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니까 우울하다1

우울은 감사와 이해의 전단계

by 마음순례

2030은 결혼을 미룬다

꼭 결혼해야 하나? 그래서 요즘 2030은 결혼을 하지 않거나 뒤로 미룬다. 그들에게 들은 말이다. “자녀가 관건이에요. 자식을 낳으려면 일찍 해야 하고, 자녀를 낳지 않으려면 늦게 하는 게 좋아요.” 인간의 가장 원초적 본능인 성적 욕구와 정서적 결핍을 채우려고 결혼하던 시기는 지났다.


어른들은 이러한 2030의 태도에 걱정한다. 국민의 씨가 마를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 노후를 책임져 줄 젊은 세대가 줄어들어 걱정이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도 이기적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심리학적으로도 인간의 최우선 욕망은 나부터 살자는 것이다. 실은 이것만 알아도 결혼생활은 편해진다.


결혼은 철저히 이기적 유전인자를 가진 두 개인이 만나는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순애보 사랑이 있었다. 사랑만 하면 상대의 조건은 따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순애보의 유효기간은 길지 않지만, 그런 사랑을 꿈꿀 정도로 사랑에 관한 한 순진한 이상도 있었다. 글쎄, 순진했다기보다는 무지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은 많은 남녀가 결혼정보회사의 도움으로 이성을 만난다. 그곳 컴퓨터에 신청자의 모든 정보를 넣으면 신청자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 출력된다. 그리고 그 상품과 잘 어울리는 다른 짝을 소개한다.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세대가 그렇다는 것이다. 사랑도 정보가 됐다.


부부는 서로 무엇을 요구할까?

신혼 초에는 깨가 쏟아진다는 말은 결혼이 채워주는 성적 욕구의 해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문화가 한방에서 만났는데, 충돌이 없다면 이상한 일이다. 내 배우자가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다고, 성격 차이가 크게 난다고? 내 성격으로 배우자를 보려니 성격 차이가 난다. 사람이 얼마나 이기적 존재인지, 자기가 보는 타인이 절대적 기준인 것처럼 착각하고 산다. 성격 차이는 본래부터 있었다. 부부는 심신이 가장 근거리에 있는 관계이다. 그래서 가장 이기적인 것을 상대에게 요구한다. 남들은 그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함부로 해결사라도 되듯이 남 부부 사이를 끼어들면 안 된다.


부부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의 미해결 과제를 상대가 해결해 줬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를 부부는 서로 가진다. 한때, 약간은 우울해 보이는 표정이 오히려 매력이었다는 아내가 말했다.

“선생님, 남편은 제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어줘요. 최근에는 아예 귀를 막고 있는 것 같아요.”

“남편은 뭐라 하시나요?”

“당신은 힘든 사람이래요. 아니, 부부가 됐으면 아내의 우울한 이야기 정도는 들어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남편에게 물었다.

“아내의 약간 우울한 표정이 지적으로 보여 끌렸다죠. 지금은 그 표정이 싫어졌나요?”

“그것도 한두 번이지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것 하며 살기로 했어요.”

남편은 외향형으로 “하는 것”을 좋아했고, 아내는 내향형으로 “있는 것”을 좋아했다. 남편은 무엇을 하면서 부부의 일치감을 즐기려 했고, 아내는 함께 있으면서 부부의 일치감을 즐기려 했다. 신혼 초에는 양보하지 않는다. 둘 다 상대가 이상했다. “나 결혼 잘못한 것은 아닌가?” 아내가 먼저 우울해진다. 남편은 아내와 함께라면 좋지만, 아내가 함께하지 않아도 자기만의 “하는 것”으로 피했다. 남자가 하려고만 하면, 아내는 놔두고 할 것이 많다. 다이어리에 휴일 일정이 빼곡하다.


아내는 남편에게 원가족에서 결핍된 모성에 대한 기대를 포기해야 한다. 남편은 부부관계가 특별히 좋은 원가족의 부모상을 포기해야 한다. 이것이 쉬울까? 개인 무의식에 새겨진 부모상은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개인의 성격이나 특성의 많은 부분이 거기서 나온다. 좋은 부부관계를 원하면 내 기대의 절반은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신혼 초는 우울하기도 하다. “나, 결혼 잘못한 것은 아닌가. 차라리 빨리 끝내고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나.” 결혼을 다시 해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결혼은 이상적 소망이 투사된 환상과 같은 것이다.


우울은 이해와 감사의 전단계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은 타자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우울의 터널을 통과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것을 우울적 자리라고 한다. 만일 우울적 자리를 회피하거나, 우울하지 않은 척 억압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서로가 상대를 공격하는 편집분열적 자리로 고착된다. 만성적 부부싸움의 원인은 내 욕망의 절반은 접고, 남은 절반으로 배우자를 이해하고 보상하는 우울적 자리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우자를 보상하는 것이 이혼일 때도 있다.


사람은 늘 우울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기쁨은 잠깐, 후에는 그와 적응하느라 또 우울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만일 내가 우울을 영혼의 벗이거나,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의 일부로 수용한다면, 우울은 해도 우울증에 걸리지는 않는다. 멜라니 클라인은 우울적 자리를 잘 통과하면, 뒤이어 오는 선물이 “감사”라고 했다. 우울함을 거치지 않은 감사는 머리에서만 맴돌 뿐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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