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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순례 Jun 18. 2023

죽음에 대한 세가지 입장 중, 유물론적 입장

죽음과 함께 정신도 사라진다?

8죽음으로 모든 것은 끝납니다

저는 유물론자입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믿습니다. 내 육신이 섞어 한 줌의 흙이 되듯이, 내 정신도 사라지는 겁니다. 내가 세상에 사는 목적은 어떻게든 자신을 즐겁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인생 뭐 있어. 즐길 때 즐겨.” 저와 같은 유물론자들의 입담입니다. 그렇다고 저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이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계로 돌아간다니, 더 깊이 생각하면 이것은 더 두려운 일입니다. 만물의 영장이고, 영적 존재인 인간이 이 거대 우주의 먼지로 돌아간다니, 있을 수 없다는 이런 생각이 저를 두렵게 합니다. 그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죽게 마련이야. 나의 조상도, 뒤따라오는 우리 후손도 다 죽게 마련이야. 죽음은 자연의 질서야, 해도 내 마음이 두려운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 내가 삶의 위기에 닥칠 때는, 나도 모르게 신을 찾습니다. 기도하는 저를 발견합니다. 저는 도대체 누구에게 기도하는 것인지!

 

새 발의 피로 새를 알 수는 없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과학자들이 밝혀낸 우주의 원리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입니다. 아직도 모르는 우주의 원리는 아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많습니다. 생명체가 나고 죽는 생명의 원리 또한 밝혀낸 것보다는 밝혀내지 않은 것이 더 많습니다. 내가 아는 작은 지식으로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하여 단정을 내리는 짓은 매우 어리석습니다. 가령 지구에서의 삶을 3차원이라 합시다. 우주 공간은 3차, 4차, 5차, 그 이상 차원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3차원으로 그 이상의 차원을 단정합니까.


비유를 들면 가감 승산의 수학 문제만 풀던 초등학생이 그가 아직은 모르는 미적분의 세계를 부정해 버린다면 옳겠습니다. 그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내가 모르던 수학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성장하는 원칙도 늘 이러합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단정하는 것은 내가 아는 수학 공식만 유일한 수학이라고 믿는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사람의 정신도 육신이 죽으면 사라지는, 즉 정신이 육신에 종속돼 있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모독입니다.


UFO를 알면 죽음도 안다

미국 NASA도 잠정 인정했다던 UFO, 이 분야에 관심만 가진다면 UFO의 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례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미확인 비행 물체는 지구의 과학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비행하고, 속도 또한 그러합니다. 내가 아는 과학지식으로 UFO 현상을 부정해 버리는 것이 과학적 사고라고요? 그것은 너무 속 좁은 생각입니다. 그런 것처럼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다”라고 본인이 이해한 삶으로 죽음을 넘어서 있는 것을 단정해 버리는 것 가능한 것이겠습니까?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신비한 영적 현상 또는 초자연적 심령현상을 동시성의 원리라고 개념화했습니다. 동시성의 원리는 인간의 과학적 의식 세계를 넘어, 4차, 5차, 6차, 그 이상의 세계와 연결돼 있다고 합니다. 융은 사후세계는 그런 다차원의 세계와 연결돼 있다는 언급도 했습니다. 한편, 융의 동시성의 원리를 양자 물리학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자료도 있습니다. 저는 물리학에 문외한이기에 이 분야에 언급할 수는 없지만, 현대 신비주의 영성은 양자 물리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유물론자는 없다 

제가 상담실에서 만난 유물론자들은 삶에 빠져, 죽음 생각을 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에게 다가오면 그들은 더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죽음을 먼 훗날의 이야기로 회피하고, “나는 유물론자다”라고 말해버립니다. 저는 자칭 유물론자인 내담자의 꿈에 나타난 여러 상징을 분석하면서, 내담자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유물론자라고요. 그냥 말을 쉽게 해버리는 겁니다. 사람은 유물론자일 수가 없습니다. 저는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개념에 거부감이 있습니다. 각 종교단체는 자기들만이 신을 소유한 것처럼 떠듭니다. 그게 싫어서 저는 유물론자라고 떠듭니다. 제 꿈에서도 드러났듯이, 저도 초자연적인 것을 동경하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신으로 개념화지 않고, 내가 동경하는 다른 것에 투사합니다.”


자칭 유물론자가 무의식 소리를 들으면, “신이 없다”라는 말을 감히 하지 못합니다. 다만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라고 부드럽게 말합니다. 그들은 개념화된 “신”에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 신을 이념, 가치관, 문화나 예술 등에 투사합니다. 융은 사람들이 가는 목적을 분석하니, 가고 있는 방향이나 위치는 달라도 모두 하나를 향해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융은 그 하나를 자기(Self)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모든 사람의 깊은 무의식에 잠재된 “참으로 되고 싶은 나”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신에 투사됩니다. 무신론자나 유신론자나 그들이 지향하는 삶의 목적은 같습니다. 하나의 목적에서 방향과 위치만 다릅니다. 가령 히틀러는 저 밑 안개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기와 멀어져 있다면, 인도 걸인의 성녀 마더 테레사는 자기와 근접해 있는 겁니다.

 

죽음은 시작이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야.” 그들의 무의식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종교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마치 유물론 전도자처럼 살아온 사람이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면서 한 말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 먼저 갑니다. 이곳과 연장선에 있지만 이곳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곳으로.” 사람이 임종의 시간에는 거역할 수 없는 무의식 깊은 곳에서 자기의 소리를 듣습니다. 유물론자의 무의식은 말합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야.” 본인이 유물론자다 유신론자다, 라고 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자기의 어느 지점에서 어떤 방향에서 살아왔는지, 즉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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