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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순례 Oct 11. 2023

튤립과 잡초를 어울리게 하라 ⑧내 마음속의 튤립과 잡초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8가지 성장  프로그램, 연재⑧

8. 그래 좀 멍청해지는 거다 


  딸은 상향 지원한 미국 명문대학에 털썩 합격했다. 우리 가족은 모처럼 하나의 사건을 공유할 수 있었고, 기쁨도 함께 나눴다. 이것을 동상이몽이라 한다. 나는 딸이 아닌 내 꿈이 이루어져서 기뻤다. 남편은 딸의 교육 문제로 나와 말 실랑이를 벌이지 않아도 된다고 기뻐했다. 딸은 집을 아주 멀리 떠나는 것을 기뻐했다. 


  딸은 미국 가면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 엄마 아빠도 당신들의 행복을 찾으라고 선언했다. 그동안 국제학교 다닌다고 월급쟁이 부모의 등골을 빼 먹었다. 앞으로 4년은 그것과 비교 안 되는 큰돈이 들어간다. 집을 팔고 변두리로 이사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벌써 이별을 통보하다니! 나는 딸에게 섭섭했고, 남편은 미국에서 딸의 4년간 등록금과 생활비를 걱정했다. 딸의 명문대학 합격의 기쁨은 딱 일주일 갔다. 


  나는 딸도 나의 튤립꽃으로 알았다. 딸은 잡초를 키우고 있었다. 그것을 거름으로 부모와 분리를 선언한 것이다. 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바로 기숙학교에 가서 몰라서 그렇지, 딸은 자신의 욕망을 충실히 키우고 있었다. 딸은 단호하게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부부관계에 그나마 있던 완충지대가 빠져나간 꼴이다. 지금부터 그 완충지대는 부부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잡초를 거름으로 만드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싫다. 내키지 않는다. 남편하고는 그런 노력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여 년 냉전의 역사에서 쌓아 올린 것들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다. 이전처럼 남편과 함께하며 허전하고 우울한 시간을 되풀이하고 싶지도 않다. 


  나의 변화를 직감한 남편은 자전거 동우회에 들어가 흥미를 단단히 붙였다. 자전거는 함께해도 혼자 타는 것으로,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남편에게는 그래도 할만한 취미 생활이다. 나는 곧 임원으로 승진할 예정이다. 나는 부하직원에게 따뜻한 상사가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게 가능할까? 꿈속의 소리가 들려왔다. “잡초는 거름이 된다.” 그렇다 잡초를 키우면 된다. 좀 멍청해지는 거다. 나는 똑순이가 아니라 멍순이가 돼야겠다.      

  남편은 거의 그러듯이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TV를 본다. 늘 그러듯이 엄마를 잃은 쓸쓸한 어린이 표정으로 TV 앞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랜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던 남편이 극 중 인물과 감정이입을 하며 드라마를 즐긴 것이다. 매우 드문 일이다. 남편의 엄마는 자신의 즐거움이 먼저고 아이들과 애착 관계는 서툰 여성이다. 나는 처음으로 어린이성에 고착된 남편의 모습에 측은지심을 느꼈다. 남편에게 바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 가능할 것 같다. 


  그나마 있던 기대를 내려놓으니 나는 자유로워졌고, 남편을 남편대로 놔두는 일이 가능해졌다. 중년 이후에는 침범하지 않고 각자를 존중해 주는 서로의 삶이 있어야 편하다. 그러나 남편은 그럴 준비가 안 됐다. 그것은 남편의 몫이다. 그동안 남편의 몫까지 내 몫으로 만들려다, 나는 내가 아닌 사람이 됐다. 남편도 언젠가는 제 안에 억압한 어른다움을 찾을 것이다.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공통점이 없어서 나는 외로울 것이다. 그러나 그 외로움으로 나는 나에게 더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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