 보육원이 가깝고 아이가 뛸 공원이 옆에 있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리고 지금 그 타협에 아주 만족한다. 

더 이상 삐그덕 거리지 않는 침대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시끄러운 소리가 없어 잠든 아이를 살며시 놓고 나오기도 좋고, 사랑을 나눌 때에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적당히 딱딱한 매트리스가 몸을 꽉 잡아주니 같은 시간을 잤더라도 다음 날 더 상쾌한 기분이 든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 집 자랑이 아니다.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한 공간의 재해석으로 당신의 삶의 퀄리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소파만 하나 치웠을 뿐인데 서로의 얼굴을 더 바라보게 되었다. 자신의 공간을 재해석하는 데엔 시간이 걸리지만 가치 있는 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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