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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순례 Jun 28. 2023

죽음의 시기를 선택할 수 있을까?

날이 막 밝아질 즈음에 동네 뒷산을 오르려 집을 나섰습니다. 뒷산 입구에서 몇몇 분이 모여 수군덕거리고 있었습니다. 진입로 입구에서 조금 더 간 곳에 누가 목을 매고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싶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들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그들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늘 가던 길이니 가기로 했습니다. 진입로 입구에서 5분쯤 지나자 새벽 첫 등산객에게 자신의 부고를 알리려는 듯, 7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백발의 할아버지께서 숨을 거둔 채 나무에 매달려 곧게 서 계셨습니다. 검정 제복을 입은 경찰관 세 명이 무표정하게 사고를 수습하고 있었습니다.


아침햇살을 받은 시신의 얼굴은 매우 평온해 보였습니다. 아직은 삶의 잔재들이 남아 자기의 죽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이분의 영혼은 공중에 붕 떠서 이 광경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겠지.



나는 사고 현장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산으로 올랐습니다. 늘 가던 길인데, 그날따라 초행길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제가 죽었다 다시 살아난 기분이었습니다. 늘 보고 듣던 나무, 꽃, 바위, 구름, 태양, 바람 소리, 새소리가 다 새로웠습니다. 서고 현장을 보고 다들 돌아가, 나보다 앞서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시체를 두려워합니다. 그것이 내 몸이기도 한데 말입니다.


황혼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우울증 아니면 빈곤입니다. 둘 다 자신의 의지로만 개선될 수 있는 것들은 아닙니다.



“100세 시대에 나이 60이면 은퇴하고, 남은 40년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것은 이 시대에 태어난 인간의 업인가, 축복인가? 고령화 시대에는 죽음의 때를 스스로 선택하는 자율권이 보장되어야 하지 않은가?”


사람이 태어나서 살고 죽는 일이 다 허무한 일로 느껴져, 우울해졌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또 다른 내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살아갈 길을 보여줬고, 용기를 주었고, 함께 했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얻을 찬란한 영광도 알려줬다. 그리고 죽음을 직면할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도 주었다.”


나는 사고 현장을 기억할 때마다 두 가지 장면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이분의 싸늘한 얼굴에 후광이 되어준 동쪽 하늘에서 떠오른 아침 햇살과, 다른 하나는 이른 아침부터 참혹한 사고를 수습하는 세 명 경찰관들의 익숙한 행동입니다. 산의 정상이라고 해야 200미터도 안되는 곳에서, 나는 두 눈을 감고 이 분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스스로 생명을 끊어야 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이 분의 마음을 그곳에서는 위로해 주소서."

 

“죽음의 시기를 선택할 수 있을까요?”

“인간사,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요. 다만 우리는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오늘에 충실하며, 그때를 준비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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